천천히 와 시인의 마음을 받아쓰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필사 에세이
유희경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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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이 마음에 닿을 때까지 천천히 읽고 쓰는 필사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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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와 시인의 마음을 받아쓰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필사 에세이
유희경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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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리뷰어스클럽의 추천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천천히 와, 유희경, 위즈덤하우스>가 집에 도착했다. 책은 단단한 커버를 뚫고 마음을 연결하듯 창이 나 있었다. 내가 바라보는 창밖에는 무아지경으로 책을 읽는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이 책의 작가님인지 아니면 저 창 안에서 바라보는 나인지 언뜻 헷갈렸다. 제목에는 두 개의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천천히 와.



지은이 유희경 작가님은 문예창작과 극작을 공부한 사람이고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다. 현대문학상과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탔다. 지은이는 이 책 작가의 말에서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런 문장이 있다. "기다린다. 나는 기다리는 사람이다. 끌리기를 사로잡히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나는 기다림을 쓴다. 기다리는 대상을 쓰고 기다림을 쓰고 기다림의 앞과 뒤를 쓴다."


 

이 책의 대부분은 작가가 이끌렸던 이야기들이고 천천히 오라는 의미는 기다리는 작가의 이야기로 오라는 의미였다. 하나의 이야기가 독자를 만나 우리가 되고 우리의 이야기가 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유희경 작가님의 문장에 마음이 휙 쏠렸다.



이 책은 작가의 어머니가 쓴 친필 글씨가 수록되어 있고 바로 이어서 작가가 건넨 문장을 독자가 쓸 수 있는 필사 공간이 있다. 작가 어머니의 필사 글씨를 보는 것만으로도 말할 수 없는 그리움이 가득해졌다.

 

깊은 밤, 밤의 요정들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함께 책을 읽는다. 책 속의 어떤 이야기들이 잠들지 못하도록 저 사람을 사로잡고 있는지 궁금하다. 25개의 주제로 나눈 글은 수려한 산문이며 작가의 깊은 내면과 관련되어 있다. 읽다가 울컥하는 순간에는 이 책에 가끔 나오는 이런 그림을 보며 쉬어갔다.

 


책을 읽다 보면 유희경 작가님이 시인이고 산문을 쓰지만 현재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가 고스란히 나와 있기도 하다. 시를 써서 밥을 먹는 일은 고단하고 밥을 먹기 위해 하는 일이 노동이라면 시가 노동일 수 없기에 손과 발을 움직이는 그 생활의 고단함을 쓰면서 작가가 기다리는 손님에 관한 이야기가 맑다.


때는 겨울이다. 시집 전문 서점을 운영하는 작가가 창문을 열고 콧속 얼얼한 찬 공기를 맡고 있을 때 손님이 계산하려고 시집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 내 머릿속에 푸르게 그려졌다.



첫 필사 문장 "나는 기다린다. 약속이 되어 있다는 듯. 그런 기분이 들면 꼼짝할 수 없다. 시계탑 아래서 초조한 사람처럼.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어긋나버릴까 걱정하며 옴짝달싹 못 하는 사람처럼. 마음의 각도가 아슬해지고 애틋해지면, 가장 가까운 창문으로 가보는 것이 상책이다."를 읽으며 같은 공간 다른 생각의 사람이면 어떤가 하는 생각도 했다. 시집을 사는 사람이라면.


 

내가 자주 되뇌곤 하는 단어는 후숙. 천천히 익어가다. 후숙의 마침은 알맞게 익음이며 나는 내 삶 어딘가에 그러한 지점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성숙하지 못하여 자주 누군가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풋내나는 떫은맛을 느끼곤 하지만 이 또한 후숙으로 가는 과정이리라. 나는 반점 하나 없는 바나나를 다시 한번 들여다본다. 어째서 바나나로부터 아무런 욕망이 일지 않았는지 알 것 같다. 98

 

편지 쓰기는 정말 어렵지요. 편지는 독백이고 그러므로 대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편지의 편은 소식 편이기도 하지만 한쪽 조각 편을 쓰기도 하는 것입니다. 대답 없는 독백의 사방은 어둡습니다. 무대 위 배우의 독백을 상상해 보지요. 그는 홀로 조명을 받은 채, 자신의 심경을 진심의 형식으로 고백합니다. 그와 같은 글이 편지에는 적힙니다. 편지글은, 그러므로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몰라 주저합니다. 길을 잃은 말. 그것이 편지. 214~215

 

나는 편지를 쓸 때, 연필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지우면 그만인 글은 편지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메일을 편지로 치지 않는 이유도 같습니다. 편지는 되도록 오래 남아 있어야 해요. 편지에게 걸맞는 최후는 오직 불태워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215~216

 

그리고 오은 시인의 문장도 이 책의 마지막 장에 등장했다. "기다림은 마음을 쓰는 일이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마음은 닳지 않는다. 더 반질반질해진다. 더 바빠지기만 한다. 더 불어나기 일쑤다. 그래서 기다리는 사람은 부자다. 기다림 속에서 사는 사람의 속이 깊어지는 이유다." 이 책을 천천히 읽었으면 하는 지인의 바람도 들어있었다.

 


지은이의 묵혀둔 이야기들이 책으로 묶여 도착했을 때 마침 나는 나만의 이런저런 얘기를 좀 묵혀둘까 하던 참이었다. 쌓아둔 얘기들이 시간 안에서 좀 숙성되기를 기다려보려던 참에 '기다리는 사람'이 만년필로 꾹꾹 눌러서 쓴 책 편지처럼 도착한 것이다.

 

위로란 상실 앞에서 흐느끼는 사람에게 필요하다기보다 그 마음을 어쨌거나 추슬려 겨우 일어난 사람의 어깨를 감싸는 목도리 같은 것이다. 나는 이 책이 목도리 같다고 생각했다. 춥고 황량한 겨울 아침 같은 인생을 지나고 있거나, 울다가 이제 좀 그쳐볼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천천히 읽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필사에세이 #필사 #기다림 #그리움 #천천히와 #유희경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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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의학 - 죽음에 맞선 인류의 경이로운 도전
야마모토 다케히토 지음, 서수지 옮김, 예병일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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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에 다른 사람보다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는 뉴턴의 말이 실감 나는 넓고 깊은 의학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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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의학 - 죽음에 맞선 인류의 경이로운 도전
야마모토 다케히토 지음, 서수지 옮김, 예병일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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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리뷰어스클럽의 추천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대단한 의학, 야마모토 다케히토, 위즈덤하우스, 2025>를 읽은 계기는 단순하다. 책 표지의 히포크라테스가 덥수룩한 수염과는 상관없이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고, 날카로운 메스를 든 의사의 손이 향한 곳이 궁금했다.



이 책의 지은이 야마모토 다케히토 님은 소화기 외과 전문의이고 내시경 외과, 감염병, 암 치료 분야의 전문가이기도 하다. 히포크라테스는 의사에게 말, 약초, 메스라는 세 가지 무기가 있다고 했는데 이 책의 지은이는 이 세 가지를 다 가진 듯해 보였다. 지은이는 머리말에서 사람의 몸을 접하며 생명의 아름다움을 실감한다는 말과 의학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듯 너른 관점으로 살펴보기를 바란다고 썼다.

 



이 책은 의사로서 지은이가 현장에서 겪은 에세이가 아니다. 의학의 역사를 꿰뚫는 객관적인 팩트로서의 인체의 구조, 의학사를 바꾼 약, 외과 수술의 역사, 수술 기구, 방사선과 일산화탄소 및 치명적인 바이러스 등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이 잘 소개되어 있다.

 


혈액은 우리 몸의 중앙에 자리한 심장이 온몸에 피를 보냅니다. 심장보다 높은 곳에 있는 장기에 피를 보내려면, 항상 중력을 거슬러야만 합니다. 뇌는 산소 부족에 약한 장기예요. 교감 신경이 일하는 덕분에 우리가 갑작스럽게 자세를 바꾸어도 혈압이 일정하게 유지되고 몸이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어요. 21~24

 

코피의 90퍼센트는 콧구멍이 시작되는 입구에서 납니다. 여기를 '키젤바흐 부위'라고 불러요. 가느다란 모세혈관이 많아 피가 나기 쉬운 부위이죠. 따라서 피가 나면 코의 입구, 즉 둥글게 퍼진 콧방울을 압박해야 합니다. 콧방울을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으로 지그시 누른 채로 6~7분 두는 겁니다. 41~42

 

마르판 증후군은 선천적으로 온몸의 결합 조직이 약해지는 유전병입니다. 프랑스 소아과 의사인 앙투안 마르팡에 의해 1896년 처음 알려졌습니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비정상적으로 긴 다섯 살 여자아이의 사례를 처음 보고했어요. 파가니니와 라흐마니노프 역시 마르판 증후군을 앓던 것으로 보입니다. 라흐마니노프는 키가 2미터가 넘고, 손가락이 워낙 길어서 한 손으로 ''에서 한 옥타브 위의 ''까지 닿을 정도였다고 해요. 94~95

 


미국 남서부에서 멕시코에 걸친 사막 지대에 서식하는 아메리카 독도마뱀은 '힐러몬스터'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맹독을 지닌 도마뱀입니다. 1992년 미국의 과학자인 존 엥은 이 도마뱀의 독물질에 '엑센딘-4'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물질은 당뇨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첫 단추가 되었어요. 이 물질은 구조적으로 GLP-1과 매우 닮았으면서도 몸에서 잘 분해되지 않는 성질이 있었습니다. 혈당 수치를 내리는 작용을 오래 유지할 수 있으니, 약으로 쓰기에 적절한 물질이었던 것이죠. 제약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독에서 탄생한 약이 무척 많습니다. 오히려 모든 약이 독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인간에게 이롭게 작용하면 약이고, 해롭게 작용하면 독이라는 식으로 구분하지만 말입니다. 그중에서도 살육을 목적으로 만든 맹독에서 탄생한 약 이야기가 참 인상적입니다. 바로 항암제입니다. 141~143


 

나이팅게일은 간호사로 유명하지만 사실 통계학으로도 엄청난 업적을 남겼습니다. 군대에서 위생적인 환경을 갖추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또 비위생적인 환경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앗아 가는지 정부에 알리기 위해 통계 수치를 치밀하게 분석했죠. 267

 


그러나 다양한 의학적 상식이 가득한 이 책의 맺음말은 철학적 감성이 가득했다.

 

의학은 본래 인생을 풍요롭게 해 주기 위한 학문입니다. '풍요로움'이 곧 '생명 연장'과 같은 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죽음이라는, 패배가 정해진 싸움에 들어서는 게 의학이라면 '멋진 패배' 또한 의학의 역할이 아닐까요? 393

 

현대 의학이 엄청나게 발전한 듯 느껴지지만, 사실 현대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인류는 미생물과 세균 및 바이러스에 대해 무지했다. 고대의 히포크라테스가 의학의 시작점이 되어 무수한 연구 결과에 힘입어 현대에 이른 것을 우리는 안다.


이 책을 읽으며 외과 수술에 절대적인 마취나 치료용 약의 개발 또한 현대에 이르러 개발되었음을 다시금 기억하게 되었다. 이 책에 소개된 결정적인 의학자들과 과학자들의 사례는 반복해서 들어도 경이롭고 존경스럽다. 의학 공부를 하는 이와 의학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 내용이 가득하다.

이 책은 의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결국 모든 인간은 노화해서 죽거나 질병으로 죽거나 또는 예기치 못한 사고로 죽는 존재라는 사실 앞에서 겸손해지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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