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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라 - 돈 드릴로 장편소설
돈 드릴로 지음, 정회성 옮김 / 창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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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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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담하는 이에게 위로하듯 말을 건넨다. 지나간 것에 매이지 말라고. 몸서리치는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한다. 오늘을 소중히 하라고. 멈춰선 이에게, 주저 앉은 이에게 그리고 남은 기억에 발 묶인 이들에게 사람들은 늘 말한다. 현재에 충실하라고.

그러나 현재란 것은 애매모호하다.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좀처럼 분명히 할 수가 없다. 그것은 시간이다. 곧 다가오거나 밀려날, 그래서 결코 마주칠 수 없는 어떤 순간이다. 그것은 감각이고 감정이다. 그들은 언제나 곁에 와 있다. 아무리 단단히 묶어놓아도 절로 풀려버리는 실타래처럼, 그것은 별것 아닌 일에도 언제든 툭 터져나올 것이다.

현재는 결코 마주칠 수 없거나 항상 곁에 있기에 분명히 인식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현재성을 절실히 통감하게 되는 때가 있다. 그때는 다름아닌 자기가 늦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을 때이다. 얄궂은 일이다. 우리는 매번 지나간 뒤에만 그 일의 의미를 안다. 다음에는 다르리라 끊임없이 되내어봐도 우리는 늘 같은 일을 되풀이 한다. 실수하고, 과오를 저지르고, 부끄러움에 몸서리치며, 두 번 다시 없을 순간들을 후회들로 점철한다.

그 일은 과거에 벌어졌다. 돌릴 수 없고 다시 마주칠 수도 없다. 하지만 그 일에 대한 기억이 그때의 떨림을 재현한다. 그 떨림이, 그때의 감각이 얼굴을 달아오르게 한다. 그리고 그 감각이나 감정은 현재의 것이다. 그렇게 과거는 현재에 머물며 현재를 끊임없이 밀어낸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기억들은 시름을 자아낸다. 그리고 그 시름들은 때때로 과거와의 단절을 종용하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삶은 통시적이다. 나는 언제나 하나의 연속선상 위에 있으며 과거와 단절될 수 없다. 진실로 현재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현재에 대한 긍정은 과거에 대한 체념에서 오지 않는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남아 있는 나날>에서 현재를 새롭게 맞이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과거를 들춰낸다. 조금은 조심스럽게, 그렇지만 분명하게. 그렇게 과거를 이루는 장면장면들을 하나하나 골라내고 그들을 충분히 애도하고 난 후에야 이시구로는 ‘저녁’을 말한다.

근래에 보았던 소설 중에 가장 소설 같은 소설이었으며 가장 이야기 같은 이야기였다. ‘품위’라는 테마 아래 스티븐스라는 개인을 전 시대적 가치와 나란히 병치하면서도 그를 단순한 상징물로 격하시키지 않는다. [둘째날 아침, 솔즈베리]의 연회 장면에서 영국 혹은 아름다운 시절 그리고 달링턴 경과 스티븐스의 ‘품위’를 다루는 솜씨는 결말보다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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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세계 - 헤겔 철학의 역사적 뿌리를 찾아서
위르겐 카우베 지음, 김태희.김태한 옮김 / 필로소픽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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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나 헬겔이 보여요…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서양사나 사상사, 근대에 관심이 있다면 언젠가 들어볼 수 밖에 없는 그 이름! 이제야 펼쳐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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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 컬렉션 박스 세트 (리커버 특별판, 전4권) - 뉴욕 3부작 + 달의 궁전 + 빵 굽는 타자기 + 공중 곡예사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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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소설의 탈을 쓴 오스터의 자전적 소설이다. 인물들의 행적은 중요하지 않다. 인물들이 살아가는 세계가 오스터의 그것과 같다는 의미에서 자전적이다. 이야기에서는 쓰여진 것만이 존재한다. 인물과 사건은 작가에 의해 선택된 요소들로 조형된다. 물론 이 때 요소는 텍스트와 컨텍스트를 모두 포함한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아닌 한 사람의 생애는 어떨까. 우리가 먹고 사랑하고 다투고 잠자는 이 세계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 무엇으로 만들어져있는가. 일단 눈에 보이는 것부터 나열해 볼 수 있다. 딱딱한 키보드 타자기, 화면 위 점멸하는 텍스트 커서, 속이 훤히 드러다 보이는 컵 속에 찰랑이는 커피와 얼음, 햇빛 아래 명암을 드러내는 아스팔트 바닥, 묘사하자면 끝도 없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한가? 그렇지 않다. 일상세계의 사물들은 나와 무관하게 존재한다. 그런 것은 장난이다. 눈에 보이는 물리적 세계에는 컨텍스트가 없다.

뉴욕 3부작에서 돋보이는 것은 서사가 아니다. 인물이다. 그리고 인물이 바라보는 세상이다. 뉴욕 3부작의 인물은 마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작가처럼 세상을 본다. 사물 뒤에 의식이 오지 않는다. 연속적인 의식의 흐름에 사물이 끼어드는 식이다. 거기에 더해 스스로를 극한까지 밀고나간 인물들은 자신을 현실에 붙들어매는 관계들을 잃어버린다. 이제 인물들은 자기 자신이 외부 세계 어딘가에 놓여 있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시간은 이미 예전에 균등함을 잃고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다. 관계하던 사람들은 자의든 타의든 모두 떠난지 오래다. 머무는 곳은 어떤 식으로든 더 이상 의미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중요한 것은 하나다. 인물의 시선이 도달하는 곳. 인물이 보고 듣고 기록하는 하나의 대상이다.

의식 속에만 존재하는 이 불쌍한 영혼은 자신을 지탱하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자신이 지켜보는 단 하나의 대상만을 제외한다면. 시선 끝의 그것이 의식을 유린한다. 이제 시선의 소유자는 자신을 유지하기도 버겁다. 그렇게 흐려진 의식 끝에 인물이 닿은 곳은 어디일까. 오스터는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결말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미 말 하고 싶은 것을 모두 말했기 때문이다.

빵 굽는 타자기나 낯선 사람에게 말하기에 실린 에세이들을 읽고 오스터 초기작을 읽으면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작가의 경험이 작품의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굶주림이라던지 선박 생활이라던지 돈을 뿌려대며 집 없이 도시를 떠돌아다니는 인물에 대한 일화 등은 반복해서 변주되는 테마다. 폴 오스터는 자신에게 정직한 작가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작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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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특별판) 레이먼드 카버 대표 소설집 특별판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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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지났다. 크리스마스, 하면 나는 무엇보다 먼저 온기를 떠올린다. 물론 크리스마스는 항상 춥다. 입속에서 맴돌던 하얀 숨은 먹먹한 하늘로 떠오르고 하늘에서는 때때로 하얀 눈이 가라앉다 떠오르다를 반복한다. 어릴 적에는 빨간 모자에 하얀 수염이 뭉성한 할아버지가 한쪽 어깨에는 보따리를 매달고 한 손에는 사슴의 고삐를 쥔 채 저 하늘을 달리는 그림을 그렸고, 밤이 깊어져 눈꺼풀이 무거워질 때면 웅크리고 앉아 이불을 덮어쓰고는 고개를 까딱이며 뜻밖의 선물을 기다리곤 했다. 매일 열심히 살다보면 쉽게 잊혀지지만 그래도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래서 매번 돌아오는 이미지들이 있다. 크리스마스.

보통 사람들은 비슷비슷하다. 그저 조금씩만 다를 뿐이다. 하지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면 때때로 그 작은 다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아주 낯선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한번 낯선 것이 되고 나면 그것처럼 성가신 것도 없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자기를 타이르고 다독여봐도 그것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거슬려 좀처럼 진정할 수가 없다. 그것이 쌓이고 쌓이다 어쩌다 한 번 부딫치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 사람과는 영영 화해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생각하는 것이다. 저런 사람에게도 크리스마스가 돌아올까?

아무렴. 그런 사람에게도 크리스마스는 온다. 같은 온기, 같은 설렘, 같은 선물을 가지고 크리스마스는 온다. 물론 누군가에게 크리스마스를 아주 시퍼렇고 으슬으슬한 날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딱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크리스마스를 가지고 색다르게 떠올려보려고 조물딱거려보아도 모두의 크리스마스에서부터 멀리 떨어질 수가 없다. 다양성을 긍정하고 자아가 존중받는, 그렇기에 서슴없이 자기를 주장하는 시대에도 여전히 사람은 다른 점보다는 같은 점이 많기 때문이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공간에서 나와 비슷한 이들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소설을 시시하다고는 생각지 않아. 내겐 그저 좀 미적지근할 뿐이야. 단 한 줄의 진실을 말하려고 100페이지의 분위기를 꾸미거든.”
“정말이지 말은 짧을수록 좋아. 그것만으로 믿음을 줄 수 있다면.”

다자이의 단편집 <만년>의 한 구절이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카버를 읽고나면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대성당>에서 카버는 여전히 최소한의 말로 모두를 납득시킨다. 그는 그렇게 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도 그리 할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 아무리 낯설게 느껴지는 이라도 어떤 순간에는 그 또한 나와 다르지 않다 느껴지는 때가 온다. 그리고 사람은 때때로 그것만으로도 위로를,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아마 크리스마스가 춥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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