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예술가의 초상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종건 옮김 / 어문학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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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헌신하는 이는 세상에 등 돌리기 마련이다. 그는 자신을 거부하는 풍토를 멀리하고 스스로가 바라 마지않는 내적 삶을 꾸려가고자 한다. 그리고 그는 그런 자신을 옹호하기 위해 모든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의 시대는 이전에는 없던 시대다. 그 시대는 이전과 연속적인 흐름 위에 놓이기를 거부한다. 이전과는 달리 규정되기를 원한다. 세상은 스스로를 기술함으로써 자기체계를 확립하고자 한다. 이것이 당대의 소명이다. 그리고 시대는 자신의 소명을 완수하기 위해 스스로를 끌어모으기 시작한다. 자신을 표상할 수 있는 모든 개념과 가치들을 그러모은다. 신앙, 민족, 기타 등등. 세상은 머지않아 제법 동질적이고 평탄한 것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시대의 역사는, 이전 어느때 보다 역동적이고 거세게 주변부에 있는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린다. 이제는 누구도 역사와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 누구도 역사와 독립된 상태로 존재할 수 없다. 역사는 참여를 촉구한다. 세상이 혁명을 호명하면 혁명을 부르짖어야 하고 확장을 바라면 확장을, 독립을 바라면 독립을 말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한 곳에도 속하지 않고 홀로 떨어져 나와 개인적인 뭔가를 꾸려나간다는 것은 요원한 일처럼 보인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변절이고 배신이다. 그러나 그는, 스티븐 데덜러스는 준비되어 있다. 그 모든 비난과 공격을 감당할 준비가, 모든 것을 끌어들이고 휩쓸리게 하는 역사에서 벗어날 준비가 되어 있다.

그의 반항은 홀로 준비된다. 동지를 찾아서는 안 된다. 동지를 찾은 순간부터 그의 반항은 하나의 운동, 하나의 투쟁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것은 역사로 회귀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진정한 반항은 언제나 소요없이 조용히 준비된다. 이런 스티븐에게 아니, 이런 스티븐이기에, 현실은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 있어 현실은 내적 세계의 이미지를 완성시키기 위한 질료에 지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외부 세계의 대상물은 그 자신의 독백을 이어나가기 위한 일종의 수단인 것이다. 그렇기에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는 개인 간의 상호작용이 없다시피 하다. 모든 상호작용은 스티븐의 내부세계와 외부세계의 상호작용으로 환원된다. 그리고 상호작용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은 그저 수사, 장식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런 수사들과 장식적인 단어들은 일종의 운율을 만들어낸다. 조이스의 수다스러운 단어들은 그가 그려내는 이미지와 분위기에 기여한다. 이런 작업은 과감한 것이다. 다양성이란 것은 너무나 쉽게 산만한 것으로 변모한다. 다양함이 다의성을 유지하기란 어려운 일이고, 그것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지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문장에 많은 재료를 투입할 수록 언어의 해석 가능성을 통제하는데 곤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드러나는 문장들은 모두 제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예술을 말한다. 그들이 모든 예술을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스티븐 그 자신과 그의 예술론만은 완벽하게 대변해내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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