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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닥토닥과 두근두근 ㅣ 삶창시선 91
김일영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25년 9월
평점 :
첫 시집 <삐비꽃이 피기 전에> 이후 16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이 나왔다. 김일영 시인의 시집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나는 반가움과 설렘이 동시에 밀려왔다.
석양이 쉬어 간다던 그 섬 소년의 언어는 그 사이 어떻게 변화했을까. 이십 년 가까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시인은 그 섬을 떠나 육지로 나가 어른이 됐다. 그는 소주가 출렁이고, 하수구에 오수가 흐르고, 구둣발 비틀대는 도시의 밤을 지나 자신이 낯설어지는 시간을 통과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시집에서, 그의 시는 끝내 누군가를 지극히 사랑하는, 서로의 무게를 지탱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할머니의 두근대던 심장 소리를 기억하던 시인은 이제 누군가의 심장소리를 지켜준다. 내 방은 철거되더라도 잠든 너를 토닥이고, 너의 심장이 두근두근 뛸 수 있는 방 한 칸을 마련해준다.
심장이 뛴다는 것은 결코 혼자의 힘이 아니다. 누군가의 손길, 누군가의 온기가 있어야 비로소 두근거릴 수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 이 시집을 읽으며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심장 박동을 잃어버린 나는 다시 그 감각을 조금 되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진정 잃어버린 것은 타인을 포용할 마음, 그리고 자신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그런 관계에 대한 믿음이 아닐까.
그 믿음은 세상 밖에 오도카니 박혀 있던 존재를 오랫동안 응시하는 힘에서 다시 발명되는 것이라고 시인은 말하는 것 같다. 딱딱하던 돌멩이가 말랑말랑 해질 때까지. 우리의 심장이 부드러운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그 여리고 질긴 서정의 힘을 회복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