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 알았어야 할 일
진 한프 코렐리츠 지음, 김선형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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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는데 꼬박 2년이 걸린 <진작 알았어야 할 일>의 저자이자 심리치료사로 일하고 있는 그레이스의 잡지 인터뷰와 그녀의 아들이 다니고 있는 사립학교의 <리어든의 밤> 행사 준비로 100페이지를 읽고서야 스릴러 소설답게 무슨일인가 벌어진다. 시시콜콜 세세하게 설명하는 것에 언제까지 인내심을 발휘해야 하나 싶었던 그때, 드디어 살인사건이 터졌다. 리어든의 밤 행사 준비때 엄마들 앞에서 아기에게 젖을 물렸던 말라가 알베스의 죽음이었다.



헨리가 오늘이든 내일이든, 아니면 다음주든 학교에서 돌아와 4학년 애네 엄마가 살해당했다는데 알고 계셨어요? 라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응하는게 최선일까? / 155


심리치료사라서 누구보다 타인의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하고 공감 능력이 클 것 같았던 그레이스에게서 학부모의 죽음이 아들에게 어떤 나쁜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닌지 예민하게 경계하는 모습에 당황스럽다. 그저 그런 관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관계, 그런 타인의 죽음은 슬프고 놀랍지만 깊은 슬픔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사회에 깔려있는 냉철한 현실을 그레이스의 모습을 통해 의도적으로 작가가 표현한 걸까?



여기라면 안전해. 도움받는 기분이야. 하지만 대니얼이 선생님을 원했어요. 그는 선생님이 냉정하다고 생각했죠. 우리한테 냉정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하지만 냉정한 일은 이미 충분히 겪었으니 고맙지만 됐어요. 아니 언제 한번이라도 감정을 보인적은 있어요? / 241


겉으로 보기엔 흔들림없어 보이는 그레이스지만 그녀의 내면은 혼란 그 자체이다. 말라가 알베스의 죽음으로부터 지켜내야 하는 헨리를 신경써야 하고, 휴대폰을 집에 두고 출장길에 오른 남편과 연락할 방도가 없어, 아니 남편이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크게 당황한다. 완벽한 결혼생활이라고 생각했는데 뭔가를 놓친 기분을 그레이스는 이제서야 느낀 것이다. 결혼생활을 하다 파경에 이른 그녀의 상담자들을 보며 우리가 진작 알았어야 할 일에 대해 책 한 권을 써놓았으면서, 정작 그 글을 쓴 당사자가 진작 알았어야 할 일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로즌펠드가 그 말을 하는 바람에, 유독한 공기를 안에 밀봉하고 있던 유리 덮개는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여섯 단어였다. 나중에 세어 봤다. 그 단어들을 따로 떼어 보고, 다시 조합해 보고, 그 단어들이 파괴를 일으키지 않고, 삶을 뒤집어엎지도 않고, 삶을 끝내지 않게 만들려고 애썼다. 그리고 실패했다. / 266


'그냥 아는 사람'이 죽었다. 그리고 '남편'이 사라졌다. '그냥 아는 사람'을 죽인 사람은 누구일까? 남편은 왜 수상쩍스럽게 연락이 되지 않는걸까? 설마 이 두사건이 연결되어 있는걸까? 아니면 '그냥 아는 사람'을 죽인건 뜻밖의 인물이고 남편은 자신의 일이 괴로워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가 아무일 없다는 듯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게 될까?


대도시가 그렇듯 멀리서보면 아름답고 세련되어 보이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기득권, 우월주의,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완벽해 보였던 그레이스가 이 두사건을 만나면서 그런 모습을 드러낸다. 단순히 범인이 누구인가로 끝을 내는 것이 아니라 이 여자 참 생각 많다 싶을 정도로 인물의 내면 심리를 농밀하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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