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주에는 시의 또 다른 진정한 묘미를 맛보게 해준 청소년 시집을 읽었다. 그에 이어 이번 주에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시를 읽게 되었다. 이러한 순서로 배열한 것은 수준이 높아졌지만 저번 주에 시를 즐겁고 부담 없이 읽었던 기억을 떠올려 거부감 없이 읽어보라는 선생님의 취지였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시를 여러 편 모아 두었지만 주제별로 알맞게 잘 모아둔 덕에 다 읽고 났을 때는 마치 하나의 스토리가 있는 책을 읽은 것 같았다. 또한 엮으신 분들이 독자인 청소년의 입장에서 해설을 써주신 덕분에 시를 이해하는 데에도 별 무리가 없었다.
아는 시들이 꽤 많아서 반가웠고 즐겁게 읽었다.
가장 먼저 실려 있는 작품은 ‘개밥바라기별’로 인연이 있는 황석영 작가님의 작품이다.
<아우를 위하여>는 형이 아우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시작하여 형의 옛 이야기가 펼쳐진 후 다시 편지를 마무리하며 끝이 나는 특이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얼마 전, 박완서 작가님께서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작가님의 작품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성함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읽은 작품은 어렸을 때 읽었던 자전거 도둑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님의 작품 중 하나인 <배반의 여름>을 보고 반가웠다. <배반의 여름>의 주인공인 ‘나’의 머릿속에는 아버지와 전구라가 우상의 인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한 ‘나’에게 여름에만 세 사건이 일어난다. 여동생이 물에 빠져 죽은 후로 물을 무서워하는 ‘나’를 어느 날 아버지가 물에 던져 넣은 것이다. 또한 어릴 적 ‘나’의 눈에는 자랑스러워 보였던 아버지의 제복이 알고 보니 경비원 옷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우상의 대상이었던 전구라조차도 거짓과 위선으로 둘러싸인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 사건 모두 ‘나’에게는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었지만 그 덕분에 ‘나’가 얻은 것도 많았다고 생각한다. 물에 대한 공포에서 헤어날 수 있게 되었고, 더 넓은 세상을 알게 되었으며, 사람의 진정한 모습을 볼 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읽고 나니 이 소설의 제목이 이해가 갔다. 이 세 사건이 공교롭게도 모두 여름에 일어났고 ‘나’는 우상들의 실체를 알고 실망을 넘어선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봄봄>은 일전에 읽었던 작품이어서 수록된 작품 중 가장 친숙한 소설이다.
주인공인 ‘나’는 ‘봉필’의 딸과 결혼하는 것을 전제로 3년간 데릴사위 노릇을 한다. 하지만 ‘봉필’이는 딸이 키가 크지 않았다는 이유로 결혼을 시켜주지 않는다. ‘나’는 키가 얼른 커 주기를 빌기도 하고, 꾀병도 부리고, 떼도 써 보지만 언제나 ‘봉필’에게 지기만 한다. 나는 ‘나’가 항상 당하기만 하는 것이 답답했지만 ‘점순이’의 행동이 더 답답했다. ‘점순이’는 ‘봉필’이 갖가지 수를 쓰는 줄은 모르고 '나'만 나무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점순이’가 진심으로 '나'와 결혼하고 싶었다면 '나'를 시키는 것보다 ‘봉필’에게 자신이 직접 부탁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는 좋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이 소설은 데릴사위라는 무거운 제도에 대해 풍자하고 있는 데에도 불구하고 김유정 작가님의 <동백꽃>, <만무방>과 같이 해학적이어서 웃으면서 읽을 수 있었다. ( :동백꽃, 봄봄 모두 여주인공이 점순이...?)
짤막짤막한 수필들은 마치 남의 일기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단편소설이라지만 가지각색의 사연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소설편보다 훨씬 수월하게 읽었다. 글 사이에 글과 어울리는 사진들도 눈을 즐겁게 했다. 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러스트가 아닌 실제 사진들은 수필의 특징과 분위기를 살리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친숙함을 더 해주었고 수필답게 작가의 솔직한 생각을 볼 수 있었다.
철학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 속에서 '짜장면'은 매우 획기적인 수필이었다. 수필 처음부터 끝까지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먹은 하루를 일기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중국집의 풍경을 말하며 그런 중국집에서 먹는 짜장면이 최고다, 라고 말하는 글쓴이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웬만하면 근사한 곳에서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별로 공감이 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가을을 좋아하는 나였기에 무척 끌렸던 '가을 나무'에서 작가는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옳고 마땅하다고 알아 왔다고 한다. 그 뒤로는 내 조그만 뇌로 이해하기엔 버거운 문장들이 많아 나서 자라서 시들어 죽는 것, 또다시 죽음으로부터의 부활과 성장을 거쳐 영원한 대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이러한 일 자체가 이미 대자연의 법칙을 똑바로 증명해 보여 주고 있다는 말. 계절의 변화가 이렇게나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니 계절과 가을이 주는 진리를 생각해 보았다.
'푸를 청, 봄 춘'. 청춘. 글쓴이는 말한다. "청춘은 갔다."라고 말하는 것을 옳지 않다고. 젊은 것만이 청춘은 아니라고. 어쩌면 아직 우리에게 청춘은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어떻게 오지도 않을 걸 갔다고 할 수 있느냐고. 내 나이 아직 10대. 과연 나에게도 지금이 청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삶이 끝날 때까지 내가 청춘이라는 것을 겪을 수 있는 것인가.
'토실을 허문 데 대한 설' 겨우 한 장. 이글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의 이치대로 살라고.
'슬픔에 관하여'. 유난히 우울하고 슬픈 날이 많은 요즘. 슬픔은, 아니 슬픔이야말로 참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그 영혼을 정화하고 높고 맑은 세계를 창조하는 힘이 아닐까? 슬픔이 있어야 기쁨이 있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슬픔이 높고 맑은 세계를 창조한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기쁘고 즐거운 일이 가득해야 맑은 세계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지금은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어렷풋이 의미를 알 것 같다.
마지막으로, '구두'라는 수필에서 여자는 왜 그리 남자를 믿지 못하는 것일까. 여자를 대하자면 남자는 구두 소리에까지도 세심한 주의를 가져야 점잖다는 대우를 받게 되는 것이라면 이건 이성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그건, 세상이 그렇게 만든 게 아닐까? 참 웃기면서도 슬펐다.
제 딸의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