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한국문학 김원일 5권 세트 - 마당 깊은 집/겨울 골짜기/도요새에 관한 명상/마음의 감옥/어둠의 혼
휴이넘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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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생인 나(동생, 병식)는 한때 수재 소리를 듣다가 데모를 하다 대학에서 제적당하고 집에 내려와 있는 형을 생각한다. 무능력하고 소심한 아버지는 세속적인 가치만을 추구하는 어머니에게 눌려 지낸다. 나(형 병국)는 어머니보다는 아버지 쪽에 더 가까운 사람으로 산업화로 인한 공해 문제 특히 동진강 하구의 수질어염과 철새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 고향에 내려와서는 강가를 돌아다니며 오염도를 측정하거나 도요새에 대해 연구한다. 나(아버지)는 생활력이 강한 아내를 만나 부산에 정착하게 되었다. ‘어서 휴전이 되어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면’ 했던 희망이 깨진 후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데 기대를 걸었던 큰아들 병국이 대학에서 제적당하고 내려와서는 통제구역 안에 무단출입했다는 혐의로 잡힌다. 연락을 받고 가보니 병국이 병식이가 새를 독살했다고 말하며 수질오염 문제를 반드시 밝혀내겠다고 한다. 병식은 새를 팔아 돈을 벌고 병국은 새를 보호하기 위해 환경이론을 들먹이며 병식을 설득하려 한다. 그러나 병식은 병국을 뿌리치고, 병국은 홀로 발길을 돌린다.

나는 <도요새에 관한 명상>이라는 제목을 보아 분명 따분하고 조류 관찰일지와 같이 도요새에 관한 설명이나 늘어놓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환경오염과 물질만능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다. 다른 소설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도요새에 관한 명상>만의 특이한 점은 소설을 크게 4부로 나누어 단락마다 시점을 다르게 설정했다는 것이다. 1부에서는 새들을 잡아 팔려는 동생 병식이의 입장, 2부에서는 환경오염에 대하여 조사하고 있는 수재 형 병국의 입장, 3부에서는 부모와 형제, 약혼녀를 모두 북에 두고 온 병식과 병국의 아버지의 입장, 마지막으로 4부에서는 작가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전지적 작가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맨 처음에는 이렇게 관점이 바뀌는 소설이 드물어 생소해서 당황했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여러 인물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도요새에 관한 명상>은 큰 틀에서 보면 네 명의 가족이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각자 살아가는 이 네 명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이다. 병식이는 재수생이지만 공부는 하지 않고 새를 잡아 돈벌이에 급급하다. 반면, 병국이는 수재로 서울대에 입학하지만, 학생 운동에 참여해서 학교에서 제적된다. 그리고 고향에 내려와 환경 문제에 대해 홀로 싸운다. 새를 살리려고 하는 형과 그런 새를 잡는 돈을 벌려고 잡는 동생들을 보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같은 부모 밑에서 나고 자란 자식들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아버지는 의식은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무능함을 보여 주는 소극적 인물이다. 하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올바른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어머니는 물질적 풍요를 최대의 가치로 삼고 사는 인물로서, 부동산 투기 등을 통해 일확천금을 꿈꾸지만 제대로 되지 않고 자식에게 걸었던 기대마저도 깨어지게 되자 그 자식을 극도로 증오한다.

도요새는 자유를 상징한다. 병국에게 있어 도요새는 이러한 자유의 의미를 지니지만, 병식에게 있어 도요새는 하나의 경제적 이익일 뿐이다. 현대 사회는 현실적인 이익을 위해서 또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는 선악을 가리지 않는다. 오직 이익을 위해서라면 선보다는 악을 택하는 것이다. 이처럼 <도요새의 관한 명상>은 민족적 비극의 역사적 상황과 공해 문제 그리고 물질만능주의의 삶에 대한 비판과 순수한 인간성의 회복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제 딸의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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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새에 관한 명상 - 개정판, 서울대 교수진이 추천하는 통합 논술 휴이넘 교과서 한국문학
김원일 지음, 이정은 그림, 방민호 논술, 조남현 감수 / 휴이넘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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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생인 나(동생, 병식)는 한때 수재 소리를 듣다가 데모를 하다 대학에서 제적당하고 집에 내려와 있는 형을 생각한다. 무능력하고 소심한 아버지는 세속적인 가치만을 추구하는 어머니에게 눌려 지낸다. 나(형 병국)는 어머니보다는 아버지 쪽에 더 가까운 사람으로 산업화로 인한 공해 문제 특히 동진강 하구의 수질어염과 철새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 고향에 내려와서는 강가를 돌아다니며 오염도를 측정하거나 도요새에 대해 연구한다. 나(아버지)는 생활력이 강한 아내를 만나 부산에 정착하게 되었다. ‘어서 휴전이 되어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면’ 했던 희망이 깨진 후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데 기대를 걸었던 큰아들 병국이 대학에서 제적당하고 내려와서는 통제구역 안에 무단출입했다는 혐의로 잡힌다. 연락을 받고 가보니 병국이 병식이가 새를 독살했다고 말하며 수질오염 문제를 반드시 밝혀내겠다고 한다. 병식은 새를 팔아 돈을 벌고 병국은 새를 보호하기 위해 환경이론을 들먹이며 병식을 설득하려 한다. 그러나 병식은 병국을 뿌리치고, 병국은 홀로 발길을 돌린다.

나는 <도요새에 관한 명상>이라는 제목을 보아 분명 따분하고 조류 관찰일지와 같이 도요새에 관한 설명이나 늘어놓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환경오염과 물질만능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다. 다른 소설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도요새에 관한 명상>만의 특이한 점은 소설을 크게 4부로 나누어 단락마다 시점을 다르게 설정했다는 것이다. 1부에서는 새들을 잡아 팔려는 동생 병식이의 입장, 2부에서는 환경오염에 대하여 조사하고 있는 수재 형 병국의 입장, 3부에서는 부모와 형제, 약혼녀를 모두 북에 두고 온 병식과 병국의 아버지의 입장, 마지막으로 4부에서는 작가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전지적 작가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맨 처음에는 이렇게 관점이 바뀌는 소설이 드물어 생소해서 당황했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여러 인물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도요새에 관한 명상>은 큰 틀에서 보면 네 명의 가족이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각자 살아가는 이 네 명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이다. 병식이는 재수생이지만 공부는 하지 않고 새를 잡아 돈벌이에 급급하다. 반면, 병국이는 수재로 서울대에 입학하지만, 학생 운동에 참여해서 학교에서 제적된다. 그리고 고향에 내려와 환경 문제에 대해 홀로 싸운다. 새를 살리려고 하는 형과 그런 새를 잡는 돈을 벌려고 잡는 동생들을 보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같은 부모 밑에서 나고 자란 자식들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아버지는 의식은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무능함을 보여 주는 소극적 인물이다. 하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올바른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어머니는 물질적 풍요를 최대의 가치로 삼고 사는 인물로서, 부동산 투기 등을 통해 일확천금을 꿈꾸지만 제대로 되지 않고 자식에게 걸었던 기대마저도 깨어지게 되자 그 자식을 극도로 증오한다.

도요새는 자유를 상징한다. 병국에게 있어 도요새는 이러한 자유의 의미를 지니지만, 병식에게 있어 도요새는 하나의 경제적 이익일 뿐이다. 현대 사회는 현실적인 이익을 위해서 또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는 선악을 가리지 않는다. 오직 이익을 위해서라면 선보다는 악을 택하는 것이다. 이처럼 <도요새의 관한 명상>은 민족적 비극의 역사적 상황과 공해 문제 그리고 물질만능주의의 삶에 대한 비판과 순수한 인간성의 회복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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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새에 관한 명상 - 개정판, 서울대 교수진이 추천하는 통합 논술 휴이넘 교과서 한국문학
김원일 지음, 이정은 그림, 방민호 논술, 조남현 감수 / 휴이넘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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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 네 명의 가족이 각각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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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새에 관한 명상 만화로 보는 한국문학 대표작선 31
김원일 지음, 강웅숭 그림 / 이가서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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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생인 나(동생, 병식)는 한때 수재 소리를 듣다가 데모를 하다 대학에서 제적당하고 집에 내려와 있는 형을 생각한다. 무능력하고 소심한 아버지는 세속적인 가치만을 추구하는 어머니에게 눌려 지낸다. 나(형 병국)는 어머니보다는 아버지 쪽에 더 가까운 사람으로 산업화로 인한 공해 문제 특히 동진강 하구의 수질어염과 철새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 고향에 내려와서는 강가를 돌아다니며 오염도를 측정하거나 도요새에 대해 연구한다. 나(아버지)는 생활력이 강한 아내를 만나 부산에 정착하게 되었다. ‘어서 휴전이 되어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면’ 했던 희망이 깨진 후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데 기대를 걸었던 큰아들 병국이 대학에서 제적당하고 내려와서는 통제구역 안에 무단출입했다는 혐의로 잡힌다. 연락을 받고 가보니 병국이 병식이가 새를 독살했다고 말하며 수질오염 문제를 반드시 밝혀내겠다고 한다. 병식은 새를 팔아 돈을 벌고 병국은 새를 보호하기 위해 환경이론을 들먹이며 병식을 설득하려 한다. 그러나 병식은 병국을 뿌리치고, 병국은 홀로 발길을 돌린다.

나는 <도요새에 관한 명상>이라는 제목을 보아 분명 따분하고 조류 관찰일지와 같이 도요새에 관한 설명이나 늘어놓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환경오염과 물질만능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다. 다른 소설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도요새에 관한 명상>만의 특이한 점은 소설을 크게 4부로 나누어 단락마다 시점을 다르게 설정했다는 것이다. 1부에서는 새들을 잡아 팔려는 동생 병식이의 입장, 2부에서는 환경오염에 대하여 조사하고 있는 수재 형 병국의 입장, 3부에서는 부모와 형제, 약혼녀를 모두 북에 두고 온 병식과 병국의 아버지의 입장, 마지막으로 4부에서는 작가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전지적 작가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맨 처음에는 이렇게 관점이 바뀌는 소설이 드물어 생소해서 당황했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여러 인물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도요새에 관한 명상>은 큰 틀에서 보면 네 명의 가족이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각자 살아가는 이 네 명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이다. 병식이는 재수생이지만 공부는 하지 않고 새를 잡아 돈벌이에 급급하다. 반면, 병국이는 수재로 서울대에 입학하지만, 학생 운동에 참여해서 학교에서 제적된다. 그리고 고향에 내려와 환경 문제에 대해 홀로 싸운다. 새를 살리려고 하는 형과 그런 새를 잡는 돈을 벌려고 잡는 동생들을 보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같은 부모 밑에서 나고 자란 자식들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아버지는 의식은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무능함을 보여 주는 소극적 인물이다. 하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올바른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어머니는 물질적 풍요를 최대의 가치로 삼고 사는 인물로서, 부동산 투기 등을 통해 일확천금을 꿈꾸지만 제대로 되지 않고 자식에게 걸었던 기대마저도 깨어지게 되자 그 자식을 극도로 증오한다.

도요새는 자유를 상징한다. 병국에게 있어 도요새는 이러한 자유의 의미를 지니지만, 병식에게 있어 도요새는 하나의 경제적 이익일 뿐이다. 현대 사회는 현실적인 이익을 위해서 또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는 선악을 가리지 않는다. 오직 이익을 위해서라면 선보다는 악을 택하는 것이다. 이처럼 <도요새의 관한 명상>은 민족적 비극의 역사적 상황과 공해 문제 그리고 물질만능주의의 삶에 대한 비판과 순수한 인간성의 회복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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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고등 세트 (최신판, 전5권) (특별부록 :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고등 가이드북)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시리즈
고화정 외 엮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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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저번 주에는 시의 또 다른 진정한 묘미를 맛보게 해준 청소년 시집을 읽었다. 그에 이어 이번 주에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시를 읽게 되었다. 이러한 순서로 배열한 것은 수준이 높아졌지만 저번 주에 시를 즐겁고 부담 없이 읽었던 기억을 떠올려 거부감 없이 읽어보라는 선생님의 취지였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시를 여러 편 모아 두었지만 주제별로 알맞게 잘 모아둔 덕에 다 읽고 났을 때는 마치 하나의 스토리가 있는 책을 읽은 것 같았다. 또한 엮으신 분들이 독자인 청소년의 입장에서 해설을 써주신 덕분에 시를 이해하는 데에도 별 무리가 없었다.

아는 시들이 꽤 많아서 반가웠고 즐겁게 읽었다. 


가장 먼저 실려 있는 작품은 ‘개밥바라기별’로 인연이 있는 황석영 작가님의 작품이다.
<아우를 위하여>는 형이 아우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시작하여 형의 옛 이야기가 펼쳐진 후 다시 편지를 마무리하며 끝이 나는 특이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얼마 전, 박완서 작가님께서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작가님의 작품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성함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읽은 작품은 어렸을 때 읽었던 자전거 도둑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님의 작품 중 하나인 <배반의 여름>을 보고 반가웠다. <배반의 여름>의 주인공인 ‘나’의 머릿속에는 아버지와 전구라가 우상의 인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한 ‘나’에게 여름에만 세 사건이 일어난다. 여동생이 물에 빠져 죽은 후로 물을 무서워하는 ‘나’를 어느 날 아버지가 물에 던져 넣은 것이다. 또한 어릴 적 ‘나’의 눈에는 자랑스러워 보였던 아버지의 제복이 알고 보니 경비원 옷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우상의 대상이었던 전구라조차도 거짓과 위선으로 둘러싸인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 사건 모두 ‘나’에게는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었지만 그 덕분에 ‘나’가 얻은 것도 많았다고 생각한다. 물에 대한 공포에서 헤어날 수 있게 되었고, 더 넓은 세상을 알게 되었으며, 사람의 진정한 모습을 볼 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읽고 나니 이 소설의 제목이 이해가 갔다. 이 세 사건이 공교롭게도 모두 여름에 일어났고 ‘나’는 우상들의 실체를 알고 실망을 넘어선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봄봄>은 일전에 읽었던 작품이어서 수록된 작품 중 가장 친숙한 소설이다.
주인공인 ‘나’는 ‘봉필’의 딸과 결혼하는 것을 전제로 3년간 데릴사위 노릇을 한다. 하지만 ‘봉필’이는 딸이 키가 크지 않았다는 이유로 결혼을 시켜주지 않는다. ‘나’는 키가 얼른 커 주기를 빌기도 하고, 꾀병도 부리고, 떼도 써 보지만 언제나 ‘봉필’에게 지기만 한다. 나는 ‘나’가 항상 당하기만 하는 것이 답답했지만 ‘점순이’의 행동이 더 답답했다. ‘점순이’는 ‘봉필’이 갖가지 수를 쓰는 줄은 모르고 '나'만 나무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점순이’가 진심으로 '나'와 결혼하고 싶었다면 '나'를 시키는 것보다 ‘봉필’에게 자신이 직접 부탁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는 좋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이 소설은 데릴사위라는 무거운 제도에 대해 풍자하고 있는 데에도 불구하고 김유정 작가님의 <동백꽃>, <만무방>과 같이 해학적이어서 웃으면서 읽을 수 있었다. ( :동백꽃, 봄봄 모두 여주인공이 점순이...?)



짤막짤막한 수필들은 마치 남의 일기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단편소설이라지만 가지각색의 사연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소설편보다 훨씬 수월하게 읽었다. 글 사이에 글과 어울리는 사진들도 눈을 즐겁게 했다. 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러스트가 아닌 실제 사진들은 수필의 특징과 분위기를 살리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친숙함을 더 해주었고 수필답게 작가의 솔직한 생각을 볼 수 있었다.

철학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 속에서 '짜장면'은 매우 획기적인 수필이었다. 수필 처음부터 끝까지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먹은 하루를 일기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중국집의 풍경을 말하며 그런 중국집에서 먹는 짜장면이 최고다, 라고 말하는 글쓴이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웬만하면 근사한 곳에서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별로 공감이 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가을을 좋아하는 나였기에 무척 끌렸던 '가을 나무'에서 작가는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옳고 마땅하다고 알아 왔다고 한다. 그 뒤로는 내 조그만 뇌로 이해하기엔 버거운 문장들이 많아 나서 자라서 시들어 죽는 것, 또다시 죽음으로부터의 부활과 성장을 거쳐 영원한 대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이러한 일 자체가 이미 대자연의 법칙을 똑바로 증명해 보여 주고 있다는 말. 계절의 변화가 이렇게나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니 계절과 가을이 주는 진리를 생각해 보았다.

'푸를 청, 봄 춘'. 청춘. 글쓴이는 말한다. "청춘은 갔다."라고 말하는 것을 옳지 않다고. 젊은 것만이 청춘은 아니라고. 어쩌면 아직 우리에게 청춘은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어떻게 오지도 않을 걸 갔다고 할 수 있느냐고. 내 나이 아직 10대. 과연 나에게도 지금이 청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삶이 끝날 때까지 내가 청춘이라는 것을 겪을 수 있는 것인가.

'토실을 허문 데 대한 설' 겨우 한 장. 이글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의 이치대로 살라고.

'슬픔에 관하여'. 유난히 우울하고 슬픈 날이 많은 요즘. 슬픔은, 아니 슬픔이야말로 참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그 영혼을 정화하고 높고 맑은 세계를 창조하는 힘이 아닐까? 슬픔이 있어야 기쁨이 있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슬픔이 높고 맑은 세계를 창조한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기쁘고 즐거운 일이 가득해야 맑은 세계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지금은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어렷풋이 의미를 알 것 같다.

마지막으로, '구두'라는 수필에서 여자는 왜 그리 남자를 믿지 못하는 것일까. 여자를 대하자면 남자는 구두 소리에까지도 세심한 주의를 가져야 점잖다는 대우를 받게 되는 것이라면 이건 이성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그건, 세상이 그렇게 만든 게 아닐까? 참 웃기면서도 슬펐다.

제 딸의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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