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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소식 ㅣ 패트릭 멜로즈 소설 5부작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 지음, 공진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평점 :
지난 5월 13일, 영국과 미국에서는 새 드라마가 전파를 탔다.
영국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주연으로 한 드라마 <패트릭 멜로즈>가 바로 그것인데, 전화벨과 함께 시작된 첫 장면에서 패트릭(베네딕트 컴버배치)은 수화기 너머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슬퍼하기는 커녕 지그시 웃음을 짓는다. 그 뒤로 아버지의 유해를 가지러 뉴욕에 온 그가 마약에 취해 벌이는 행동들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런 베네딕트의 연기가 무척 인상적이어서 원작에서 패트릭의 상황과 감정을 이해하고 싶었는데 마침 국내에서도 원작 시리즈가 번역, 발간되어 다행이고 기쁘게 생각한다.
<1부-괜찮아>가 멜로즈 가족과 주변 인물들을 골고루 다뤘다면, <2부-나쁜 소식>은 성인이 된 패트릭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괜찮아>에서 아버지로부터 끔찍한 학대를 받은 5살 패트릭은 그 후 어떻게 성장했을까?
굳이 그의 성장기를 일일이 나열하지 않아도, 패트릭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 <나쁜 소식>을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패트릭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저지른 짓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게 되었고 그 속에서 느낀 굴욕과 울분, 원망으로 피폐해진 심신은 '마약'이라는 도구로 깊이 얼룩진다. 그러던 어느 날, 이렇게 자기 자식에게 끔찍한 악몽과 후유증을 안겨 준 아버지가 호텔방에서 죽었다는 연락이 오면서 패트릭의 두번째 이야기는 시작된다.
“패트릭, 자네 아버지가 간밤에 호텔에서 죽었어...(중략) 자네 이 힘든 시간을 지나려면 정신을 단단히 차려야 할 거야.” p.14
전화기 너머로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들은 패트릭은 슬프기는커녕 웃음이 날 지경이다.
힘든 시간이라고? 자신을 학대한 아버지가 죽었는데? 오히려 거리에 나가 미친 듯이 웃으며 춤을 추고 싶은 마음이다.
평생을 증오한 아버지가 죽었으니 과연 패트릭의 트라우마도 해결이 될까?
그런데 어찌된 것이 죽은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온 후로도 계속 온갖 마약(길거리 가짜 마약까지도)을 섭렵하며 끊임없이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한다. 오히려 그의 거친 생각과 마약에 대한 동경은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 그를 옭아매는 원초적 트라우마는 단지 그 상대가 없어졌다고 해결될 것이 아니었다. 기억은, 너무도 또렷한 그 기억은 패트릭을 자꾸만 현실 속에서 분열시키고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아이러니 하게도 각종 폭력적인 상상을 만들어내며 현실에서 온전히 살지 못하는 패트릭의 모습에서 아버지 '데이비드'의 모습이 비춰졌음을 어떻게 부인할 수 있을까? 내가 느낀 패트릭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의 폭력성과 그릇된 가르침, 학대에 주입된 사람이었다. 하아, 정말이지 한 인간의 인격 형성에 있어 어린 시절이 이렇게 중요한 것을...!
이런 생각을 뒷받침 하듯 드라마 4부 <모유>에서는 패트릭 역시 자신의 폭력성을 아들들이 물려받을까봐 걱정하기도 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패트릭이 호텔 스위트룸에서 온갖 마약에 취해서 상상속의 인물을 끄집어내는 장면이다.
유모, 뚱뚱보, 장군 등등... 그가 만들어낸 캐릭터들의 대사와 아버지를 묘사하는 풍자 섞인 조롱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 이 장면이 얼마나 심각하고 슬픈것인지를 잊게 할 정도였다.
이렇듯 작가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은 마약으로 점철된 패트릭의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면서 자칫 마약이란 소재로 인해 독자가 불쾌감이 들 수도 있을 법한 장면들을 거부감 없이 나타냈다. 또한 작가의 우스꽝스런 묘사들과 신랄한 풍자는 1편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재밌어서 가독성 또한 좋았다.
패트릭의 20대 인생은 이렇게 저 바닥 끝까지 곤두박칠 쳤지만 나는 이 상황이 마냥 비극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3편-일말의 희망>에서는 제목처럼 그에게 살고자 하는 '의지'가 찾아오리라 믿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패트릭이 가진 희망의 씨앗을 보았으니까.
2편까지 읽고 나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패트릭의 인생을 깊이 응원하게 됐다. 이게 <패트릭 멜로즈>가 지닌 가장 큰 매력인가보다. ♥
‘패트릭이 헤로인에 대해 느끼는 것은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느끼는 것과 같았고, 패트릭이 사랑에 대해 느끼는 것은 사람들이 헤로인에 대해 느끼는 것과 같았다‘ p.65
‘아버지, 아버지는 그리도 지독히 슬픈 사람이었는데, 이젠 나도 슬픈 사람으로 만들려는군요. (중략) 어유, 안되셨어.‘ p.41
‘자유로워지기 위해 어떤 수단을 쓸 수 있을까? 경멸? 공격성? 증오? 이것들은 모두 아버지의 영향으로 오염되었다.‘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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