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어디 있어요? - 2020 책날개 선정도서, 2020 학교도서관저널 추천도서, 2020 아침독서신문 선정도서 바람그림책 79
안은영 지음 / 천개의바람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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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늦잠을 잤다. 태산 같이 쌓인 과제를 해치운답시고 새벽 늦게야 잠이 들었다. 거기다 당장 오전 강의 시간에 있을 발표 준비를 하느라 사실 거의 밤을 새웠다. 부랴부랴 집을 나서고 버스정류장을 향해 뛰었다. 몇 분은 걸릴 거리를 1분도 안돼서 도착했건만, 하늘이 무심하게도 버스는 빨리 오지 않았다. 한참 있다 온 버스는 나를 태우고선 또 한참을 느릿느릿하게 움직였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입으로는 발표 원고를 재차 읊조리고, 눈으로는 휴대폰 시간을 재차 확인하면서 마음을 졸였다. 원래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조금 일찍 학교에 도착한 다음, 빈 강의실에서 미리 발표 연습을 하려고 했건만. 평소보다 조금 일찍은커녕 강의가 시작되기 전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헐레벌떡 뛰어 온 탓에 옆자리에 앉은 친구의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숨을 골랐다. 그리고 마침내 시작한 발표. 밤을 거의 새면서까지 연습을 한 덕분인지, 별 탈 없이 준비한 대로 무사히 끝마쳤다. 그렇게 긴장으로 가득 찼던 강의가 끝나고, 친구와 함께 빈 강의실에 그대로 앉아 잠시 쉬려던 참이었다. 친구에게 하마터면 오늘 늦을 뻔 했다고, 하늘이 무심하게 버스도 늦게 왔다고 재잘재잘 말을 건네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친구가 먼저 말을 건넸다. 혹시 오늘 뉴스 봤냐고.

아니, 일어나자마자 바로 뛰어와서 뉴스 볼 새도 없었어. 왜? 무슨 일 있어?

그 말을 끝으로, 친구는 수업 시간 내내 눈을 떼지 않았던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휴대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말을 잇지 못했다. 헐레벌떡 뛰어 온 내 목을 축여줬던 달디 달았던 물은 동시에 누군가에겐 쓰디 쓴 암흑을 드리우고 있었다.

 

2014년 4월 16일, 여기까지가 세월호 기사를 처음 접했을 때 나의 상황이다. 그날의 하늘은 정말로 무심했다. 얼마나 무심했는지 그날의 일, 그날의 감정들이 5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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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6일, 어느 순간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새까만 표지에 써진 노란색 제목이 눈에 띄었다.

 

"할머니, 어디 있어요?"

이 책은 어느 까만 밤, 죽은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한 아이의 작은 속삭임으로 시작한다. 아이는 까만 밤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들에서도 할머니를 찾고, 귀여운 친구들이 나오는 그림책 속에서도 할머니를 찾는다. 아이는 그렇게 할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이것저것을 찾고 살피며, 할머니의 흔적을 따라가 본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까만 밤하늘에 빛나던 별들은 자취를 감추고 방긋 해가 떠오른다. 아이의 마음에도 어둠이 걷힌다.

이 책은 까맣다. 안그래도 까만 표지를 열면 그야말로 더 새까맣다. 암흑.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검은색 내지가 그 첫 인사를 건넨다. 새까만 책장을 한장한장 넘길수록, 그리움을 가득 품은 아이의 시선을 따라 무언가가 하나씩 나타난다. 아이의 작은 속삭임을 시작으로 할머니를 떠오르게 하는 별, 할머니가 읽어 주시던 그림책, 할머니의 물건 등 할머니의 흔적이 하나씩 모습을 보인다. 이를 따라 아이의 그리움이 점차 옅어질수록 까맣던 책도 점차 새로운 색을 보여준다.

이 책은 따뜻하다. 표지를 열자마자 나오는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검은색 내지는 따뜻한 기운을 풍긴다. 왜 일까. 아마도 텅 비어 있는 것이 아닌게 아닐까?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게 아니라, 이미 그 속엔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아이의 애틋함이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은 떠올리게 한다. 언젠가 나에게 슬픔을 안겨주었던 소중한 누군가와의 이별, 누군가의 죽음, 그것에서 무뎌지기 위해 애를 썼던 시간들을. 그리고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슬픔을 겪었고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는 모든 이들을. 달력에 아무런 표시를 하지 않아도 잊을 수 없는 날, 잊을 수 없는 어여쁜 이들, 그들을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는 어떤 이들을.

책 속의 아이는 언제까지나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살아갈 것이다. 다만 방긋 떠오른 해를 만난 이제는 그 그리움의 빛깔도 온도도 향기도 모두 바꼈을 것이다. 할머니를 떠오르게 하는 까만 밤은 살을 할퀴는 차가운 암흑이 아닌, 마음을 다독이게 하는 따스한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나 또한 이 책을 통해 깊은 위로를 받았다. 꼭 4월 16일이 아니어도 떠오르는 그들, 그날의 일, 그 이후의 시간들, 그 속에서 받았던 상처들에 살짝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느낌이었다. 소중한 누군가의 죽음, 아꼈던 무언가와의 이별, 시대가 겪은 슬픔에 살포시 위로의 손길이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이 책을 접하는 많은 이들이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한다.

더욱 많은 이들이 이 책을 통해 잠시나마 작게나마 따뜻한 위로와 힘을 얻게 되길 바란다. 위로가 필요한 모든 이들에게도 책 속의 아이처럼 방긋 해가 떠오르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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