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멜로디
조해진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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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당연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어두운 골방에서 홀로 버텨내던 열두 살 소녀, 권은에게 카메라를 선물한 같은 반 반장, 승준.
어느 날 우연히, 갑작스레 등장한 후지사의 반자동 필름 카메라를 통해 죽음이 아닌 삶 쪽으로 한발짝 내딛게 된 권은의 이야기.
그녀 또한 승준처럼 낯선 나라의 죽음과 직면한 낯선 이들에게 삶으로의 한 칸 이동이 가능한 손길을 내밀어 준다.

이들의 계산되지 않은 손내밈은 서로에게 되돌아가는 대신 다른 곳으로, 제3의 누군가에게 전염되듯 옮겨간다. ‘호의’에는 강력한 힘이 있어서 그것을 건네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이 받은 것을 건네게 되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진정한 구원과 사랑이 남아 있다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사회적으로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인물들에 애정과 관심을 두고, 사회의 관심 밖에 놓인 인물의 삶을 응시하며, 이를 단단하고 진정성있는 문장으로 그려내는 작가_조해진. 이미 발표되었던 단편 <빛의 호위>가 장편으로 확대되며 배경이 확장되고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들이 이어져갔다. 한 인터뷰에서 작가 조해진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동시대 전쟁을 바라보며 전쟁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문학으로 증명하는 소설을 쓰고 싶어졌다고.

P120 누군가 이런 말을 했어. 사람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아무나 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일이라고, 그러니까…내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네가 이미 나를 살린 적 있다는 걸, 너는 기억할 필요가 있어.

P165 책상 위 흑백사진에 다시 시선이 갔다. 돌연 마음이 아파온건 그들을 만나지 못한 세월이 한 사람이 태어나 자라서 노인이 되는 세월만큼 길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부터였을 것이다.

P171 인간의 셈법으로는 추정이 무의미한 먼 과거를 떠도는 별들이었다. 시간을 초월하여 지구의 밤하늘에 도달한 저 별빛들이 꺼지지 않는 한, 세상의 모든 아픔은 결국 다 사라질 것만 같다는 낙관을 품지 않을 수 없었던 밤.

P236 “ 그래도 어쩌겠어요, 누군가는 그 안의 사람들이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보여줘야죠. 영상이든 사진이든 그걸 본 사람들이 그 순간에만 깜짝 놀라거나 아파할 뿐, 돌아서면 바로 잊어버린대도요.”

보답을 바라지 않는 어떤 호의는 사람을 살리는 일도 용기있게 해낸다. 사람을 살게 하는 건 아주 작은 호의, 혹은 증여이다.

<작가의 말>에는 마음을 울리는 감동이 있었고, 이야기를 전해준 작가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깊은 곳 어딘가에서 조용히 흐르게 해주었다. 권은이 들여다보던 스노우볼 속의 세상처럼.

🔮세상 곳곳에 여전히 크고 작은 분쟁과 전쟁이 일어나고 있어서, 아픈 그곳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이 소설을 쓰는 것이 가능했다. 그랬으므로, <빛과 멜로디>가 내 안의 미안함에 머무르지 않고 또다른 ‘사람, 사람들’ 을 만나 더 먼 곳으로 더 깊은 곳으로 흘러가 점등되기를 지금 나는, 고요히 꿈꾼다.

망각되지 않고 기억될 수 있도록,
아픔과 고통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모일 수 있도록…

📌출판사 문학동네로 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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