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영사 문지 스펙트럼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최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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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되돌아오지 않을 수 있을까? 길을 잃어야 해.
🔺나는 설명할 수 있는 이유없이 웁니다. 그저 고통이 나를 관통하는 것 같다고 할까요. 누군가 울어야 하고, 그 누군가가 바로 나인 것 처럼요.

프랑스 식민지하의 1930년대 인도차이나. 프랑스 대사관을 둘러싼 철책을 중심으로 안과 밖이 나뉘어진다.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걸인과 문둥병자들이 철책 바깥세상의 가난, 고통, 질병을 의미한다면 철책 안쪽세상은 안락하고 부유한 백인들을 대변한다. 파티를 즐기고 의미없이 타인의 이야기들을 입에 올리는 인물들. 그 두 세상이 공존한다.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하고 집에서 쫓겨나 광활한 평원의 배고픈 길 위를 걷는 소녀, 라호르에서 문둥병자들에게 총질을 해 캘커타로 불려와 다음 임지를 기다리고 있는 부영사_ 장 마르크 드 아슈, 대사의 부인이자 두 딸의 엄마이며, 무수한 연인과 친구를 둔 중년 여인 _ 안 마리 스트레테르가 이야기의 중심적 세 인물이며 그 주변의 서브 인물들이 등장해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대화는 답을 원하지 않는 일방적인 방향으로 치닫고, 이야기속에 이야기가 액자처럼 등장해, 현실감을 모호하게 방해한다.)

<부영사>는 모든 존재적 고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뒤라스 자신의 삶이 역사속의 아픔과 상실을 감내해야 하는 녹록치 않은 여정이었음이 작품내에서 고스란히 전달된다. 상실과 파괴, 고통과 눈물의 이야기이다. 뒤라스의 글은 매력적이지만 읽기에는 쉽지 않다. 짧게 뱉어내는 호흡같이 잘게 분절된 문장들은 길을 가는 내내 의구심과 이해에 대한 질문을 던져 준다.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나? 쉼표와 마침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등장한다. 인물들은 서로 사건이나 관계로 연결되지 않고 결론을 향해 가는 서사가 없다. 대신 장면 마다의 분위기, 공기, 날씨, 내면의 감정 묘사로 영화를 읽고 있는 듯하다. 하나의 결론, 정해진 결말이 아닌 다중적 해석을 원하는 뒤라스의 자유로운 속마음처럼 느껴진다.

P201 “진행 중인 삶 속의 죽음,“ 마침내 부영사가 말한다. ”그러나 결코 만나지지는 않는 죽음? 그것이오?“ 그것이다. 아마도, 그렇다.

P238 낮이 으스러진다. 해는 섬 위에 있고, 사방에 태양 빛이 가득하다. 잠든 소녀의 밝게 비추어진 몸 위에, 그리고 그들 위에도, 그늘진 방 안에 곱게 보존된 채, 여기저기에 누워 자고 있는 그들 위에도.

옮긴이(최윤)의 말을 빌어 이해의 폭을 넓혀본다.
뒤라스의 작품들에서 사랑은 하나의 존재론, 인간론으로 자리 잡는다. 뒤라스적 사랑은 현대가 겪고 있는 깊은 고통, 죽음과 이별과 전쟁 그리고 여전히 그녀에게 생생한 홀로코스트…같은 잊기 힘든 존재의 파국들에 대한 고뇌의 성찰이자, 파괴되어가는 세계에 대해 가장 구체적이며 급진적으로 제안된 대안이 된다.

명성과 이해가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말도 공감되었다. 결과적으로 있어야 할 것의 부재_ 상실에 대한 이야기였던 <부영사>. 어렵지만 한번쯤은 만나봐야 할 뒤라스인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은 책을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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