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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한 번 써본 마음은 남죠. 안 써본 마음이 어렵습니다. p283
창비 서평단을 신청해서 가제본 책을 받아볼 수 있었다. 신기했다. 세상에 없는 책을 읽을 생각에 설렜다. 표지는 어떻게 나올지 기대된다.
윗사람에게는 파업 전과자, 동료에겐 내부고발자로 낙인찍혀 왕따 생활을 하는 경애. '회장 낙하산'이라는 소문 덕분에 겨우겨우 출근은 하고 있는 상수. 회사의 특별 관리 대상이 된 두 사람은 영업팀으로 뭉쳐 격리되고 베트남 지사로 가게 된다.
경애와 상수는 과거의 상실 때문에 현재의 삶에 집중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은 애정 없이 흘러간다. 경애는 매사에 사무적이고 까칠하다. 상수는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 공백을 참지 못하고 말을 쏟아낸다.
그렇게 소멸은 정확하고 슬픈 것이었다. p33
그렇게 사랑이 시작되는 과정은 우연하고 유형의 한계가 없고 불가했는데, 그것이 사라지는 과정에는 아주 정확하고 구체적인 알리바이가 그려지는 것이 슬펐다. p32
상수의 유일한 취미는 페이스북 페이지 '언니는 죄가 없다'를 운영하는 것이다. 상수는 인터넷 안에서만큼은 '언니'로 불리며 여성 팬들의 연애 고민 상담을 해준다. 어느 날, 경애에게서 메일이 오면서 상수와 경애의 마음은 얽히기 시작한다.
둘을 잇는 과거의 화재 사건, 그리고 E.
"나는 그 영상을 아주 솔직하게 찍었어."
조용히 듣고 있던 E가 반대는 하지 않고 다만 쑥스러워하며 대답했다.
"거기에는 내 마음이 다 담겨있어."
그러면서 E가 사람들 몰래 경애의 손을 살짝 잡았다 놓았기 때문에 경애는 그 말을 할 때의 E의 톤, 목소리, 말투를 다 기억했다. 거기에는 내 마음이 다 담겨 있다는 말. p65
'경애의 마음'은 영화 같은 책이다.
오랜만에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읽으면서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초반에 인물 배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는 집중이 잘 안됐다. 지루하다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별로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사건이 생기고 인물의 내면이 움직이기 시작할 때부터 점점 재미있다가. 경애와 상수의 이야기가 서로 맞아 돌아가면서부터는 끊지 않고 단숨에 읽었다.
'경애의 마음'은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결핍이 있는 사람들이 뭉쳐 결국엔 치유를 통해 성장한다는 자칫 뻔한 책이 될 수 있었다.
경애와 상수는 좌절을 겪었지만 다른 소설의 인물들이 그렇듯 자기 삶을 파괴시키고 극단적으로 몰고 가지 않았다. 오히려 그냥 보통 사람이 그렇듯 조금 아파하다가 곧 일상을 시작했다.
상처를 공유한 후, 그들의 성장도 극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경애는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상수는 새 직업을 찾았다.
이러한 담백함이 좋다. 다시 한번 읽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기억은 아프다. 하지만 추억한다면 아름답다. 이제 경애와 상수는 서로의 기억을 공유하며 아픔을 아름다움으로 추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추억에 로망이 있는 사람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