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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를 위한 현실주의 -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이주희 지음 / Mid(엠아이디)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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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를 위한 현실주의


강자와 약자를 나누는 힘의 논리가 무서운 점은
그 안에 스펙트럼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얼마나 강한가 얼마나 약한가 라는 평가는
탁상공론일 뿐 현실에선 결국 나보다 강한가
약한가만이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중국 일본 미국 그리고 핵무기라는 비대칭군사력을
보유한 북한에 둘러싸인 지금의 환경에선 약자,
그 것도 최약체에 위치한다.

비록 인구수 경제규모 국방력 등의 종합지수에서
대한민국이 세계적으로 중진국 수준의 국력을
자랑한다는 것과 이에 대해 우리가 갖는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처한 지정학적 위치에선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저자는 이 것이 바로 카이사르가 2000년도 더
전에 말했던 '보고싶지 않은 현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비록 쉽지 않은 현재가 미래까지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일제가 한국인의 저항정신을 꺼뜨리기 위해
정립한 '지정학적 숙명론'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해방 후 한국전쟁이라는 최악의 참사를 겪었음에도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최전선이라는 지정학적
위치를 활용해 미국의 막대한 군사적 경제적 지원을
이끌어 내어한강의 기적을 일구었고 지금의 국부를
창출해낼 수 있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요인에는 물론
국민들의 교육열과 더 나은 내일을 바라는 노력이
중요했지만 당시의 냉전체제에서 육지에 국경을 맞댄
최전선이라는 상황을 역으로 이용해 미국과 자유세계의
지원을 이끌어 낸 독재자 박정희 정권의 강력한 리더쉽과
'정확한 눈'이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현재의 상황이 어렵더라도 정확한 눈과
자신만의 무기를 갖추고 있다면 얼마든지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큰 도약을
위한 발판으로 삼을 수 도 있다는 것을 지난 역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1부인 신라의 삼국통일에서 당시 신라의 지도층이
보여준 살신성인의 자세는 정말 두고두고 귀감으로
삼아야 할 정도이다.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남동부 끝자락에 위치했을
뿐 아니라 고구려 백제 일본에 둘러싸인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결국 기적을 이루어 낸 신라의 삼국통일은
비록 티벳(토번)의 중국 침공이라는 하늘의 도움도
있었지만 신라를 최후의 승자로 만들었다.

행운은 준비한 자에게만 찾아온다는 격언처럼
신라 지도부가 중국에 대한 처우를 처음부터
명확히 잡아놓고 큰 그림을 그려놓지 않았다면
티벳과의 전쟁이라는 호기를 활용할 수 있었을까?
대체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자 태종의 치세하에서
개국효과를 자랑하던 당나라를 상대로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리고 도박을 한 것인지 정말
신라지도부의 이 패기에는 그저 미친짓이었다고밖에
설명이 안되지만, 결국 그들은 라스트맨스탠딩을
해내고야 말았다.


2부인 거란전쟁에서 서희가 보여준 외교관으로서의
모습과 고려 국왕 현종이 보여준 결단력, 그리고
그 와중에 고려의 지도부라는 사람들이 보인 한심한
작태는 위급한 상황에서 냉정한 분석과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일깨워 준다.
모두가 예스를 외칠때 혼자 노를 말할 수 있는 대담함
역시 두고두고 감탄할 일이다.
(다만 현종의 결단에 대한 저자의 부연설명이 정리가
안되어 있어 혼란스럽다. p164~165에선 현종의
합리적 판단근거에 대해 나열하고 있는데 우선 저자는
개경이 수 대에 걸쳐 성벽이 보강되어 방어력이 높았다고
하지만 개성은 거란이 2차침입을 하기 전까지 도시에
제대로된 성벽도 없었고 결국 거란이 물러난 후
강감찬의 제의로 1009년부터 축성을 시작했으나
전후의 재정파탄 등의 이유로 진행이 제대로
되지 않아 결국 21년만인 1029년에 완공된다.
이 것이 유명한 '개경 나성'으로 거란의 3차침입당시엔
아직 성벽이 공사중인 채로 방치되어있던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p165에선 '일국의 수도인 만큼...
그 숫자도 결코 적지 않은 것이 통상적이다...'라며
현종의 개경잔류 판단 근거 중 적지 않은 숫자의
군사수를 언급하지만 바로 다음 페이지인
p166~167에선 ' 당시 개경에는 정말로 병력이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정 반대의 서술을 하고있다.
정리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3부와 4부에선 반대로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
보는 어리석은 눈을 가진 자들이 가져오는 파멸과 참상이
특히 무능한 지도층을 가진 국민들에게 어떤 고통을
부과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4부에서 선조와 조선이 보인 어설픈 중립과
그로 인한 파탄은 현재의 한국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았는데, 한국정부는 '운전자론'을 운운하며
북한과 미국 사이의 관계를 중재하겠노라 호기롭게
선언했으나 지난 하노이회담에서 드러났듯 북한과
미국 모두 한국은 안중에도 없었을 뿐더러 미국은
한국에게 '당신들은 우리의 동맹인데 어째서
운전자론을 운운하는 것이냐'고 항의했다.

북한은 북한대로 우리 정부에게 함부로 나서서 '
설레발을 치지 말라'는 모욕을 서슴지 않으면서도
각종 지원을 대놓고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우리가 중재자를 자처하고 나섰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중재자 역할을 하기로 한 이상 북한이 중재에
응할수 있도록 달래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일각에선 이러다가 한국까지 세컨더리 보이콧
대상에 포함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까지 나오고
있는데다 미국은 미국대로 자신들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선언한 중재자역할에 불쾌함과 의심을
표출하고 있으며 최근 한국의 대 이란 원화 무역결제의
연장을 불허한 것 처럼 동맹국으로서 한국에 부여해왔던
여러가지 특혜들을 손질하는 식으로 불이익을 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야말로 어느때보다 냉철한 눈이
필요하다.

신라, 고려, 한국전쟁 후 대한민국의 경우처럼
한반도는 언제나 지정학적으로 불안정한 위치였으며
우리민족은 늘 약자의 입장에서 고뇌하고 저항해야했다.

즉 지금의 국제정세 역시 미증유의 사태가
아닌 것이다. 그러니 지난 역사를 돌아보며
차분하고 의연한 안목으로 현실을 타개해
나가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GREAT KOREA AGAIN 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끝으로 저자의 말처럼 국제정세에 대한 안목을
키우기위해 우리 상황보다 당시의 상대국 입장을
더 자세히 적은 점이 좋았다. 자의식과잉에 빠져
내가 속한 문제이니 내가 주인공이라는 생각과 행동은
안타깝지만 힘이 받쳐주지 않는 한 그저 광대 취급의
웃음거리만 될 뿐이다. 스스로마저 타자화해놓고
국제정세 전체를 살펴보는 안목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통찰에 깊이 동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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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으로 읽는 중국사 - 중국을 만든 음식, 중국을 바꾼 음식
윤덕노 지음 / 더난출판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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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알려진 중국의 여러 모습 중 하나는 '산해진미'의 나라이다.

넓은 영토에서 나는 다양한 식재료와 그 것들을 이용해 다채롭고

품격있는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수준높은 교양이 선제조건인

이 산해진미는 오랫동안 중국의 소프트파워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인식되어왔고
은연중 우리의 인식 속에서 중국이라는 나라의 위상을 높이는데도 일조해왔다.


허나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중국이 과연 진짜 중국일까?

서문에서 던진 저자의 도발적인 질문처럼 중국을 대표한다고 생각했던

이 음식이라는 소재로 다시 바라본 중국은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일례로 책에서도 언급되는 실크로드가 있는데, 그간 우리의 관념 속에서

실크로드는 '중국 하이테크놀로지의 정수인 비단이 서방으로 수출되던

일방적인 루트'였다.

허나 무역은 결국 교환인데 그로인해 중국이 수입한 서방의 물자는 무엇이었을까?

정말 중국이 그들 스스로 주장하는 것처럼 자급자족이 가능한 아쉬울 것 없는

경제대국이자 문화강국이었다면 어째서 손해보는 장사였을 이 무역루트가

오랫동안 지속되고 심지어 바닷길까지 개척되며 활성화되었던 것일까?


또 현재 중국 육류 소비량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사랑받으며
우리에게도 중국음식을 대표하는 식재료로 알려진 돼지고기가
겨우 명나라시대에 이르러서야 황제의 식탁위에 올라올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이와 달리 현재 중국 육류 소비량 중 겨우 3퍼센트에 불과한 양고기는

중국문화의 정수인 한자에서 돼지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쓰였을 뿐더러

명나라 이전까지의 문헌에서는 중상층 이상이 즐겨먹던 식재료로 대표되었는데

어째서 중국인의 식성인 양고기에서 돼지고기로 비교적 최근에 이르러 뒤바뀐 것일까?

 
이처럼 저자는 음식이라는 소재로 중국을 볼 때 그들이 자랑하는 음식문화가

사실은 서역 북방 유목민 중원의 한족 남방의 묘족이 광범위하게 섞이면서 탄생한

융합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중국의 실제 역시 이처럼 시종일관 주변민족과의

교류 속에서 부침을 거듭해온 정상적인 보통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일 뿐

그들이 주장하는 허상 속의 중화주의는 없다는 것을 폭로하고 있다.



몇년 전부터 슈퍼차이나, G2, 중국몽 등 호들갑을 떨며 중국의 선전활동을
자청했던 우리나라 언론과 정치인들이 곧이어 터진 중국주식폭락과
미중무역전쟁에서의 일방적인 수세 앞에선 꿀먹은 벙어리인 것처럼 입다물고 있는

작태를 보이는 것을 보고 과연 우리가 아는 중국과 중국의 실상은 얼마나 다른가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 주변에도 슈퍼차이나라는 KBS의 중국찬양방송에 혹 해

중국에 투자했다가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덕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좋든 싫든 중국과 이웃나라로 살아야 하는 우리의 입장에서
이제는 차분하게 중국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분위기가 더 널리
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우리가 중국이 주장하는 중화주의 대로 그들을 봐줘야 하는가?



이 책은 음식이라는 매력적인 소재로 중국의 생활사를 알려줄 뿐만 아니라
중국을 인식하는 관점, 나아가 역사를 바라보는 태도에 대해 돌아보게까지
해주는 유익한 책이다.



저자의 다른 저서들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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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1 - 1910-1915 무단통치와 함께 시작된 저항 (박시백의 일제강점기 역사만화) 35년 시리즈 1
박시백 지음 / 비아북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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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거부감이 드는 가장 큰 이유는
학창시절에 겪었던 '암기'의 고통때문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근대사는 그야말로 암기지옥인데,
근대사 관련 문제에 단골로 출제되는 '사건순서배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매년마다 쏟아져 나왔던
무수히 많은 사건들과 협회들, 인물들의 이름을
말 그대로 '꿰고'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런 괴로웠던 기억때문에 나름 역사애호가
취미라고 하면서도 근대사쪽은 엄두도 내지 못했었고,
그렇기에 박시백의 [35년]이 여간 반갑지 않았다.




허나 책을 다 읽은 후 만족감보다는 아쉬움이 더
강하게 남았는데, 우선 이 책은 '만화'라는 매개물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때문이다.


만화는 활자보다 그림의 면적이 더 큰 특성으로

'네러티브 서술'에 적합한 형식이다.

즉 어느해에 누가 무엇을 했다는 식의 단편적인 교과서적

서술이 아니라 기승전결이 이어지는 '스토리'를 들려주는 것이다.


다른 예를 댈 것도 없이 박시백의 대표작인 [조선왕조실록]이

가장 훌륭한 예시라고 할 수 있는데, [조선왕조실록]은 지난

역사적 사건들을 그저 단편적인 사실들의 나열이 아닌 그 흐름 속의

인과관계를 만화라는 형식으로 풀어냈고 덕분에 우리는 역사가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닌 그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의 활극임을

생동감있게 느낄 수 있었다.   



허나 당작 [35년]은 무수히 많은 인물들에 대한 단편적인 설명들만

범람하고 있어 전작에서 느낄 수 있었던 즐거움은 커녕 어느샌가

만화를 보는 게 아니라 만화 속의 활자에만 집중을 하게 되었다.


이는 근대사에 대한 나의 배경지식이 부족한 탓이겠지만
만화로 된 이 책에 관심을 보이는 독자들이라면 대부분

나처럼 근대사에 대한 소양이 충분치 않아 입문서로

쉽게 다가가보려는 생각일테니 아마 그런 독자들 중

적잖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피로함을 느꼈을 것이다.


책의 서문에서 박시백은 책의 집필목적이 '독립운동가는

독립운동가로, 친일부역자는 친일부역자로 제 위치에

자리 잡게' 하기 위해서 라고 했는데, 이를 위해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친일파를 상세하게 찾아내어

소개해주는 것은 좋지만 그로인해 왠지 일제시대를 다룬

통사가 아니라 친일인명사전의 만화판을 본 듯한 느낌이다.



물론 총 7권이라는 큰 구상에서 이제 겨우 1권을 보았을

뿐이므로 이 작품의 전체성향에 대해 속단하는 것은 이르지만

좀 더 네러티브의 비중이 늘어나면 전작 [조선왕조실록]처럼

재미와 지식을 모두 얻을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장황하게 썼지만, 단점은 위에 서술한 점 하나 뿐이다.
1권을 다 읽자마자 2권을 주문하게 될 정도로 유익한 면이 많은데

우선 근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많은 인물들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교과서엔 언급되지 않은 독립운동갇들의

초창기 활동들도 꼼꼼히 언급해주고 있어 청년시절부터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인물들의 삶이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온 느낌이며

지금도 교과서에 실리고 있는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장지연이

출소 후 친일활동을 했던 점, 도마 안중근의 아들 안준생이 일왕에게

아버지의 반일행적을 사과했던 사건 등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사실 이광수나 김활란 처럼 적극적 친일을 한 친일파들은

논할 것도 없지만, 35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정말 생계를 위해

붓을 꺾은 사람들도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잘 아는 채만식 역시 일제말에 결국 친일행위를

하게 되는데 해방 후 자책과 반성을 토로한 글에서 그는

"이렇게 빨리 일제가 패망할 줄 알았다면!!"이라고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사실 지금의 우리야 길고 지난했던 일제의

식민통치가 1945년 8월 15일 마침내 끝난다는 걸 알지만,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1945년은 그저 일제의 식민지배가

35년째에 접어든 해였을 뿐이었다. 35년이면 첫해에 태어난 아이가

아버지가 되고도 남는 기간이다. 당시 서슬퍼런 폭압속에서 35년이나

지배받던 사람들이 식민지배가 바로 그 해에 그렇게 갑작스럽게

종언을 고할 거란 걸 상상이나 했을까?

채만식 역시 버티다 버티다 굴복했던 것이다.



직관적으로 채만식같은 생계형 친일과 이광수같은

적극적 친일을 같은 반열에 올리는 것은 불합리해보인다.
허나 이광수도 초기엔 계몽운동을 열심히 하던 인물로

그 역시 생계를 위해 친일을 시작했다고도 볼 수 있기때문에

문제가 복잡해진다.(실제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들의

후손과 제자들이 격렬한 반발을 하며 했던 주장도 이 것이었다.) 


이광수의 친일행적이 훨씬 더 많다는 점을 짚을 수 있겠지만,

만약 일제의 식민지배가 더 오래 연장됐다면 채만식도 분명

더 활발한 친일행위를 했을 것이기에 이 역시 명쾌하게 선을

그을 수가 없게된다.


즉 어떤 기준으로 생계형과 적극형을 구분할 것이며

그렇다면 생계형의 친일은 정상을 참작해야 하는가?


즉 매국행위에도 급을 나누어야 하는가?

등의 쟁점들이 생기는 것이다.




이처럼 지식인들의 이런 전향은 그 자체가 별도의 챕터로

구성돼야 할 정도로 논쟁이 많은 역사인데 앞으로 박시백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다룰지가 특히 기대되는 부분이다.



또 각 만화칸의 구성이 심플하고 활자와 딱 맞아 떨어지는

높은 퀄리티가 인상적인데, 작가가 한컷 한컷에 들인 공이

어느정도인지 느껴져 책의 가치가 더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웹툰이 각광받는 시기이니만큼 혹시 역사웹툰을 기획하는

사람이라면 장면구성기법과 구도만으로도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박시백의 '사관'이 어떻게 녹아들어갈지
기대반 걱정반이다. 위에 언급한 것 처럼 서문부터

아주 분명하고 명쾌하게 책의 집필목적을 천명했는데,
역사에서 '명쾌'와 '분명'은 늘 많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에 우려스럽다.



역사에 대한 무지가 단정적인 감정과 만날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근래에 있었던 '명성황후'만 보아도 알 수있다.


많은 역사학자들이 미디어가 창조한 명성황후의 이미지에

끊임없는 우려와 반론을 제기했지만 조선의 마지막 '악녀'로

동시대인들에게 지탄받았던 민비는 단지 일본인들에게 살해당했다는

이유만으로 조선의 마지막 '국모'로 탈바꿈되었다.


박시백의 '제자리찾기'가 혹여 친일/반일이라는 이분법적 잣대로

채만식같은 이들에게 영구적인 낙인을 찍거나 또하나의 민비를

만들어내진 않을까 하는 염려가 된다.


책의 부록 중 인명사전에서 김구에 대한 설명이 조금 걸리는데,

잘 알려져 있듯 김구는 젊은시절 주막에서 쓰치다라는 일본인을

살해하고 돈을 갈취한 적이있다.


이에 대해 그는 자서전 [백범일지]에서 쓰치다가 명성황후를 살해한

낭인이기에 죽였다고 해명하지만, 이후 재판에서 스스로가 증언했듯

그 증거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남아있는 자료를 추적해보면 쓰치다는

대마도출신의 상인으로 김구가 주장한 것처럼 상인으로 위장한 게 아닌

진짜 일개 상인이었던 것이다.


김구는 또 '나이도 젊은 놈이 나이많은 사람들도 기다리고 있는데

감히 주막에 와서 먼저 밥을 달라고 한 게 괘씸해서'라고 했는데

한마디로 젊은놈이 줄을 안서서 죽였다는 말이다.


정황을 살펴보면, 대마도에서 조선으로 행상을 떠난 젊은이 쓰치다는

을미사변으로 조선 내 반일정서가 심해지자 서둘러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배를 타러 인천으로 내려가던 중, 급한 마음에 빨리 밥을 먹으려고

새치기를 했다가 그걸 괘씸하게 생각한 김구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고,

'조선인 행세를 했다'는 김구의 진술도 을미사변에 따른 반일감정을 의식해

최대한 일본인인 걸 숨기려고 했던 걸로 보인다.


진실이 무엇이든 이 쓰치다 살인사건은 객관적으로 엄연한 강도살인이고

김구의 '자서전'외엔 어디에도 쓰치다가 밀정, 낭인이라는 증거가 없는 것이

드러났음에도 2017년에 출간된 [35년]의 인명사전 김구편엔 여전히

'일본군 중위 쓰치다를 맨손으로 처단하고 은신해 있던 중' 이라고 쓰여있다.


상대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칼로 난자해서 죽이고(재판과정에서 김구가 진술했다)

시체를 버린 뒤 돈을 갈취해 '홧김에' 나귀를 사고 남는 돈은 주변사람들에게

나눠줘 버려도 되는가? 다른 사람도 아닌 그 유명한 김구가 한 행동이기에

그냥 적당히 넘기거나 김구의 자기변호만 그대로 믿어야 하는가?

김구옹호론자들은 '그 당시엔 을미사변으로 분위기가 워낙 험해서 일본인이라는

사실 만으로 살해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는 식으로 이야기 하는데


그렇다면 관동대지진 후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퍼뜨리고 있다는 소문에 분노한

일본민중이 조선인들을 사냥하고 다니며 학살한 사건에 대해 일본인들이

똑같은 논리로 옹호한다 해도 할 말이 없다.

김구가 쓰치다가 을미사변의 주범이라고 '오해'했듯 일본인들도 그당시엔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탄다고 '오해'해서 벌이진 일이기 때문이고

이로인해 그 당시엔 분위기가 워낙 험해서 조선인이라는 사실 만으로

살해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1권에선 아직 김구의 쓰치다 살인사건이 다뤄지지 않았으니

이 또한 속단할 순 없지만, 어쨌든 인명사전에 이 사건이

김구편향적으로만 기술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친일파를 제대로 단죄하지 못해 아직도 진행중인
근대사를 다루는 책이니만큼, [35년]은 박시백이라는
일개 개인의 사관이 녹아든 책일 뿐이라는 점을 잊지 말고

균형을 유지하며 비판적으로 보는 신중함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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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이야기 1 - 민주주의가 태동하는 순간의 산고 그리스인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이경덕 옮김 / 살림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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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그리스인이야기1>


무엇보다도 대표작 <로마인이야기>에서
실질강건한 로마인과 대비되어 끈기없고 논쟁만 좋아하며
단합도 안되는 게 바로 그리스인의 특징이라며 시종일관 그리스인들을
깎아내리던 그녀가 그리스의 역사를 썼다는 소식에
흥미가 돋았다.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오히려 잘 알려지지 않은 그리스인에 대해
그녀는 어떤 방식으로 들려줄까?




책을 두 번 읽고 난 뒤의 소감은 우선 "역시"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흉내를 조금 내보자면, 부사 [역시]의 사전적 의미는

"생각했던 대로, 예전과 마찬가지로"이다.


역시 그녀의 스토리텔링 기법은 훌륭하다.


아무리 유익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더라도 독자가 글을 읽고 싶어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즉 읽히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따라서 저자는 늘 내용의

충실함과 함께 독자들의 주의력을 유지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데

내용의 충실함을 담보하는 것이 성실함이라면 후자는 결국 저자의 필력에 결정된다.


즉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글이라는 요리에서 글의 내용이 풍부한 영양분이라면

독자가 그 글을 읽게 하는 것은 바로 '맛'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1권을 다 읽고 난 후의 내 소감에 따르면 시오노 나나미는 '감질맛'을 내는데

있어서만큼은 '역시' 대가이다.



허나 그녀의 이런 장점과 함께, 단점 또한 '역시'였다.

감질맛을 높이기 위해 그녀는 그리스 역사를 다룬 다른 저작들과 달리 독자들이

흥미로워하지 않을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하며 속도감있는 전개를 펼친다.


덕분에 짧지 않은 분량임에도 지루할 틈 없이 즐겁게 읽어나갈 수 있었지만
책을 다 읽은 후 남는 것은 솔직히 없다시피 했다.


그리스의 역사가 가치있는 이유는 그들이 민주주의 체제의 발명자들이며
철학, 과학 인문학 등 인류의 진보를 일구어낸 지적활동의 창조자들이기 때문이다.

허나 그녀의 저작에선 이 부분이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지중해 최초의 문명이었던 미케네와 그리스의 연관성이나
그리스지역에 거대한 통합국가가 아닌 도시국가들이 산재하게 만들었던 '암흑시대' 등
그리스문명의 맹아가 싹텄을 시기에 대한 언급은 통으로 없으며

어째서 아테네는 당시 거의 모든 인류가 속한 체제였던 왕정이 아닌 민주주의를
발명하게 되었는가? 시민권을 가진 모든 이들이 차별없이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이 좋은 체제가 어째서 아테네와 일부 몇몇을 제외하곤 같은 그리스인들에게 조차
널리 수용되지 않았나? 처럼 누구나 궁금해할만한 문제에 대해서도 역시
아무런 언급이 없다.


물론 스파르타가 고립주의를 택하게 된 이유, 아테네가 민주정치를 할 수 있게 만든
솔론의 개혁과 그 바통을 이어받아 민주주의를 확립시키는데 성공한 개혁가들에 대한
이야기는 소개되어 있다.


허나 민주주의 탄생의 계기에 대한 설명과 고찰은 빠진 채 다짜고짜
솔론의 개혁부터 시작하는 점은 매우 아쉽다.



전작 <로마인이야기>에서 그녀는 로마인 이야기라는 책 제목에 대해
"이미 널리 알려진 로마의 역사가 아닌 그 시대를 살고 일구어낸 로마'인'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라고 답변했고 실제로 로마인 이야기 곳곳에서 당시 로마인들의

생활모습, 신앙, 가치관 등을 설명하는데 적지않은 지면을 할애했지만

이번 <그리스인이야기 1>에서는 그런 부분 대신 곧바로 페르시아 전쟁으로
넘어가버리고 페르시아전쟁이 전체 분량의 67%를 차지한다.



전쟁이야기는 재미있다. 그리고 세계사에서 페르시아 전쟁이 갖는 의의 역시

널리 알려진 대로이다. 허나 페르시아 전쟁에 관한 훨씬 상세한 책 및

그리스 역사를 다룬 훌륭한 책들이 이미 충분한 시점에 또 다시 그리스 역사를

쓸 것이라면 적어도 제목에 어울리는 내용으로 채웠어야 하지 않을까.



서양예술사에서 그리스인들의 독창성의 예로 가장 자주 드는 것은 바로 조형예술이다.
초기 그리스의 조각은 이집트인들의 것을 그대로 흉내낸 모방에 지나지 않았다.

이집트 입신상의 특징은 꼿꼿이 서있는 상태에서 한쪽 손과 발만 앞으로 내민 자세인데
이집트인들은 수세기의 변화에도 이 형태를 고집했지만 그리스인들은 점차 형태, 주제에서
새로운 시도를 꾀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지금도 감탄이 나올만한 수준의 작품을 남길 수

있었으며 학자들은 엄격한 신분제 하에서 철저한 통제를 받던 이집트 조형가들과 달리
그리스인들은 상대적인 직업선택의 자유,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사회분위기가 이 놀라운 진보,

아니 창조를 가능하게 했다고 설명한다.


즉 그리스 조각 예술은 당시 그리스인들이 일구어낸 사회가 주변민족들의 그 것과 어떻게,

얼마나 달랐는지와 그런 사회가 어떤 결과물을 낳을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증인이라는 것이다.

그 외에도 고고학 발굴 결과가 누적됨에 따라 문헌사료에 없는 그리스인들의 삶의 양태가
점점 자세히 드러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리스인 이야기>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없다.




시오노 나나미의 <그리스인 이야기>는 그리스 역사에 대해 아직 다른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겐 매우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책일 수 있지만, 그리스 역사에 어느정도 조예가
있는 독자들에겐 '재탕'의 느낌이 강하다.


그 것도 자극적인 향신료로 먹음직스럽게 만들어놓았을 뿐 내용물은 부실한.



그리스인들의 삶과 그들이 누렸던 종교, 철학, 예술 등에 대해 알고싶다면
다른 책들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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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이야기 1~11 세트 - 전11권 춘추전국이야기
공원국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헐..매년 한권씩 구매해왔고 이제 11권 구매하려고했는데 뜬금없는 이벤트네요..그동안 책이 높이도 들쑥날쑥이고 오타도 많아 저자가 출판사를 잘못선택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지금까지 한권씩 꾸준히 구매한 사람들만 바보만드네...앞으로
위즈덤하우스 출판 책들은 구매결정신중해야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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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7 17: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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