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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매경 Economy 2010.09.08
매일경제신문사(잡지)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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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중지


상품 문의 쪽지 보냈는데 확인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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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소신과 처신의 삶
정광호 지음 / 눌와 / 2003년 5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2011년 09월 08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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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경제론- 제8판
정운찬.김영식 지음 / 율곡출판사 / 2007년 6월
35,000원 → 35,000원(0%할인) / 마일리지 1,050원(3% 적립)
2009년 08월 17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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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
헤르만 헤세 지음, 김이섭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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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는 누구나 한번쯤 부러워할 만한 엘리트대열에 끼어있다. 그러나 한스가 살아온 삶을 생각한다면 맘이 바뀔 것이다. 어느 TV 드라마에서 현재 선생님들과 학생의 사이를 '선생님들은 1등 아니면 관심을 갖지 않는다'라고 극단적으로 나타낸 말이 있었다. 어쩜 이 말은 조금의 과장된 점이 있을지 모르지만 완전히 틀린 말이라고도 볼 수 없다. 재능이 보인다면 그 재능을 키워주는것이 어른들의 몫이겠지만 그 몫을 함에 있어서 지나치면 역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그 면에서 한스는 희생자인 것이다.

한스의 학교에서 자살사건이 일어났을 때였다. 평소에는 관심도 갖지 않다가 싸늘히 식어버린 시체 앞에서 슬퍼하는척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관심은 없었어도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이 그런 변을 당했으니 물론 당황스러웠겠지만, 선생님들은 조금의 책임도 모르는 듯 했다. 재능이 있다는 것은 복 받은 것이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 그 재능을 키워주고자 하는 어른들이 있다는 것도 행운인 것이다. 친구들과 노는 것과 좋아하던 낚시질 대신 수학 공부를하고, 히브리어를 공부했지만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았던 한스가 답답하기도 하고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한스는 자신이 어른들에게 그런 관심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해 '그래, 나는 행운아야.'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같은 나이의 친구들이 노는 모습들을 보며 한스는 유치하다는 생각을 할 만큼 우월감에 차 있었다. 물론 한스는 또래 친구들보다 성숙했을 거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조금은 심했다는 생각도 든다. 시골마을에서 신학교에 입학을 할 만큼 재능이 있던 아이였다. 낯선 곳에서 많은 일을 겪으며 몸과 마음이 많이 약해져 학교를 포기하고 고향으로 오게된 한스는 참 착잡했을 것이다. 기차가 고향에 가까워질수록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두려움에 떠는 한스를 보며 그의 재능이 아깝다는 생각보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더욱 깊이 들었다. 한스에게는 왜 조금의 자유시간조차 없었을까? 어린 시절 남달리 재능 있던 한스는 어른들의 관심을 당연한 듯 여겼을 것이고 그에 물들면서 그것이 지나쳐 자신을 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못하겠다는식의 외침도 없었다. 나는 너무 답답하다는 식의 한스의 용기있는 한마디라도 있었더라면 어린 나이에 그렇게 싸늘히 식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니 한스가 자꾸 불쌍해진다.

얼마 전 초등학교 5학년 어린 학생이 '나는 어른인 아빠보다 자유시간이 더 적다'는 내용의 유서를 쓰고 자살한 일이 있었다. 이러한 일들을 보면 한스의 이야기도 소설 속의 이야기만은 아닌 듯 싶다. 이 땅의 모든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조금씩 뒤로 물러서서 자식이나 학생들이 현재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어떤 처지에 있는지를 가늠해 보는 일이 시급하다고 본다. 그래서 한참 꿈을 키우고 있는 우리들의 숨통을 조금 느슨하게 풀어준다면 어린 영혼들이 삶을 포기한다거나 상처받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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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좋은 날 - 우리 겨레 좋은 문학 8 우리겨레 좋은문학 8
현진건 지음, 이우범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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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막 읽고 났을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가지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남편 없이 홀로 죽어간 그녀가 가엾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숨이 끊기고 있음을 느낄 때 아무리 구박을 하고 욕을 퍼부었던 남편이었지만 그녀는 남편의 얼굴을 떠올리고 안타깝게 울부짖었을 것이다. 남편이 아침에 인력거를 끌러 나갈 때 그녀가 한사코 남편을 붙잡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 시대에 모든 여자들이 그녀처럼 가난하고 복 없이 산 것은 아니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 '서희'를 보면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우리민족을 지배하던 일본인 못지 않은 권력을 가지고 살아가던 여자로 그려지고 있다. 물론 일본인의 많은 핍박을 받기도 했지만 그녀가 받는 핍박의 강도는 하층민이 받는 핍박의 정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김첨지의 아내는 운이 나쁘게 가난하게 태어난 죄로 또는 무지한 죄로 조밥조차 마음껏 먹지 못하는 환경에서 살았지만 그래도 끼니를 걱정하고 그 끼니를 해결해주려는 노력을 하는 남편이 있다. 비록 구박만 하고 속마음을 결코 표현한 적이 없는 사람이지만 자신을 생각해서 궃은 날을 마다 않고 일을 나가는 남편이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녀가 그렇게 불행하게 보이지만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김첨지는 항상 수입이 좋을 수만은 없는 인력거꾼이다. 가끔 날씨가 안 좋은 날에 몇 푼 벌어오는 게 다였다. 그러니 항상 먹는 게 시원찮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이라도 한 듯 울부짖다시피 하는 그녀를 뒤로하고 나온 김첨지는 제목대로 그야말로 운수좋은날이었다. 보통 때의 몇 배나 되는 벌이를 한 것이다. 그러나 집 주위를 지날 때마다 무거워지는 다리가 그 어떠한 불행을 예고하고 있는지 김첨지는 모르는 눈치였다. 결국 며칠 전부터 그녀가 먹고싶다던 설렁탕을 사들고 느리적거리며 들어온 집에는 설렁탕을 기다리지 못한 그녀가 누워있었다. 그녀는 몇 배나 더 외롭고 괴롭게 홀로 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슬픈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얼마 전에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를 떠올리면 싫었던 기억이 없고 그저 다 좋으신 분이시다. 자주 집을 찾아오시던 할머니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고 다시는 뵐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너무나 슬프고 슬픈 일이다. 김첨지도 아마 그랬을 거다. 김첨지의 아내가 너무나도 힘들게 세상을 살다가 먹고 싶은 설렁탕 한그릇 먹지 못하고 죽고 만 일이 오래 내 가슴에 남을 것 같다. 그리고 설렁탕을 보기만 하면 어쩌면 음식점을 지날 때 그 음식점 간판에 써 있는 '설렁탕'이란 글씨만 봐도 가엾은 김첨지의 아내가 떠오를 것 같다. 일제의 지배하에서 변변한 교육도 받지 못하고 먹는 것도 시원찮았던 그녀의 삶이 우리 조상들 대부분의 삶이라고 생각해 볼 때 다시는 외세의 침략을 받아 굴욕적인 삶을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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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따라기 베스트셀러 한국문학선 2
김동인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199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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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오해로 인해 죽음까지 불러일으킨 한 형제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릴 적 일이다. 학교가 끝난 후 친구가 준 과자 봉지를 들고 학교 앞 가게에 들어갔다. 산 물건값을 계산하고 나오려 하자 주인 할머니께서 과자를 계산하고 가라며 소리를 지르셨다. 나는 친구가 준 것이라고 말하였지만 할머니께서는 끝까지 날 도둑으로 몰았고, 친구가 와서 말을 해 주어 오해가 풀린 후에도 미안하다는 식의 인사도 없으셨다. 어릴 적 일이지만 그 오해가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다. 이처럼 오해는 오해를 받은 어느 누구에게나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된다.

이 이야기에서의 오해는 이러하다. 그는 보기 드물게 곱상하게 생긴 부인이 있었고, 부인은 애교가 많아 마을 젊은이들과도 친했다. 또, 그의 동생과도 상당히 친분 있게 지냈다. 부인이 동생에게 잘 해주는 것을 보면 신경이 쓰이고, 신경질에 부인을 때릴 때도 있었다. 남편의 폭력에 왜 맞기만 하고 가만히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라면 맞고있지만 않고 '너죽고 나죽자'하는 식으로 덤벼들었을 텐데 말이다. 지금 시대에 사는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그 시대의 여자는 남편의 폭력에 반항할 수 없는 그러한 입장이었나 보다.

그는 추석음식을 장만하기 위해서 장에 다녀오니, 방에서 부인과 동생이 뒤엉켜 있었다. 동생과 그의 아내가 방에 쥐가 있다고 얘기했지만 그는 동생을 문밖으로 던져놓고, 부인까지도 똑같이 하였다. 너무 흥분하고 화가 나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동생과 부인을 그런 식으로 오해하고 폭력을 행사한 것은 당연히 잘못된 일이지만 내가 그였어도 오해를 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고 내 생각이 확실하다고 생각되어 화가 치밀어 오른 나머지 동생과 부인의 말은 궁색한 변명쯤으로 밖에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부인은 집을 나갔고, 그가 부인을 찾았을 땐 부인은 숨을 거둔 상태였다. 그 후, 동생까지 떠나게 되었고, 뱃사람이 되었다는 동생을 찾아 그는 항구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닌다. 이 글을 다 읽고 났을 때 사소한 오해가 죽음까지 불러일으킨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사소한 오해로 사람이 죽고 살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 뉴스에 가끔 오르는 부부간의 오해, 선후배간의 오해, 친구간의 오해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던 기억이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오해를 받고 괴로워하다가 자신의 결백을 밝히지 못하자 죽고만 사실도 있다. 그러나 이유야 어쨌든 목숨을 버린다는 것은 해서는 안될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진실은 언제 밝혀져도 밝혀질 일이라고 믿는 사람 중에 하나다. 그의 아내는 죽음으로 결백을 주장하지 말고, 저녁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 그에게 진짜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설명했어야 했다고 나는 이 책을 덮고 나서도 이런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경솔하게 행동한 것에 대해 후회하며 동생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것으로 속죄하는 듯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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