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개 좀 빌려줘 사계절 1318 문고 136
이필원 지음 / 사계절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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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원 작가님의 소설집 ‘지우개를 좀 빌려줘’를 읽으며 내내 환상동화같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현실적이라 조금은 가슴아프지만 혹등고래가 친구가 되고파하고 호랑님의 생일에 초대되고, 도깨비에게서 벗어나고파하는 그내용들은 환상적이었다. 작가님이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환상적 소재 속에 실어나르는 그 방식은 더 환상적이다.

 

[지우개 좀 빌려줘]

주인공은 늘 지우개를 사주는 엄마 덕분에 지우개를 많이 가지고 있다. 엄마는 그 지우개로 싫은 기억, 이를 테면 이혼으로 끝난 전 남편에 대한 존재를 지워내고 싶었다. 하지만 주인공에게 어느날 문득 다가온 전학생은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 지우개를 빌려달라고 하는 거라 말했다. 하나의 지우개라는 의미가 각자에게 서로 다른 의미가 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지우개를 빌리며 서로 친해진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가 지우고 싶은 존재가 되지 말자고 서로 약속했다. 그들이 서로 빌리고 빌려주었던 지우개는 지우고 싶지 않은 청춘의 찬란한 기억이 아닐까.

 


[안녕히 오세요]

지구가 더이상 사람이 살기 어려워진 어느날, 하늘에서 떨어진 유성에서 발견된 메세지를 통해 인류는 미래로 갈 열쇠를 얻었다. 그 열쇠로 완성한 우주선과 우주여행에 초대된 주인공은 한참의 고민끝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불확실한 것에 뛰어드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주인공의 의문과 좋은 기회를 포기해버렸다는 식으로 말하며 주인공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변 인물들의 시선이 담겨있었다. 주인공의 가족 중 일부가 우주로 나갈때까지도 그녀는 떠나지 않는다는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다. 이야기의 말미에 비밀이 밝혀지고 나서 주인공의 선택에 대해 이런저런 할말은 생겼지만 결과론 적인 반응이다. 주인공의 선택은 근본을 묻는다. 왜 떠나야 하는가, 현실이 캄캄할때 불확실한 어떤것에 뛰어드는 것이 맞느냐라는 질문. 그 질문이 머리속에 남는다.

 

[호랑님의 생일날이 되어]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 에피소드였다. 누구보다 평범해보이고 그저 야구 경기를 보러가던 것뿐이라고 여겨지던 주인공은 길을 건너던 호랑이에게 생일 초대를 받는다. 누구나 아는 동요 '산군 호걸이라 하는 호랑님의 생일날이 되어' 초대를 받은 것이다. 주인공은 그 호랑이를 믿지 않지만 꼬리까지 내보이는 호랑이를 믿지 않을 수 없어 그와 함께 산을 오른다. 정말로 동요 처럼 여우와 토끼가 춤을 추고 연주를 하는 생일날이었다. 왜 그녀를 초대했을까, 라는 물음표가 더해질 무렵 호랑이는 주인공이 가방속에 꼬옥 숨기고 있던 비밀을 꺼내며 그녀에게 말을 건다. 그걸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면서. 그러면서 너를 외롭게 만드는 사람이 벌을 받을 거리고, 아끼는 일은 한계가 없는 거라고 다소 투박하지만 다정한 말을 건네어 준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산군 호랑이의 위로가 가득 담겨있는 에피소드라 좋았다.

 

[우는 용]

엄마와 싸우고 엄마가 나에게 말을 걸지 않은지 한참 되었을 때 주인공에게 포뢰라는 용이 나타난다. 엄마가 예전에 즐겨 모으던 고미술품 중 하나인 작은 종에 달려있는 용장식은 주인공에게 말을 걸며 엄마가 그녀를 못본체하는 이유에 대해 말해준다. 너는 사라지고 있다고. 서로 가시돋친 말을 내뱉었지만 엄마와 딸의 관계가 그리 쉽게 무너져서는 안되기에 포뢰는 주인공을 달래주며 마지막 엄마와의 화해를 주선하려 한다. 존재가 사라지는 그 순간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라는 물을에 답을 해주는 이 에피소드는 결국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해주었다. 엄마에게 화해를 건네고 혼자 남겨질 엄마를 위해 함께 울어주는 용과 함께 있어 주인공은 마지막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호박마차]

아빠의 사업 실패 이후로 고모집에 얹혀 살면서 나쁜 유혹에 빠졌었던 주인공은 한달 가까이를 집밖에 나오지 않다가 겨우 빠져나와 호박마차라는 이름을 가진 곳에서 붕어빵을 산다. 주인 아주머니를 주인공에게 도깨비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정말로 그녀가 친구관계가 망가지고 아빠가 실패하고, 자신이 잘못된 일을 저질렀던게 도깨비의 유혹일까? 이 책은 그런 길에 들어섰고 삶이 벼랑끝에 있다 해도 빠져나올 수 있다고 토닥여준다. 다 도깨비때문이야, 도깨비를 해치우면 다시 정상궤도로 삶을 돌릴 수 있어라고 위로해주는 것 같다. 현실적으로 원인에 대해 분석해주고 대응책을 알려주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다른 어떤 존재로 그 탓을 돌리며 내 삶을 위로해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래서 위로가 되었던 글이다.


[우주장]

'너는 나에게 꿀떡과 같다'고 말할만큼 사이가 각별했던 할머니와 사이가 틀어진 건 엄마의 재혼때문이었던 주인공. 딸이기에 엄마편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할머니와 사이가 벌어졌고 할머니에게 사과의 말을 채 전하기도 전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신다. 그런 할머니를 위해 그녀가 꿈꿨던 우주로의 장례, 즉 우주장을 계획하는 주인공. 그녀가 할머니였던 작은 유골 캡슐을 슬쩍 빼내어 천문대에서 로켓에 실어보내는 건 할머니에 대한 그녀만의 사랑의 표현방식이었고, 감사 인사였고, 건네지 못한 사과였다. 나도 어릴적 할머니와의 추억이 있고, 할머니에게 지키지 못한 약속이 있어 그것을 품고 있어서 그런지 주인공의 마음이 남의 것이 아닌양 쿡 박혔다.


 

엄마는 더 이상 우성에게 지우개를 사주지 않았다. 어느 날 문득 아빠라는 남자를 지워 낸 모양이었다. 지나간 얘기를 꺼내지 않는 걸 보니 결국 해낸 것이다. 엄마가 아빠를 지우개나 수정 테이프 없이 지워냈듯이,우성은 언젠가 자신도 모르게 전학생을 지워버릴까봐 겁이 났는데 그럴 때 마다 한쪽 새끼손가락을 어루만졌다. 약속한 순간이 바래지 않고 생생해지도록 이따금 새끼손가락을 만지며, 잊지 않을 거라고 틈틈이 다짐했다. 오래 기억해서 마침내 만날 것이라고 자꾸 생각했다. - P30

어떤 관계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필요했다. 호랑이도 알고 있는 진리를 곱씹으며 고운은 거리 두는 일에 실패한 날들을 떠올렸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너무 가까워진 느낌이 들면 얼른 뒤로 물러나서 "잠깐 스톱"하며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타격으로 부터 안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외로운 날은 없을테고.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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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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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참고 살아봐라, 평범하게 사는게 좋다.


늘 그런 이야기를 들어왔던 주인공 지연은 그렇게 살고 싶었으나 그렇게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시작부터 그녀와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그치기만하는 엄마의 대립은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왜 저렇게 딸을 이해하지 못하지 그런 생각들.


이혼 후 도망치듯 서울을 떠나 '희령'이라는 도시로 가면서 지연은 어떤 마음으로 갔을까?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이혼에서, 그 상처에서, 그 상처를 벌려 소금을 넣는 것 같은 부모에게서.


거기서 그녀는 할머니를 만났고, 할머니를 통해 증조모를 만났다.

처음엔 그저 일제 강점기 시대, 집안에 남자가 없는 집의 여자애들을 납치하듯 데려가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몇번 보지도 못한 남자와 도망아닌 도망을 쳤을 때 증조모의 모진 삶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엄마를 버린탓'으로 스스로를 벌했지만, 그건 시대의 상황이었고, 너무 모질었던 다른 사람들로 인함이었다고 생각했다.


사랑받지 못한 삶은 감정 표현을 서투르게 하고, 또 그것이 사랑받지 못하게 만드는 악순환 속에서 지연의 증조모는 지연의 할머니를 낳았다. 증조모가 일제강점기를 겪었다면 지연의 할머니는 한국전쟁 시기를 겪었다. 사상범으로 몰려 주변인들이 운동장에서 총살을 당하고, 그것을 숨죽여 지켜봐야만하는 폭력이 난무하는 시절, 가깝게 지내던 새비 아주머니가 피난을 왔지만 품어주지 못하는 냉혹한 현실에 상처입고, 결국 가족도 피난을 떠나야하는 그 어두운 밤과 같은 시절을 뚫고 살았다.


전쟁이 끝난 후, 새비 아주머니와 그녀의 딸인 희자는 새롭게 삶을 시작하는 반면, 지연의 할머니는 다시 예전과 다름 없는 생활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고, 친했던 그들과 점점 벌어지는 현실이, 그리고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삶이 애달퍼 감정을 지우고 살았다. 


증조모가 그랬던것 처럼, 할머니도 그랬고, 그런 슬픈 현실 속에서 태어난 딸, 즉 지연의 어머니도 결국은 삶의 굴레에서 감정을 지우고, 평범하게, 누구보다 평범한게 어려웠다는 그녀의 삶을 평범하게 살고파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평범하고 싶었으나 잘 안된 지연의 삶까지.


한 집안에 있었던 네 명의 여자들의 이야기는 모두 다 다른데도 이어져있었다. 슬픈 현실과 삶의 굴레 속에서 칠흙 같은 어둠을 걸어 그녀들에게 남은 것은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이며, 그저 살아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연이 희령에서 할머니를 만나고 그녀와 교류하고 지연의 증조모와 할머니,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은 연대할 수 있었다. 자신에게 가혹하게 굴고 상황을 회피하려하는 엄마의 마음도, 그런 엄마를 붙잡지 못한 할머니도, 그리고 그런 두 사람 사이에서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지연에게도 그들의 이야기는 동질감을 느끼며 하나로 이어지게 만드는 치유의 힘이 있었다.


서로의 삶을 지워내듯 없는 것으로 치부하려했으나 되지 않았다. 그들은 연결되어 있기에.

오히려 서로 다시 연결되고, 그들이 서로의 상처를 더이상 회피하지 않을 때 그들에게는 아직은 어둡지만 그래도 밝은 밤이 찾아왔다.


함께 나누고, 함께 연대할 때 상처는 치유된다.

단절로 인해 생겨난 외로움에 파묻힌 어두운 밤이,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함으로써, 그래도 여명이 밝아오는 밝은 밤이 되었다.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 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 P14

한 사람의 삶을 한계 없이 담을 수 있는 레코드를 만들면 어떨까.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릴 때의 옹알이 소리, 유치의 감촉, 처음 느낀 분노,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과 꿈과 악몽, 사랑, 나이듦과 죽기 직전의 순간까지 모든 것을 담은 레코드가 있다면 어떨까.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의 삶의 모든 순간을 오감을 다 동원해 기록할 수 있고 무수한 생각과 감정을 모두 담을 수 있는 레코드가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의 삶의 크기와 같을까.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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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온다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정민 옮김 / 몽실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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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온다 #츠지무라미츠키
#몽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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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입양한 한 가정에 걸려온 전화.
아이를 돌려주세요.
아니면 돈을 준비해주세요.
전화의 주인공을 만난 자리에서 부부는 당신은 우리 아이의 친 엄마가 아니라며 누구냐 묻는다.
우리 아이의 친엄마는
우리 아이가 몇 살인지 잊었을리 없고
행복을 기원하는 사람이지
아이의 상황을 가지고 협박하며
돈을 바라는 사람이 아니라고.
당신은 누구냐며 묻는다.

여기까지 읽었을때 나는 이 여자는 도대체 누군가, 정말로 스릴러 소설처럼 입양 가정과 친엄마, 그리고 이 여자 사이에 뭔가 일이 있는걸까하는 미스테리물을 접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시점이 바뀌며
'히카리'라는 친엄마의 시선으로 내용이 전개되는데
책장을 덮을때 먹먹함이 드는 책이었다.

아이의 친엄마인 히카리는 왜 중학생 시절 아이를 낳고 아이를 입양시키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6년이 지나서 추레하기 짝이없는 몰골로 나타나 돈을 달라 요구 할 수 밖에 없었는지.

글 속에서 히카리는 자신의 임신사실을 부모님이 알고나서 보이는 모든 태도가, 건네는 말들이 겉으로는 히카리를 위한듯 하지만 사실은 아니라는 말을 자주 내뱉는다.

아이를 낳고 입양 보내고 일상으로, 제자리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이미 의사 결정을 다 해놓은 그 선택은 히카리에게는 일종의 강압적 폭력이 아니었을까.
제자리라는게 있을 수 없는데도 어른들은 가끔 아이들에게 더 오래 살아봤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어른들을 위해 어떠한 선택들을 강요한 건 아닐까.

이미 틀어져버린 자신의 삶에서 히카리는 집을 나오고 홀로 살아가는 선택을 했고, 이런 저런 고난을 겪으며 급기야 금전문제에 휘말려 자신의 아이를 데려갔던 그들에게 연락해야겠다 생각했을때 히카리의 그 절박함과 절망감이 느껴져 손이 찌릿 저렸다.

아이를 볼모로 돈을 요구하는 나쁜애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도 결국 그녀의 모든 상황을 몰랐기에 넘 쉽게 생각했던것 같다.

임신을 하지 않았다면 히카리는 이런저런 모습이었겠지라며 실제의 히카리가 아닌 그 너머의 다른 히카리를 그리워하던 가족들.
하지만 히카리가 삶의 나락에서 찾아간 입양 부부는 임신을 하고 출산했던 그 히카리의 존재를, 그 삶을 감사하고 인정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진짜 자신이 그들에게는 존재한다는 안도감
그런 그들에게 이렇게 변한 자신이 진짜 친엄마라 말하지 못하고 나는 친엄마가 아니다 라고 말할때 히카리의 기분은 어땠을까.

요즈 고딩 엄빠라는 프로그램도 있고
실제로 이른 나이에 부모가 되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런 일이 있을때 나는 어떤 어른일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이야기였다.

히카리는 일본어로 '빛'이라는 뜻이고, 그의 아들의 이름은 아사토. 일본어로 '아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두 사람이 함께 마주서게된 마지막 장면은 어쩌면 히카리에게 아침의 밝은 빛이 쏟아지는 그 순간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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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준비됐어 - 사계절문학상 20주년 기념 앤솔러지 사계절 1318 문고 135
이재문 외 지음 / 사계절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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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청소년 문학을 좋아한다.

학교에서 늘 청소년과 마주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아무리 발버둥쳐도 청소년들의 마음을 다 이해할 수가 없는 나는 그나마 청소년 문학을 통해 그들의 삶을 엿보고 싶어한다.

그리고, 내 속에 숨겨진 그리고 아직도 남아있는 내 맘 속의 어린 청소년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사계절 출판사의 청소년 문학 시리즈는 그런 의미에서 늘 자주 찾는다. 


사계절 문학상 20주년 기념 앤솔로지 "바깥은 준비됐어"는 그동안 사계절 출판사가 청소년 문학으로 쌓아 올렸던 성과를 축하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 만큼 다양한 청소년 소설 작가님들이 함께한 단편집이다.

 

 

파티를 수락하시겠습니까?   by 이재문

 환경 오염 등의 이유로 바깥에서의 즐거움이 사라진 세상.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메타버스로 운영되는 퓨처로드라는 게임에 열광하게 된다. 실제 세상에서는 이제 돌아다니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게임 속에서는 뭐든 가능하기에 빠져들 수 없는 그 상황이 슬프다. 주인공은 이제 학교도 가지 않고 게임을 위한 캡슐 안에만 들어가 하루하루 좀비처럼 보내는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는 그런 그가 걱정이 되어 캡슐을 없애버리려했으나 학교 수업을 위해서도 필요하기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들은 늘 가상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버지는 그런 그가 못마땅했다. 무엇 때문에 주인공은 게임의 세계에 갇혀 있을까? 게임 세상에서 마법사인 그는 실제보다 더 활기차게 생활하고 있다. 게임 레벨을 올리기 위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달으시오'라는 약간 허무한 미션을 받아들고 고민하는 차 초보로 보이는 한 마법사가 그를 알아보며 함께 팀을 이루어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처음에 그는 그런 그녀를 도와주고 싶어 시작했고, 두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미션을 하는 동안 주인공은 사랑에 빠지고야 만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그녀가 게임에 접속하지도 않고, 게임 안에서 찾을 수가 없게 되어 슬픔에 빠지고 만다. 그런 그녀의 흔적을 찾기 위해 캡슐 속 바깥으로 나오는 주인공. 그리고 게임 회사까지 찾아가는 발걸음. 오히려 게임이라는 알을 깨고 세상에 발을 딛도록 해준건 현실이 아니라 게임이었다. 사랑에 빠졌던 첫사랑의 정체를 알게된 그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이 글은 게임이라는 틀에 벗어나 생각해도 의미가 깊다. 청소년들이 빠져드는 세계는 주인공의 아버지처럼 그게 가짜라고 아무리 뭐라고 해도 그들에겐 진짜다. 우리는 그들이 그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올때 매력을 느끼고 좋아할 만한 바깥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백 투 더 퓨처   by 정은

 

 누군가가 하는 허무맹란한 소리를 진심으로 믿어 본 적 있는가? 이 글의 주인공은 아인슈타인의 손녀라고 주장하는 뒷집 할머니의 이야기를 믿는다. 처음에는 재밌는 전래동화였지만 늘 일관적으로 아인슈타인의 비밀 노트에 대해 이야기하는 할머니를 진심으로 믿게된다. 그래서였을까? 뒷집 할머니는 17세가 되면 미래로 데려가 주겠다고 약속했던 주인공을 데리고 시간 여행을 간다. 그 무렵 주인공은 성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에 있었다. 어느날은 자신이 68퍼센트쯤 남자같고 때로는 여자같은 상황에서 나만 이상한 사람인가 하는 고민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미래에서 만난 '과거 여행자 도우미'는 그런 말이 미래에선 가능하다고 성이라는 건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설명을 듣고 자신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묘한 위로를 받는다. 그러던 중 갑자기 타임머신이 없어졌다가 다시 나타나고 그 속엔 할머니는 없었다. 이 타임머신은 결국 미래에 있는 자신이 보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현실로 돌아온다. 청소년 시기 삶의 중요한 문제를 고민하는 주인공에게 타임머신, 그리고 미래의 이야기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였지만 결국 그녀가 가지고 있던 고민을 없애주었다. 무엇이든, 남자든 여자든 이 순간 어떤 식으로든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진짜 나라는 그녀의 마지막 말에서 위로를 얻었다.

 

 

 

바깥은 준비 됐어 by 김선영

 

학교에 가기 싫다. 주인공은 처음부터 학교에 가기가 너무나 싫었다. 어린 시절 틀어져버린 친구가 다시 같은 반이 되었기 때문일수도 있고, 원하지 않는 학교에 강제로 배정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주인공이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을 때 그녀의 어머니는 여느 어머니처럼 때로는 별거 아닌 취급을 했고, 때로는 왜 속을 썩이냐며 화를 냈다. 하지만 그녀는 곧 주인공의 힘듦을 어른의 말로 훈계하지 않고 인정했고, 그런 그녀를 쉼, 숨, 숲이라는 심리 상담 센터에 보내게 된다. 그곳에서 주인공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것 같지만 중요한 일을 하게된다. 예컨더 비둘기 알을 지키는 일이라던가 동물을 그려보는 일이라던가. 숲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그리고 그녀의 부탁으로 비둘기 알을 지키면서 주인공은 어쩐지 마음 한켠이 시원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치유되는 과정이었다. 마음이 힘들어 지친 주인공이 그러했듯 그런 청소년에게 필요한 건 어떤 미사여구로 치장된 상담보다는 어쩌면 쉴 수 있는 공간과 시간, 그리고 숨 쉴 수 있는 틈이 아니었을까. 마음이 치유될 무렵 그녀는 어색해졌던 친구에게서 그동안 그녀가 오해하고 있을지도 몰랐던 일에 대한 문자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내일 보자'는 문자를 보낸다. 그녀에게 그 문자는 이제제 센터의 바깥으로 나올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도망쳤던 현실로부터, 슬펐던 과거로부터 이제 벗어나 바깥에서 당당히 현실을 만날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많은 청소년들도 마음의 상처에서 조금 더 쉴 수 있게 되어 다시 바깥으로 나갈 힘을 얻는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

 

 

주먹쥐고 일어서  by 김해원

  고3들을 응원하는 이른바 '장도식'이 끝난 후 주인공은 씁쓸한 기분을 느끼며 쓰레기를 버리다 자신을 '푸른 하늘'이라고 소개하는 한 아이를 만난다. 나는 너를 아주 잘 안다며 말을 붙여오는 그녀를 떼어내지 못한 건 어린 시절 돌아가신 엄마의 부재로 인한 외로움 때문이었을지도 몰랐다.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하는 아이와 시간을 보내다 아빠로부터 동생이 학교에 가지 않았다는 문자를 받고 함께 동생을 찾아나선다. 그 과정에서 동생을 찾기 위해 들렸던 공부방에서 사실은 어른들은 빌미만 있으면 공부방을 찾는 아이들을 문제학생으로 본다는 씁쓸한 현실을 마주했고, 할아버지 집에 갔다가 근처 주민들로부터 잊으려했던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인천 월미도에서 동생을 찾는다. 동생을 찾기위해 '푸른 하늘'과 함께 걷던 그 길에서 주인공은 결국 자신의 상처에 대한 답을 찾고 있었던 건 아닐까. 마음이 먹먹한 글이었다.

 

 

옥상 정원  by 이희영

 

인터넷에서 보고 만능 열쇠를 만든 주인공은 그걸 잃어버리고는 불안함에 휩싸인다. 학교 옥상을 여는 열쇠로 사용하다가 담임 선생님에게 걸렸고, 그걸 내놓으라는 선생님의 말에 잃어버렸다고 해보지만 거짓말 취급을 받는다.누가 가져갔을까? 담배를 피웠냐는 의심보다 누가 가져갔는지에 더 초점이 맞춰진다. 이 학교는 예전 옥상에 정원까지 만들어 가꾸던 학교였으나 불의의 사고가 있은 후 그곳은 굳게 잠겨있었다. 그랬기에 그 열쇠의 행방이 무척 중요했다. 열쇠의 존재를 추궁하는데 지친 담임은 도서관에 가서 일을 하라고 보냈고, 거기서 주인공은 전교에서 공부 잘하는 걸로 유명한 한 아이를 만난다. 별로 이야기 해 본 경험은 없는 아이지만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아이에게도 넘어설 수 없는 형이라는 벽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그의 옷에서 나는 섬유유연제 냄새에 본능적으로 그가 옥상 열쇠를 가져갔다는 걸 알게된다. 늘 사고나 치는 못난 아이라 부모님에게 부끄러운 아이 취급을 받는 주인공이었지만 그 순간 만큼은 공부잘하는 그의 슬프고 기운없는 표정을 그냥 넘길 수 없게된다. 그리고는 그에게 도서관 행사때 작가에게 꼭 사인을 받아 달라며 여러번 다짐을 받는다. 그런 주인공의 행동은 옥상 열쇠를 가진 아이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잔잔하지만 마음에 콕 박히는 이야기였다. 청소년은 겉으로 보기에 문제가 있든, 아니면 없든 모두에게 힘든 세계가 존재하고 그 속에서 늘 해답을 찾으려 한다. 그 해답이 때로는 안타깝기도, 어떨땐 이해가 되지 않지만 모두 그들의 삶속에서 연속되는 선택이 아닐까. 글의 마지막에서 옥상에 올라가던 중 멈추고 주인공의 이름을 읊조리는 아이의 마지막 말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 생명이 우리 눈앞에 있기까지는 우주가 움직인 것이 아닐까 한다. 아니, 우주의 허락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생명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셀지 모른다. 겁먹지 말자.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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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의 내일 - 사계절문학상 20주년 기념 앤솔러지 사계절 1318 문고 134
이선주 외 지음 / 사계절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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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청소년 문학을 좋아한다.

학교에서 늘 청소년과 마주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아무리 발버둥쳐도 청소년들의 마음을 다 이해할 수가 없는 나는 그나마 청소년 문학을 통해 그들의 삶을 엿보고 싶어한다.

그리고, 내 속에 숨겨진 그리고 아직도 남아있는 내 맘 속의 어린 청소년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사계절 출판사의 청소년 문학 시리즈는 그런 의미에서 늘 자주 찾는다. 


사계절 문학상 20주년 기념 앤솔로지 "모로의 내일"은 그동안 사계절 출판사가 청소년 문학으로 쌓아 올렸던 성과를 축하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 만큼 다양한 청소년 소설 작가님들이 함께한 단편집이다.


선택   by 이선주

청소년 소설을 읽으면서 가끔 발칙하고 민감한 주제를 다룬 글을 보면 "응? 이런 주제를 청소년들이 보도록 글로 썼다고?"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 내가 읽으면서 뜨끔했었던 글. 글 속에서 청소년 소설 작가인 주인공은 한 학부모로 부터 항의 메일을 받는다. 항의 메일의 내용은 내가 했었던 소위 말하는 "꼰대"같은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한 내용이었다. 그 메일을 받은 주인공은 자신이 글을 쓰게 되었던 과거의 학창 시절, 그리고 그 때 국어시간 글쓰기 주제였던 '엄마의 하루'라는 글을 쓰기 위해 엄마의 하루를 쫓았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답장을 작성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엄마의 하루' 글쓰기를 떠올리면 뭔가 엄마에게 한 없이 감사한다는 교훈을 담은 내용을 써야하지만 주인공은 그러지 않았고, 악착같고 때로는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의 그야말로 날 것의 현실에 놓인 엄마를 보며, 그 감정 그대로를 국어 시간에 적어 냈다. 그리고 그 감정을 그대로 담아 항의 메일에 답장을 썼다고 생각한다. 그 답장을 보며 청소년 소설을 좋아한다 하면서도 내 안에 있었던 꼰대 같은 마음이 정말 민망하고 반성되었다. 이 글을 통해 진정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청소년 소설을 즐기고 읽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녀의 항의 메일에 대한 답장, 그리고 작가가 생각하는 청소년 문학의 정의를 알고 싶다면 꼭 읽어보면 좋겠다.



모로의 내일   by 최영희

모로는 이 글의 주인공의 이름이다. '모로가도 서울만 가도 된다'는 뜻이냐며 부모님께 투정부리기도 하는 좋아하는 아이도 있는 평범한 10대 소녀였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모로의 주변 친구들이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여 경찰 조사를 받거나 학교에 오지 못하게 된다. 모로는 왜 친구들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막연히 궁금해하다가 좋아하는 남자아이에게까지 그런 일이 일어나자 본격적으로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모로도 알 수 없는 목소리에 이끌려 교실 맨 앞에 앉기 위해 다른 반에 들어가 맨 앞줄 아이의 무릎에 앉게 되면서 일이 잘 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친구들에게 연락해보자 모두들 이상한 목소리가 들렸다고, 그 목소리가 하는 말을 듣자마자 그대로 해야할 것 같은 충동을 느끼게 되었다고 했고, 그 사실을 선생님께 알리고 사건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이들을 이상한 행동을 하도록 만든, 예컨데 슬리퍼를 신은 아이가 남의 운동화를 뺏어 신으려고 한다던지 퇴근하고 들어오는 아버지에게 정말 땅에 코가 깨지도록 박으며 인사를 한다던지 하는 행동을 이끈 것의 정체를 파헤치며 이야기는 막이 내린다. 청소년들이 생각하는 '예의'의 기준과 소위 말하는 '꼰대'들의 못마땅함이 빚어내는 재미있는 일련의 사건들이 재밌게 이어지는 글이다.



행성어 작문 시간   by 최상희


SF장르의 글이다. 너무 추워서 사람이 살 수 없게된 행성 '구오진'에서 '헤카테'로 이주하게 된 주인공은 이 곳에 성공적으로 정착하여 정식 학교를 다니기 위한 코스인 행성어 학교의 졸업장을 받기 위해 2년째 작문 수업을 듣게 되었다. 새로운 곳에서 자신의 언어를 버리고 새 언어를 익혀야 하는 현실, 새 언어를 잘 익힌 사람은 원래 보다 더 나은 삶, 해방된 삶을 살 수 있지만 원래 행성에서 아무리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잘 살고 있었다고 해도 새 언어를 익히지 않으면 그에게 더 나은 삶은 주어지지 않는 현실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새 언어를 익히는데 서툴고, 어머니는 오히려 새 언어를 잘 익혀 더 좋은 직업을 갖게 되고, 바깥에서 하루종일 새 언어에 시달리다가 집에 와서 옛 모국어를 숨쉬듯 쏟아놓는 그 마음에서 이방인의 슬픔이 느껴졌다. 언어를 바꾸면 모든 삶이 바뀌는 거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말에서 소수 민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꼭 주류 문화에 편입하도록 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의문이 떠올랐다. 예전 일제강점기에도 그랬듯 한 나라가 한 나라를 지배하면 그 나라의 언어부터 못쓰도록 하는 것이 비단 그냥 의사소통의 효율성 만을 위해서는 아니리라. 지금도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이민자가 되면 정착하려는 나라의 언어를 먼저 익히는 것이 단순히 의사소통의 목적이 아니라 더 빨리 그 주류 문화에 올라타기 위해서이지 않을까. 민족의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주류로서 헤카테의 일원이 되었으나 이민자의 권리를 위해 싸운 작문 선생님처럼 어떠한 투쟁이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안녕! 정신 나간 천사   by 황영미

이 이야기는 정신 나간 천사라는 제목을 가진 웹툰을 좋아하는 주인공이 웹툰 작가의 팬카페에 글을 올리는 형식으로 쓰여져있다. 어렸을 적 좋아하는 가수가 있었고, 그 팬카페에서 활동해 본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이 가는 글이다. 해당 웹툰에 나왔던 남자주인공이 왜 완벽한 사람이었는지 주인공은 조목조목 그의 좋은 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과정에서 만났던 자신의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그 첫사랑은 '정신 나간 천사' 웹툰의 남자주인공 같았다.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다른 사람이 마음에 상처되는 말을 하면 막아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고 자신을 이해해주는 딱, 그 남자주인공이었다. 그렇게 남몰래 좋아하는 그 시간도 시간이 깊어지면서 변하게 된다. 나의 상황과 그의 상황이 다르고 나의 초라함을 그대로 안아주지 못하는 첫사랑의 모습에 실망하게 된 주인공은 ' 내 마음이 변했다, 식었다'라는 표현으로 서술하였다. 웹툰 속 남자주인공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단순한 사실이 사춘기 시절 좋아하는 사람으로 부터 미묘한 거리감이 생겨 상처를 받고, 또 그 상처 속에서 한 층 더 성장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공감되었다. 담담하게 첫사랑에게 '선배는 내 첫사랑이었지만 이제는 아니예요'라고 말할 수 있는 그날은 정말로 한 층 더 자란 그 날이 아닐까.



나와 함께 트와일라잇을   by 조우리


이 이야기는 참 슬펐다. 늘 부모님을 만족시켜주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했고, 또 주인공이 부족함 없이 자랄 수 있도록 진심을 다해 뒷받침하는 부모님의 모습은 어느 가정에서 볼 수 있는 모습과 같았다. 가정적이고 다정하지만 좀 막힌 구석이 있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답답해 하는 조금 예민한 엄마, 좋은 학교 진학을 위해 전학간 학교에서 알 수 없는 두통에 시달리는 주인공. 주인공에게 두통은 일상 생활의 미묘한 균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만성 두통에 시달리는 주인공은 한 아이를 만난다. 신기하게도 그 아이가 만져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면 두통이 낫는다. 주인공은 그 아이가 '현실에서 동떨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에게 현실은 두통이고, 그 아이는 치료제가 되었다. 큰 사건으로 인해 가정이 깨어진 그날, 주인공에게 도피처는 그 아이밖에 없었다. 자신의 손을 잡으면 해결될 수 있다는 그 아이의 말을 듣는다. 주인공이 선택한 것은 그아이의 손을 잡고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 그 누구도 상처입히지 못하는 특별한 심장과 영혼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슬픔이 물밀듯 몰려오고, 어찌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세상이 깨어진다고 느낄 때 아직 어린,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청소년들은 어쩌면 모두 감정을 가두는 그런 선택을 하게 되는 건 아닐까. 마냥 아이처럼 울수도, 어른처럼 툭툭 털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할 수 없기에. 그런 마음이 느껴져 슬펐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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