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26일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된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라인의 황금 연주는 아마 내가 지난 십수년간 다녔던 연주회들 가운데서 (비록 20여번 남짓에 불과하지만) 세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나머지 두번은 예전 키타옌코 시절 kbs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연주와 샤이와 게반트하우스가 들려준 부르크너의 8번 정도라고 해두자) 좋은 연주였다.

 

R석에 앉은터라 음향적으로도 상당히 좋았고, 150분동안 거의 흐트러지지 않은 악단의 집중력, 서울공연이라는 조건을 감안할때 거의 최상의 캐스팅이라고 할 수 있는 성악가들의 기량, 그리고 초대권이 남발된 공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훌륭한 매너를 보여준 관객들까지 성공적 공연의 체험 요건을 두루 갖추었다고나 할까?

 

사실 공연의 개시부라고 할 수 있는 라인의 물결 부분에서는 내가 당초 기대했던 격렬하고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다이내믹을 느낄수는 없었다. 그 대신 느린 템포에서 비교적 세밀하고 정치한 표현이 부각되었는데, 공연을 다 보고 나니 아마도 초장부터 기운을 빼기 싫어한 지휘자의 계산이 있었지 않나 싶다. 조심스럽고 안정적으로 공연을 운영해 가나 싶다가도 중간중간에 터질만한 부분에서는 확실한 임팩트가 있었고 특히 마지막 발할성의 입장은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어느 음반보다도 더 박력있고 에너지감이 넘치는 연주였다.

 

지난 여러해동안 우리 사회가 저지른 여러가지 삽질을 생각할 때, 정명훈과 서울시향이 거둔 발전과 성취는 진정 특기할 만한 것이다. 음악선생들이 레슨을 하기 위한 간판으로서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던 한국의 오케스트라를 이정도까지 일으킨 업적은 충분히 상찬받아 마땅하다.

 

발퀴레는 또 언제할진 모르겠지만, 그가 더 늙기 전에 반지 전작을 정식 공연으로 무대에 올렸으면 좋겠다. 만약 공개적으로 펀딩을 한다면 그에 동참할 용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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