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작은 자비들
데니스 루헤인 지음, 서효령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11월
평점 :
주요 포인트는?
오랜만에 손에 잡은 ‘데니스 루헤인’의 작품. 최근 작품들에서는 볼 수 없는 긴 문장,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세밀하게 표현하는 문장이 아주 반갑다. 이미 밝혀진 여러가지 사실들. 인종차별정책의 일환으로 더 혼란을 더해가는 보스턴. 거기에 갑자기 사라진 딸, 그리고 동네에서 일어난 흑인 청년의 죽음, 거기에 이미 책 표지에서부터 눈에 띄는 ‘복수의 서사시’만으로도 어느 정도 스토리 예상이 가능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독자가 찾게 되는 건 여러가지 사건이 만나는 지점일 것이다. 사건이 왜 일어났는가, 그 사건들은 과연 어떻게 연결되는가, 과연 제목의 ‘작은 자비’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궁금해질 수 밖에 없다.
배경에서 알려주는 더운 날씨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등장 인물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 화가 나 있어 보인다. 딸의 동선을 따라가는 ‘메리 패트’의 시선, 딸과 함께 했던 다소 불량스럽고 좀 모자란 친구들, 어리숙해 보이지만 감시를 늦추지 않는 동네 갱들까지 모두 차분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상황에서 쫓는 사람의 속도감이 드러날수록 긴장감이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메리 패트’는 단 한 순간도 망설임없이 앞을 향해 나아간다.
-----------------------------------------------------------
“그 녀석 아시죠, 럼 콜린스. 요전 날에 데려왔던?”
“그래”
“여기 있습니다.”
“무슨 말이야?”
“절뚝거리면서 왔어요. 바지는 온통 피범벅이고. 어기 윌리엄슨에게 있었던 일을 말하고 싶답니다.”
“그럼 진술받아.”
“형사님한테만 말하겠답니다.”
“갈게.”
“저기요, 보비”
“응?”
“얘가 바지에 지렸어요. 음 진짜 말 그대로요. 녀석 말이 자기를 다시 거리로 보내지 않겠다는 그 한가지만 약속해 달랍니다.”
“좋아, 왜 그런데?”
“그 여자가 거기 있어서요.”
P. 254~255
-----------------------------------------------------------
하나뿐인 딸, 자신의 모든 것인 딸의 실종이 가져오는 상실감은 평범했던 엄마의 폭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이전 작품들과는 조금 다르게 데니스 루헤인은 인물의 직접적인 심리 변화에 대한 것은 짧게, 주변인의 상황 묘사는 느슨하지만 확실하게 보여준다.
인상깊은 부분은?
어느 순간 시원함을 느끼다가도, 또 다른 지점에서는 답답함을 느끼는 건 현실적인 모습을 담아서일 것이다. 법 따위는 비웃으면서 구석구석 다 청소할 것 같은 ‘메리 패트’가 동네를 주름잡는 갱 앞에서 갑자기 말이 없어진다든지, 이미 만난 인물의 이야기, 게다가 다 이해했음에도 이리저리 둘러대는 변명들을 듣고 있는 건 이야기의 속도감이 늦어지는 것 같아도 후반부를 위한 다지기 같은 느낌이다.
다만, 배경이 된 ‘버싱’이 아주 깊게 다뤄지지는 않는다. 물론 스토리 전반부에 그 때문에 혼란스러움은 잘 보여주지만, 그들이 경험한 그 날 밤, 그리고 줄스가 겪은 사건은 딱히 ‘버싱’과는 상관이 없게 느껴진다. 사회적인 분위기와 흑인과 백인으로 나뉘어진 상황을 위한 장치일 뿐 사회적인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는 건 더 확장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 같아 조금 아쉽다.
중반 이후 ‘메리 패트’가 딸의 향방을 자각하는 문장은 짧으면서 강렬해서 계속 생각이 날 것 같다. 또 이전 작품들과는 다르게 의외로 문장이 길지 않은 것은 전체적인 책의 분량과도 상관이 있어 보인다. 아무래도 ‘엄마’가 보여줄 추적이 늘어지지 않게 보여주려는 의도가 중요해서 그런 것 같은데, 후반부를 위한 빠른 전개가 더욱 반갑기도 하다. 마지막 페이지를 닫는 순간 떠오르는 건 단 한 줄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일 것 같다.
덧붙인다면?
1. 애플TV에서 드라마로 제작이 될 거라고 하는데 어떻게 만들어질지 궁금하다.
2. 데니스 루헤인의 이전 작품들을 읽어 본 적 있다면, 그리고 딸을 위해 엄마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보고 싶다면 추천, 감춰진 음모나 꼬이고 꼬인 스릴러물을 기대한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황금가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