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 1~2 세트 - 전2권
스티븐 킹.피터 스트라우브 지음, 김순희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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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포인트는?

조금은 의심스럽고 의뭉스러운 ‘부적’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은 공존하는 두 개의 세계를 오고가는 10대 소년의 모험을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부적’의 역할이 분명 있지만, 그보다는 좀 더 판타지적인 제목도 어울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평행세계(책에서 다루는 건 일반적인 ‘평행’과는 조금 그 결이 다르긴 하다)를 다룬 소설과 영화들이 워낙 많아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이 책이 1984년에 처음 나왔다는 걸 생각하면 오히려 그 작품들보다 더 새롭고 놀라웠을 것도 같다. 어쨌든 이 책은 ‘현실’과 ‘판타지’를 오고가는 것이 가장 큰 사건의 전환을 보여주는데, 이렇게 이야기하면 누구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루이스 캐럴 작)를 떠올릴텐데 만약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비주얼은 확실히 다르겠지만 이야기의 흐름은 제법 비슷한데, 특히 주인공인 ‘잭 소여’가 상상의 목소리를 듣거나 생각지 못한 신기한 광경을 보게 되는 건 인물이 겪게 되는 감각적인 느낌으로써는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스피디 파커’라는 노인에 의해 지금 현실이 아닌 다른 세계(‘테레토리’)를 알게 되었다고 해도 그곳을 향하게 되는 건 순전히 ‘잭 소여’의 일차원적인 목적이 가장 크다. 바로 자신의 엄마인 ‘릴리 카바노’가 건강이 좋지 못하고, 그것이 테레토리의 여왕(이 두 인물이 동일시된다!)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바로 부적이 필요한 부분이다-이 가장 중요한 이유이므로 여왕을 위험에서 구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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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을 찾아야 한다, 얘야. 부적을 찾아서 안전하게 가져와야 해. 어깨가 무겁겠지만 그 일을 마치고 나면 한결 성장해 있을 거란다.”

스피디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집중한 나머지 잭은 스피디의 주름진 얼굴을 눈을 가늘게 뜨고 보고 있었다. 흉터있는 사내, 외곽경비대의 캡틴. 여왕. 포식자처럼 자기 뒤를 쫓아오는 모건 슬로트. 영토 반대편에 있는 악의 저택. 어깨가 무거웠다.

P. 143(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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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렇게 쉽게 모험을 결심하는 ‘잭 소여’가 의협(義俠)적인걸까? 하지만 글을 읽어나가다 보면 그보다는 너무 단순히 엄마를 구하겠다는 마음만으로 두 세계를 넘나들게 된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이 들 수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이를 더욱 ‘소년적’인 느낌으로 만드는 건 살고 있던 동부에서 서부까지 이르는 그 길을 횡단하는 로드무비라는 형식을 보여준다는데 더 판타지스러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길을 떠난다고, 집에서 더 멀어진다고 해서 더 성장한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이는 스티븐 킹의 이전 소설인 <스탠바이 미>에서 실종된 아이를 찾겠다며 친구들과 모험을 떠나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어쨌든 그 자리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무언가를 찾아가는 목적을 가진 여정은 누군가를 성장시키는 어떤 계기를 마련해준다는 것 아닐까? 이 소설에서도 역시 여러가지 상황을 통해 소년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어른스럽지 못함을 많이 보여주고 그것에 대한 비판을 냉정하게 대한다. 판타지 세상인 ‘테레토리’에도 그 곳만의 규칙과 정의, 그에 반하는 두려움와 공포가 사람들을 지배하는데, 사실 이런 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빌런의 우스꽝스러움과 비교되기엔 다분히 사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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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머나먼 서부까지 여왕이 아프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채 얼마 안 되어, 모건은 기괴하게 뒤틀린 노예들을 광산에서 다시 동쪽으로 이송했다. 이 노예들을 감독하는 자들 중에는 훔쳐 온 울프족 외에 더 기이한 생명체들도 있었다. 감독들의 우두머리는 늘 채찍을 가지고 다니는 끔찍한 사내였다. 

(증략)

소문에 의하면 일이 정점에 이르자 모건이 채찍을 가진 사내를 동쪽으로 다시 불렀다는데, 앤더스는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몰랐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때때로 뼈만 앙상하니 왠지 모르게 섬뜩해 보이는 작은 소년을 데리고 다니던 그 사내가 사라진 것이 그저 흐뭇할 뿐이었다.

P. 338(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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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에 대해서도 여러 부분을 할애해서 묘사하는만큼 옳지 않음에 대해서는 여지없는 비판을 가하는 것이 역시 ‘스티븐 킹’다움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전에 스티븐 킹의 다른 소설을 읽고 남겼던 서평에도 있지만, 스티븐 킹은 무언가를 비판하는 것에 관용 따윈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쯤에서 떠오르는 또 한가지. 한번쯤 영미소설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이미 주인공 이름에서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을 떠올렸을 것 같다. 애니메이션이 아닌 책으로 접한 <톰 소여의 모험>은 생각보다 진중하고 무겁기도 하다. 주지하자면, 그 이야기 역시 미시시피 강변에 위치한 상상의 마을 세인트피터스버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톰 소여와 친구들의 신나는 모험을 그리고 있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긴 강, 그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사건과 그것을 바라보는 소년의 시선. 어떤 이는 그것을 어른을 향한 풍자라고 할 것이고, 어떤 이는 어른들의 반성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이 소설이 ‘부적’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을지는 두 작품 모두를 읽어본 사람들의 상세한 차이 비교를 들어보고 싶기도 하다. 


주제넘게 이 소설을 판타지라는 상상의 나래를 자극하는 카테고리에 넣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조금 다른 형태의 성장소설 정도로 보는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우리가 <해리 포터>를 읽으며 마법에 쾌감을 느꼈다면 시간이 지나며 느껴지는 그들의 성장과 성숙이 더 크게 와닿는 것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어서이다. 다만, 과거의 상처를 잘 다듬어 멋진 성인으로 성장하는 소설로 보기에 그 과정은 조금, 아니 조금보다는 조금 더 엉뚱하긴 하다. 


인상깊은 부분은?

번역이 되어나오는 한 단계로 인해 ‘스티븐 킹’과 ‘피터 스트라우브’의 공저라는 것이 어느 부분에서 경계 파악을 해야할지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피터 스트라우브’가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온 작품이 1~2개, 그나마도 아주 예전에 나왔을 뿐인만큼 비교적 덜 알려져 있어 어떤 작품에서 어떤 형태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간간히 ‘아! 이건 스티븐 킹이 쓴 부분이다’라는 걸 느끼게 하는 문장이 있는 것 같은데, 이 역시 번역가의 센스라면 얼마든지 유사하게 재구성할 수 있는 부분이므로 콕 찝어내기가 쉽지 않다. 굳이 생각해 본다면 ‘스티븐 킹’은 스릴러와 인간 내면에 대한 부분을, ‘피터 스트라우브’는 모험 부분을 썼을거라 추측은 해보지만 이 역시 개인적인 판단일 뿐이므로 누구의 필력이 더 많이 들어갔는지는 책읽기를 마친 후에도 잘 알 수가 없다. 이런 때는 두 사람의 특징을 잡아내기 보다 전체적인 분위기만 따라가는게 책을 읽어나가는게 도움이 될 듯 하다.


솔직히 본격적인 모험이 시작되는 2권에 이르기까지 1권은 좀 이야기가 늘어지는 부분은 있다. 하지만 전체가 1,200 page가 넘는 방대한 양 중 약 500여 page에서 펼쳐지는 내용이 늘어진다고 한다면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기대를 하게 될까? 굳이 늘어지는 부분이라고 표현한 건 인물 소개와 배경 설명에 다분히 많은 시간을 할애했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얘기했지만 소년이 미국 횡단을 해나간다는게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는데다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사람들 역시 드라마틱한 마법사나 초능력자가 아니기 때문에 무언가 눈이 번쩍, 긴장감이 백배가 될만한 사건이 일어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물들의 ‘특별한’ 요소는 그 인물을 정확히 이해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낯설게까지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최소한 인물의 말과 생김새, 그 주변 인물을 잘 이해해야 빠르게 진도가 나갈 수 있을 것이다. 


2권 중반쯤 되면 조금은 빠르고 시각적으로도 와닿는 액션 장면들이 많아지는데, 왠지모르게 소소한 마법보다는 훈련된 고도의 군인들이 전투를 펼쳐야 할 것 같은 느낌까지 든다. 1권에서 중세의 성을 떠올리는 여러가지 상황들을 떠올리면 최소한 그만큼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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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은 우지의 총신을 지렛대 삼아 더 빠르고 더 힘차게 상자 뚜껑을 들어 올렸다. 그들은 ‘초토화된 땅’을 거의 지나가고 있었지만 잭은 여전히 기차를 너무 오래 세워 놓기가 찜찜했다. 기관총 상자를 통째로 운전실로 가져갈 수 있다면 좋을 테지만 상자가 너무 무거웠다. 이것은 무겁지 않다, 내 기관총이니까. 잭은 이렇게 생각하며 어둠 속에서 피식 웃었다.

P. 406(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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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다행인 건 기존의 스티븐 킹의 작품에 비해 등장인물이 많지가 않다는 것이다. 원서 기준으로 이정도 분량이라면 읽어나가다 다시 앞으로 갈 법한데 이번에는 그럴 정도가 아니기도 했다. 다만 앞서 얘기했듯이 새로운 등장인물이 나오면 이름과 특징은 잘 이해하는 게 좋겠다. 주인공을 돕는 조력자로 등장하는 ‘울프’는 다른 판타지 소설에서 마법사가 낯선 곳에서 만나는 요정 같은 존재일 것이다. 다만 ‘커다란 털복숭이 야수 소년’이었다는 게 아주 큰 다른 점이겠지만. 또한 현실에서도 그리고 테레토리에서까지 잭을 쫓는 빌런 ‘모건 슬로트’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닌만큼 충분히 싸워볼만한 적이라는게 긴장감을 계속 주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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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트는 기차역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오리스가 이쪽 세계로 맨 처음 순간이동 했을 때를 생각해 보았다. 그 때를 떠올리며 향수를 느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참으로 기괴하다고 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그는 거의 죽을 뻔했던 것이다. 아니, 두 사람 다 거의 죽을 뻔 했다. 하지만 그것은 1950년대 중반의 일이고, 이제는 그 자신이 50대 중반이다. 그 차이는 이 세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P. 300(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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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도 끝도 없이 소비되는 악당이라면 이름조차 필요하지 않을 수 있겠으나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주인공을 힘들게 하는 악당으로써 나름의 사연도 가진 ‘모건’에 대해서는 더 시각적인 극강의 힘을 보여주지 못하는 게 아쉽긴 하다. 하지만 잭이 주변에 적응을 못하고 허둥대고 있을 때 여유로운 모습을 보면서 다른 미디어를 통해서 보여지게 된다면 좀 더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재기발랄한 스토리, 익숙하지만 살짝 색다른 배경과 인물들이 이야기를 보여주는만큼 색다른 기분으로 읽어볼만한 소설로 충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기존에 보아 오던 ‘스티븐 킹’의 소설에 비해 스토리에 응집력이 좀 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두 사람의 공저여서 그런건지, 아니면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앞 부분에 다소 사족같은 부분이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같은 주인공으로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면 또 다시 읽어볼 것 같다.


덧붙인다면?

1. 표지에 따르면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화 예정이라고 하는데, 판타지여서 그런게 아니라면 역시 ‘프랭크 다라본트’(Frank Darabont)가 더 낫지 않을까 한다.


2. 역시 이번에도 번역가의 재기발랄한 번역이 있다. 어떤 원서의 내용을 바꾼건지 모르겠지만 “세상에 마상에나”(P. 408, 2권)라는 말에 이어 “마상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은 100% 번역가의 능력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3. 스티븐 킹의 소설을 좋아한다면, 그리고 기존의 평행세계와는 다른 모험소설을 원한다면 추천,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를 능가할만한 판타지 소설을 기대한다면 비추.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황금가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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