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나누었던 순간들
장자자 지음, 정세경 옮김 / 도도(도서출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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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외할머니와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류스산. 어린 시절 전학을 왔던 ‘청샹’의 어여쁜 미모에 감탄하지만 소녀보다는 왈패에 가까운 그녀에게 낯선 감정을 느낀 것도 잠시, 짧고 아쉬운 추억만을 남긴 채 헤어지게 된다. 그 이후 대학 때문에 대도시에서 살게 된 류스산은 학교에서 ‘무단’과 만나 사랑을 하지만, 이마저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안타까운 상황에서 어느 날 백팩으로 인한 오해 때문에 경찰서를 가서 놀라운 인연을 만나게 된다.



주요 포인트는?

위에 쓴 이번 소설 줄거리를 생각하면서 몇 차례 수정할 수 밖에 없었는데, 자세히 쓰다보니 너무 줄거리가 길어지고,그렇다고 인물을 빼다보면 쓸 수 있는게 한정적이어서 최종 결정한 것인데,등장인물이 주인공 포함 3~4명 같지만 훨-씬 많고 내용도 그리 간단하게만 볼 건 아니다. 세상 어느 곳에나 갈등이 있고, 내 편이 있고,각자 담고 있는 스토리가 있는 건 당연하니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건 맞으나 '류스산'의 고향,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대도시에서의 학교와 직장생활을 통해 스쳐가는 인물들이 많으니 그런 잔재미도 꼭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크게는 어린 시절 -> 대학 시절 –> 직장인 시절 –> 강제 귀농(?) 시절 정도로 나눌 수 있는데, 그것을 관통하는 사람 이야기, 즉 처음부터 가까운 사람들, 내 삶에 필요했던 사람들, 또 나를 심정적으로나 인간관계에서 성장 – 말은 이렇지만 결국 villain들이다 - 시켜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한 계단 한 계단씩 펼쳐진다. 등장인물 중 2~3명은 좀 설정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느 정도 현실적인 부분이 있으므로 읽으면서 부담스럽게 느끼지는 않을 것 같다.


인물들에 대해서는 재기 발랄하진 않지만 주인공 눈높이에 맞는 묘사들도 있고,직접적인 행동을 바로 보여주기보다 주변 환경으로 대신 보여주는 게 많은데 읽으면서 어렸을 때는 이야기 하는 부분은 나의 과거(그 나이 때쯤)를 떠올리게 했다.

류스산이 보기에 진을 통틀어 가장 예쁜 여자는 딱 세 명이었다. 

첫 번째는 뤄 선생으로 이목구비가 아주 예쁘지는 않지만 성격이 좋은 편이었다. 대학물을 먹어서인지 시골 아가씨보다 확실히 나았다. 

(중략)

두 번째는 마오팅팅으로 진에서 공인된 미녀였다. 사람들은 종종 뒤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했다. 그녀의 아머지는 운수업을 했는데 밤에 트럭을 몰고 산길을 가다 차가 뒤집혀 목숨을 잃었다.

(중략)

제 번째는 청샹으로 하마터면 슈스산의 미학 시스템을 뒤흔들어 놓을 뻔했다. 웃기를 좋아하는 그녀가 코라도 한번 찡긋거리면 보는 사람들 모두 함께 따라 웃었다. 하지만 그녀는 성격이 흉악한데다 막무가내라 니우따텐은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생각을 일찌감치 접었다. 

P. 43 ~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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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뜬 눈으로 지새운 외할머니는 몸을 뒤척이면서도 외손자가 방문 앞에서 서 있는 걸 알고 있었다. 잠시 후 그녀의 귀에 살금살금 걸어가는 발소리와 드르륵 여행 가방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여왔다. 곧이어 마당 문이 살그머니 닫히고, 이른 아침 일어난 새 몇 마리만 이따금 울어댔다. 

외할머니는 문을 열고 나가 복숭아나무 아래에 앉았다.

(중략)

류스산의 여행 가방 주머니에는 돈이 없어 기름을 못 산 외할머니가 어젯밤 몰래 넣어 놓은 5백 위안이 있었다.

P.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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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년의 여름방학의 어느 오후, 덥고 답답했던 공기는 갑자기 상쾌해졌고 여자아이는 나무 그림자 속에서 걸어 나와 포니 테일 머리를 흔들며 그의 곁에 앉아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난 청샹이라고 해."

여자 아이는 돌다리 위에서 기다란 빗자루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소리 질렀다.

"돈 내놔."

P. 98


대화보다는 상황을 하나하나 그려내면서 인물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인데 개인적으로 대화보다 큰 impact은 떨어지더라도 이런 간결한 묘사는 참 좋은 것 같다. 주어(인물)이 바뀌는 순간 바로 화면 전환이 되는 기분도 들고 문장도 길지 않아 읽으면서 내가 기억하는 어떤 이미지에 대입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어린 시절과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의 이야기는 단막극을 보는 것 같아 쉽게 이해도 가고 빨리 읽게 되는데, 반대로 단막극을 보아 왔기 때문에 그런 소재나 유사한 묘사들을 많이 봐와서 일종의 기시감 같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시골은 어디나 비슷하지’라고 하기엔 난 중국을 가 본적도 없고, 중국의 학교라는 것을 떠올리기엔 너무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소설 자체가 이해하기 쉽게 쓰여졌다고 볼 수도 있지만 너무 쉽게 와닿는다면 다른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들을 떠올려서 그럴 수도 있는거 아닐까? 그렇다고 이 소설속에서 표현하는 것들이 흔하다는 건 아니니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다.


크게는 처음과 마지막을 볼 때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눈물을 펑펑 쏟을만큼 슬프지도, 그렇다고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만큼 신비스럽고 극적이지도 않아서 더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오래 기억에 남았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사랑에 관한 것도 중요한 부분이지만 시골에서 자라 온 한 소년의 성장기, 이를테면 돈을 많이 벌어서 외할머니를 호강시켜 주겠다는 것이나, 자신만의 공책(버킷리스트와 비슷한, 의지 노트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을 갖고 그것을 이뤄나간다는 것, 한 때 사랑에 대한 미련, 직장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강요된 노력과 피로함에 따른 강제 귀농(?) 같은 건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성장소설의 모양새이기도 해서 눈길이 간다. 하지만 그런 주인공의 무기력한 단단함은 조금 답답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기도 하다.



iv. 인상깊은 부분은?

책을 읽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흐르는 시간, 그보다 더 무의미 한 것 같은 사람들과의 관계, 그 속에서 오고 가는 대화들이 어떻게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알게 되는 것 같다. 실제로 도시에서의 생활에 있어서는 상황에 대한 묘사보다 대화가 많은 편이다. 아마도 배경의 변화도 관련이 있겠지만 대화만으로 인물을 설명하기에 충분한, 때로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없는 인물이어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동료들도 약속이나 한 것처럼 뒤도 안돌아보고 자리를 떠났다. 우씨 아줌마는 마지막으로 자리를 떠나며 가게 문 앞에서 머뭇거리다 말했다.

"우리 팀 단톡방이 있어."

"예." 류스산이 대답했다.

"거기 스산씨는 없어."

"예."

"허우 이사님이 돌아오셨나봐. 노래방 가자고 부르시네."

우씨 아줌마가 말했다.

"예."

"나 먼저 갈게."

P.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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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렇죠. 한 달에 5건 정도는 가, 가능하니까요."

그 말에 허우 이사가 미간을 찌푸리자 우씨 아줌마는 깜짝 놀라며 바로 말을 바꿨다.

"하지만 류스산 씨라면....희망이 없죠. 전혀, 아주 희망이 없고 말고요. 하나도 없죠."

"좋습니다. 한달이라 제가 기다리죠. 그리고...."

허우 이사는 말을 하다 말고 류스산의 귓가에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우리 약혼했어."

이 말을 마친 뒤 허우 이사는 사람들 앞에서 양손을 깍지 끼고 겸손한 척하며 말했다.

P. 165

확실히 유년시절의 부분과는 다르다는 걸 이해할 것이다. 대화로만 전해지지 못하는 이야기가 안타깝지만, 책을 읽으며 위에 나오는 '허우 이사'와 '류스산'의 관계와 숨겨진 이야기를 알게 되면 저 부분들이 얼마나 화나고 억울하고 슬픈 부분인지 알게 될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드라마틱한 성공을 하지도 않고, 무언가 남들보다 뛰어나지도 않다. 심지어 싸움도 못하는데다 말솜씨도 썩 좋지 못하다. 보기에 불만족스럽지만 보통 젊은이의 대표성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소설의 주인공이어서가 아니라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되는 학교 동기, 동네 친구, 고향 후배 같은 기분으로 볼 수 있을 것 같고, 그러다보니 '류스산'이 겪게 되는 이런 저런 일들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때론 안타깝기도, 때론 답답하기도, 때론 도와주고 싶기도 한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고향 사람들. 이름을 하나하나 열거하기도 어렵지만, 그러기엔 사연들도 여러가지가 있어서 직접 읽어봐야 더 와닿을 만한 사건들이긴 하다. 다만, 앞서 얘기한 동네('진'이라는 마을 단위를 쓴다)에서 가장 예쁜 미인 중 한 명의 사연, 그리고 '치우치우'에 대한 이야기는 한번쯤 앞으로 다시 돌아가서 내가 기억하고 있는게 맞는지 확인할 만큼 여운을 남긴다. 드라마였다면 따로 에피소드로 만들어도 아주 좋은 소재였을 듯 하다. 특히 가끔 학교에 찾아와 갖고 있는 쓰레기로 학비를 내겠다고 하는 정신 이상자에 대한 부분은 몇차례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왕용은 외지에서 우리 진에 내려와 가구점을 열었던 사람이야. 아내가 많이 아팠는데 전에 돈을 꿔간 사람이 도망가서 갚지 않았어. 결국 가게까지 팔았는데 돈을 다 쓰고도 병을 고치지 못했어. 아내는 한밤중에 강물에 뛰어들어 죽었고."

청샹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왕용에겐 당시 세살 좀 안된 딸이 하나 있었어. 그 딸을 데리고 매일 돈 꿔간 사람을 찾으러 다녔는데 충격을 받았는지 점점 이상해졌어. 딸이 여섯살 때부터인가 가끔 학교에 오는데 벌써 2년째네. 나름 딸을 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는지...(후략)

P. 279 ~ 280


조금 아쉬운 건 내가 알고 있는 중국의 거대함을 떠올릴 때 아무리 배경을 ‘학교’, ‘도시’, ‘고향’에 국한하더라도 주인공을 둘러싼 우연이 몇 차례 겹치는 건 뒤에 나올 스토리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기서 꼭 얘기하고 싶은 건 그 뒤에 나오는 스토리와 연결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놀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대표적으로 ‘치우치우’에 대한 이야기인데, 사실 처음 등장하는 순간과 뒤에 나오는 여러 가지 상황들은 ‘사족’이라고 느껴지기까지 했다. 어른스럽고 귀여운 말괄량이 꼬마가 도대체 왜 여기서 이 이야기들을 할까라고 생각되다가 뒷부분에서 나오는 어떤 사건과 이어지는 순간! 앞에서 오고가던 이야기들이 '훅'하고 다시 떠오른다. 이건 반전보다는 서프라이즈인걸로. 아무튼 그런 건 우연이 인연이 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겠는가?


'류스산'의 사랑에 대해서는 많이 쓰지 않았는데 잊혀질 때 한번씩 이어지는 사랑을 말로 표현하다보면 너무 전형적으로 보일 것도 같고, 이미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 비슷한 상황을 본 적이 있어 그것과 비교될 수 있다는 생각에 피하고 싶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손짓을 하다 두 팔을 펼쳤다.

"너는 내 삶에서 이렇게 빛나고 빛나는 한줄기 빛이니까."

청샹은 류스산에게 맑고 빛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P. 496

다만 두 사람의 결말에 느껴지는 감동을 더 크게 느낄 수 있는 대화여서 옮겨보았다. 직접 느껴보시길.


마지막으로,  첨밀밀(1996, 진가신 감독) 영화에서 등려군의 '월량대표아적심 亮代表我的心'이라는 노래를 들어봤을텐데, 이 소설에서도 잠시 등장한다. 역시 국민가요인가보다. 그러고보니 이 소설의 내용과도 잘 어울리는 노래이고 잘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류스산이 여자친구를 바라 볼 때, 그리고 소설 뒷부분에 다시 한번 장국영의 노래가 배경으로 그려진다. 가사만 나와서 무슨 노래인지는 몰랐는데 찾아보니 '공동도과 共同渡過'라는 노래인 것 같다. 음원이 있거나 노래를 잘 아는 분들은 함께 들어보시길. 



덧붙인다면?

1. 오랜만에 중국의 소설을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전에 다른 소설을 읽었던 걸 잊고 있었다. 맘먹고 찾아보니 집에 의외로 중국 작가(문학 포함, 경제나 역사에 관한 것)의 책이 많은 것에 새삼 놀랐다.


2. 난 이 작가의 글을 처음 읽었는데,이런 소설 뿐 아니라 ‘너의 세계를 지나칠 때’라는 영화의 원작으로 쓰일 만큼 작가로도 유명한 사람이다. (어떤 블로그에 그 영화의 감독도 했다고 되어 있던데 그건 잘못된 정보인 듯 하다. 감독은 ‘장일백 张一白’이다). 아무튼 이 영화와 소설도 꽤 재미있다는 풍문이 있으니 찾아보는 재미도 있을 듯 하다.


3. 우선 시간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정말 가끔 과거의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오긴 한다. 하지만 거슬리거나 앞에서 나온 부분을 다시 봐야 할 정도는 아니므로 그런 부분이 나오더라도 그냥 편하게 읽어도 되겠다.


4. 잔잔한 첫사랑의 이야기로 소소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너무 트렌디한 소설들에 지쳤거나, 읽고 나서 잠시나마 따스한 느낌을 받고 싶다면 추천,자극적이고 선정적인 29금 소설을 좋아하거나 첫사랑 따위는 교과서에나 나오는 판타지라는 생각이 든다면 비추천.


* 이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서평 내용 일부를 편집한 것입니다.

* 이 서평은 출판사 '도서출판 도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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