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일록은 내 이름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하워드 제이컵슨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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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일록은 내 이름>은 현대 작가들이 셰익스피어를 재해석한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이며, 원작은 『베니스의 상인』이다.

 

 

 

★원작-베니스의 상인

1596년 경에 집필 되었으며 1600년에 초판이 발행되었다.

 

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는 벨몬트의 부자 상속녀인 포샤에게 청혼하러 갈 여비를 마련하려는 친구 바사니오를 돕기 위해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가슴 근처의 살 1파운드'를 담보로 돈을 빌린다. 안토니오의 도움으로 바사니오는 무사히 포샤와의 결혼 승낙을 받아내지만, 안토니오는 배가 난파하는 바람에 샤일록에게 돈을 갚을 길이 막막해진다. 이에 재판을 받게 된 안토니오를 위해 재판관으로 변장한 포샤는 '살은 베어가되,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선 안 된다'라는 판결로 안토니오의 목숨을 구한다. 그리고 패소한 샤일록에게 재산 몰수와그리스도교 강제개종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개작-샤일록은 내 이름★

 

<샤일록은 내 이름>은 가독성 면에선 형편없는 책이다.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정상적인 인물은 하나도 없고, 등장인물 모두는 뭔가-그것이 돈이든, 종교든, 남자든, 쾌락이든, 딸 혹은 아내-에 현혹되어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책의 어디가 '베니스의 상인인가?'라는 의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잊지 말자. 원작인 베니스의 상인에서도 그렇지만 이 개작판에서도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샤일록'임을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가독성이 안 좋다 함은 내용 전체의 흐름이 어딘가 '나'와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일 테니, 일단 책 이야기는 접어두고 등장인물인 '샤일록'에게 집중해보자. 그는 율법주의에 얽매인 '유대인'이다(한 예로 86쪽에서 사이먼과 대화하던 그가 뜬금없이 "손을 씻도록 하세."라고 하는데 손을 씻는 행위는 율법-구약 레위기-에 명시될 만큼 유대인에게 엄청 중요한 행위다). 그에겐 딸 제시카가 있는데 비유대인과 사랑에 빠져 샤일록의 결혼 예물(아내인 리아가 준 약혼반지)을 훔쳐 달아났다. 그것도 모자라 그것을 '원숭이'와 바꿨다! 제시카의 이러한 행위는 샤일록이 말했듯 제시카 내부의 유대인을 부정하기 위해서(87쪽)였다. 왜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려 했을까?

 

유대인이란 누구인가? 아마 세상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족속 중 하나일 것이다. 슐로모 산도의 『유대인, 불쾌한 진실』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오늘날의 포스트쇼아 고임(홀로코스트 이후 비유대인)에게서 우리는 한데 섞인 공포와 죄의식, 그리고 무지를 발견하며, 때로는 '신유대인들'의 희생자 노릇, 자아도취, 허세, 게다가 터무니없기까지 한 무지를 마주 하곤 한다. <유대인, 불쾌한 진실> by 슐로모 산도, p23, 훗

 

유대인이 되기 위해서는 '모계혈족주의'를 따른다. 아버지가 비유대인이라도 어머니가 유대인이라면 그 자손의 신분증에는 '유대인'이라는 별도 확인이 기록된다. 그 반대로 어머니가 비유대인이고 아버지가 유대인이라면 자손은 비유대인이 된다. 그러니 유대인=이스라엘인이란 등식은 틀린 말이다. 이스라엘 인구의 25%는 유대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들이 '딸'의 결혼에 신경을 쓴 이유가 이해된다. 딸의 자궁은 거룩한 선민, 유대인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들의 정체성은 그들이 나고 자란 환경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니 그들에게 딸들이 사랑에 빠진 '비유대인'은 정체성을 뒤흔드는 위협 외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특히 샤일록은 자유경제시장의 혜택을 받는 다른 등장인물에 비해 가진 것이 없기에 더욱 그 정체성에 매달렸을 확률이 크다. 시야가 좁은 만큼 그에겐 유대인이란 자긍심이 더 컸을 것이라 짐작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유대인' 즉, 포스트쇼아 2세대 유대인에 속하는 그들의 자녀 세대-비어트리스, 크리스틴, 제시카, 플루러벨-는 어떠한가? 그녀들은 비록 유대인일지라도 아버지 세대와는 다른 삶을 살고,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자란 세대다. 그러니 기성세대의 교육을 받고 자랐더라도 여러모로 그들과는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다. 유대인이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틀에 갇히는 것은 지양하는 세대, 즉 유대인의 정체성이 퇴색하기 시작하는 세대다. 그래서 그들은 유대인이지만 유대인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아버지의 시대는 '암흑시대(155쪽)'에 불과한 것이다.

 

기서 우리는 <샤일록은 내 이름>을 읽을 두 개의 텍스트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세대갈등'과 '유대인에 대한 풍자'라는 측면이다. 이 풍자에 관해서는 원작인 '베니스의 상인'보다 오히려 도스토예프스키의 '아저씨의 꿈'과 비슷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니 '아저씨의 꿈'과 비교하면서 읽는다면 더 쉽게 읽히지 않을까 한다.

 

일록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면, 아무리 답답하고 이해가 안 가는 족속이라 해도 우리는 샤일록을 비난할 수 없다. 순혈주의와 성민사상을 내포한 유대인이라는 사실에서 나온 샤일록의 정체성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며, 자라온 환경이 달라 세대 간 갈등을 불러오는 가치관의 다름도 우리는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샤일록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변화무쌍한 현실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켜가려는 인물로 보인다. 물론 딸인 제시카를 한 사람의 인격이 아닌 자신의 '소유물'로 여겼던 점은 잘못이지만, 그 감정을 이해 못 할 지경은 아니다. 부모로서 그것은 샤일록에게 '당연'했기 때문이고, 그것을 '사랑'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샤일록에게 제시카의 행위는 '배신'이었다.

 

샤일록은 딸을 키우는 게 당신의 자녀들을 더 잘 키울 수 없는 하느님이 부과한 끔찍한 의무인 것처럼 말했다. 사랑을 베풀라고 하는 게 아니라 사랑을 하라고 강요하는 의무. 스트룰로비치는 샤일록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은 아주 고단한 체험일 거라고 생각했다. 온 우주가 아버지는 딸을 현명하게 사랑하는 게 아니라 지나치게 사랑하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딸은 그 사랑 때문에 아버지를 증오한다.(82쪽) 

 

<샤일록은 내 이름>은 단숨에 읽어 낼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전체 흐름을 잡기 힘든 책이라 샤일록에 집중해서 읽었음에도 여기에 쓴 글 외에 샤일록에 대해 놓친 부분이 더 많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유대인'에 대한 변명을 아무리 설파한다고 해도 그들에 대한 풍자와 세대갈등이 이 책의 큰 흐름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 책을 읽을 때 '베니스의 상인'에 연연하지 말자. 앞서 말한 것처럼 차라리 '아저씨의 꿈'을 원작이라 놓고 보는 게 이해하기 더 쉬울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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