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보는 남자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
김경욱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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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랑, 저런 사랑, 개와 늑대의 시간★

 

<거울 보는 남자>는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지 1년 후, 남편과 닮은 남자 '영필'을 만난 '지우'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입니다. '안면이식'이라는 독특한 소재인데요, 헤드샷 자살 시도 후유증으로 안면 장애를 가진 영필이 지우 남편의 안면을 이식받은 것이었죠. 실제로 안면이식은 희귀 성형 케이스라서 아직까지 약 50건 정도 밖엔 이루어지지 않은 기술이라고 합니다.

 

이 책은 보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일종의 로맨스입니다. 남편의 사고 정황에 의심을 가진 보험 조사관의 한마디에 동석한 '누군가'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되고, 우연히 남편의 사고 일자와 같은 날이 생일인, 남편의 안면을 이식받은 남자를 만나게 된다면 가장 먼저 뭐가 떠오르시겠어요?

 

작가인 김경욱의 전작 제목이기도 한 '개와 늑대의 시간'(물론 전 이준기/정경호 주연의 드라마가 제일 먼저 생각나지만요)은 하루에 두 번,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이른 새벽'과 해 질 무렵의 '늦은 오후'를 뜻하는 시간입니다. 이 무렵이 되면 주변의 사물이 명확히 보이질 않고, 실루엣만 간신히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개와 늑대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의미로 쓰인 거죠. 그래서 저 멀리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잡아먹을 늑대'인지 알 수 없는 그런 시간대를 의미합니다.

 

<거울 보는 남자>에서도 지우 앞에 두 명의 남자가 등장합니다. '남편'과 남편의 얼굴을 '이식' 받은 남자... 지우는 영필과 만남을 갖게 되면서 도무지 이 사람이 남편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단 느낌을 받게 되고, 영필은 점점 지우의 남편에게 동화되어 가는 미묘한 상황이 전개됩니다.

 

어떤 주검 앞이든 살아남은 사람은 모두 살인자예요.(38쪽)

 

지우의 개와 늑대의 시간은 독자의 입장에선 참 견디기 힘든 시간입니다. 너무도 섬세하고 느린 템포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저자는 수없이 많은 의문을 제시하고, 또한 우리에게 동참하길 독려합니다. 그 독려에 힘입어 사건 속으로 뛰어들고, 지우의 시간을 동행하다 보면 저 또한 남편과 영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그 시간 속에 있음을 깨닫게 되죠.

 

간신히 지우의 독백에서 벗어나 나름의 시간을 가져보려 해도 어느덧 내 앞에 고개 숙이며 서 있는 그녀를 발견해버리고 맙니다. 등장인물의 관계에 대해(비록 3명 뿐일지라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그들은 각자의 존재인 것 같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존재인 것도 같고, 또 어떤 땐 셋 같기도 하고, 둘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언제까지고 묶어둘 순 없어. 사자는 사자니까... 용기가 필요해. 사자를 풀어놓고 길들일 용기... 두려워하면 잡아먹히는 법이야.(82쪽)

 

<거울 보는 남자>는 딱 이렇다 할 결말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죽은 남편이 가장 좋아했다는 그림 중 하나인 르네 마그리트의 '시크릿 플레이어'를 통해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죠. 배트를 휘두르고 있는 남자와 공을 잡으려는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남자... 그럼 공을 '던지는'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리고 이 그림을 창 문 안쪽에서 보고 있는 '나'는 누구일까요? 이 그림은 진짜 '지금'일까요?

 

<거울 보는 남자>도 생각하고 생각해 볼 수록 의문이 쌓여만 갑니다. 지금 내가 맞닥뜨린 이 시간은 지우의 '현실'일까요? 거울 속에서 나와 눈이 마주치고 남편과 닮은 남자는 '진짜 남편과 닮았을까요?' 아니면 지우의 '개와 늑대의 시간'이 보여주는 희미한 실루엣이었을까요?... 나의 거울은 '나'만 비추고 있을 뿐이니 그 답은 좀 더 숙고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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