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온 - 잔혹범죄 수사관 도도 히나코
나이토 료 지음, 현정수 옮김 / 에이치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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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ON)>은 낡은 주택에서 처참하게 살해당한 소녀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시작되는데요, 주인공 도도는 '여형사가 멋있으니까 너 형사해'라는 엄마의 말대로 형사가 되었고, 고추 양념을 모든 음식(코코아에조차)에 뿌려 먹는 특이 식성의 소유자입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미제 사건을 몽땅 외울 정도로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이기도 하죠. 도내에서 엽기적인 모습으로 자살한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면서 도도는 변사자들이 강력 사건의 용의자들이었음을 알아냅니다.

 

 

 

<온(ON)>은 2016년 일본 KTV에서 9부작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는데요(ON 이상범죄수사관 토도 히나코)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은 '하루'는 제가 좋아하는 배우이기도 하고, 도도역에 잘 어울리는 캐스팅이어서 그럭저럭 재미있게 봤었어요. 드라마는 도도 시리즈를 제작한 거라서, 책과 다른 부분이 많긴 하지만요. 원작보기 전에 드라마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을 몇 명이나 죽이든 사형이 집행되어 자신이 죽는 것은 단 한 번 뿐입니다. 자살할 수 없으니까 사형당하고 싶다는 바보 같은 논리로 무차별 살인을 저지르더라도, 죽는 건 한 번뿐이라니 참으로 불공평한 이야기지요.(86쪽)

 

사건이 진행되면서 여러 등장인물이 등장하지만, 저자가 범인을 하도 꽁꽁 숨겨놓는 바람에 나름 추리하는 재미가 배가되는 독서였어요. 잔인한 범죄 앞에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봤던 이야기, '저 놈(또는 저 놈 자식새끼)도 똑같이 당해봐야 해.'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 우리는 과연 정의감에 휩싸여 마냥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요?

 

범인은 추억마저도 빼앗아갔다. 교수형 따윈 미적지근한 형벌이다. 사랑하는 자를 그런 끔찍한 꼴로 만든 녀석은, 자신도 똑같은 모습으로 죽어야만 한다. 같은 모습으로 죽어 마땅한 것이다.(191-192쪽)

 

<온(ON)>은 방치아동, 소위 '형광등 베이비'로 자란 아이의 범죄를 그리고 있는, 잔인하지만 마음 한켠이 아려오기도 하는 범죄소설입니다. 범죄용의자이자 범인일 수도, 또는 자살자일 수도 있는 변사자들이 공포와 쾌락을 동시에 느낀다는 설정이 엄청 마음에 들었고요, '누가' '왜' 그들을 '어떻게' 그런 상황으로 몰아 넣는지에 대한 추리와 자극적인 묘사가 한데 엉켜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그 사람들은 감정이 있는 것처럼 행동할 수는 있습니다만, 감정을 갖고 있는 게 아닙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의 엽기 사건도, 본인이 생각한 명쾌한 이유 때문에 이루어진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갖고 싶으니까 갖는다, 방해되니까 죽인다, 흥미 있으니까 먹어본다는 식입니다. 그 사람들은 피해자가 존재했다는 기억은 있어도, 그 사실에 대해 우리가 느낄 만한 후회나 슬픔이나 동정이 없으므로, 사건 자체를 기억하는 방식이 우리의 상상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174쪽)

 

사람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조차 없는 잔혹함을, 책이 완성되기까지 수도 없이 상상했을 작가의 머릿 속이 궁금했던 책, <온(On)>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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