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수의사, 지도를 훔치다 - 별난 수의사 영광이의 무한도전 세계여행기
조영광 지음 / 다할미디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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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꿈을 꾸며 사는 사람과 꿈을 이루며 사는 사람.

전자는 늘 '언젠가'를 입에 달고 살면서 '꿈을 이룬 누군가'를 부러워한다.

후자에게는 늘 리스크가 따른다. '남들이 이루고 싶은 꿈'을 대신 이룬다는 건, 그만큼의 댓가와 희생이 따르는 법이다.

 

누구나 한 번쯤 세계여행을 꿈꾼다.

그럼, 가면 되지? 그게 그렇게 쉬웠으면 '꿈'으로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계여행을 하는 데에는 스포츠카를 모는 것과 같은 딜레마가 존재한다.

젊어서는 돈이 없고, 일 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몽땅 여행에 바칠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다.

경력의 공백도 불안하고, 연애해서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그러려면 결혼자금도 모아야 한다.

나이 들어서 갖출 걸 다 갖추고 나면, 그 땐 체력이 달려 여행이고 뭐고 노 땡쓰이다.

그래서 슬프게도 우리는 여행기를 읽거나 로드 무비를 보면서 쓰린 속을 달래며 대리만족을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좀, 질렸었다.

꿈을 이루는 사람보다는 꿈을 꾸는 사람에 가까웠던 나는

자신의 돈과 시간을 기꺼이 할애하여 꿈을 이루고, 그것을 자랑하듯 응원담을 늘어놓는 그렇고 그런 여행기에

은근한 질투를 느꼈다. 워너비는 루저들에게 늘 선망과 질투를 자아내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신선하다.

<미친 수의사 지도를 훔치다>는 긴 여행을 하고 온 자랑이나 무용담 보다는 한 남자의 '성장 스토리'에 가까웠다.

초저녁의 뉴욕 길거리가 마치 고담 시티 같았다며 두려워하고 공항에서 만난 사내에게 뉴욕까지 택시비 100달러를 '갈취' 당하는 저자의 모습은, 1년 간의 거창한 세계여행을 떠난 남자답지 않게 허술하다.

여행 초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겠노라!'며 남들 하는 여행을 모두 답습하는 것 같은 뻔한 모습을 보이는 그의 매일 매일의 일기는 마치 '초보 여행자'인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것 같아 친근하기도하다.

그러던 그가

미국 대륙을 지나 남미의 아마존을 탐험하고 트럭을 타고 아프리카를 누비면서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다.

 

이 책의 진가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꿈꾸는 자'인 우리와 다를 바 없었던 허술하기 그지없는 저자가

겁없이 멕시코 게릴라 반군의 소굴에 찾아 들어가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정글 마을에서 만난 원주민 아이에게 태권도를 가르쳐 주고

스스로를 '재키 찬'이라 부르며 유들유들한 여행을 계속해 나간다.

고소공포증이 있다며 겁에 질려 벌벌 떨면서도 빅토리아 폭포에서 번지점프를 하고,

나 못해~ 슬슬 빼다가 사막 위에서 멋지게 점프까지 해 보이며 샌드 보딩을 하고

급기야 아프리카 원주민들과 함께 공연 무대에 오른다.

 

이 남자, 뭐지?

그는 꼭 취권을 구사하는 무술 고수 같다.

헤실헤실 허술허술, 너나 나나 다를 바 없을 것 같으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숨어 있던 온갖 장기, 잡기, 재기와 재능이 튀어 나온다.

어어어, 어떻게 해야 되지? 어리버리한 것 처럼 보이면서도

수륙 양용 빠지지 않고 점프, 다이빙, 춤에 보드까지 탄다.

어느 대륙에 가든 '낯선 여행자'의 시선에서 시작했다가, 그들의 삶을 대변하는 '지역 전문가'가 된다.

그러다 책의 막바지로 치닫을 수록

그가 '꿈꾸는 자'가 아니라, '꿈을 이루는 자'였다는 걸 하나 하나 증명해 보인다.

 

이 책이 내게 특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와 다를 바 없는 '꿈꾸는 자'였던 한 남자가, '꿈을 이루는 자'로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나보다 잘난 누군가가 으스대며 경험담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나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사람이 몸으로 부딪히고 가슴으로 느끼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어느 순간 그와 동화되어 '남 얘기'가 아니라 '내 얘기'로 읽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책을 읽고 나서, 대단히 미사여구가 많거나 필력이 뛰어나지 않은 그의 글이 왜 이처럼 흥미진진하게 다가왔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마,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 죽지만 않으면 다 해보겠다는 열정, 편견 없이 모두를 친구로 받아들이는 따뜻한 성품.

사람 뿐만 아니라 동물도 자연도 배경도 친구로 보는 그의 진심 어린 마음이 그의 글을 더 빛나게 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 속 이야기 중 그가 피부병 걸린 인도의 개들에게 약을 사서 하나씩 먹이고 다녔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하고 그렇게 하루하루 연명하다 죽어가는 버려진 개들 마저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자신이 가진 달란트로 뭐라도 하나 해 주고 싶었던 마음,

그 마음이 그 자신과 그의 책을 빛나게 했던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미친 수의사, 지도를 훔치다>가 그냥 쉽고 가벼운 여행기였다면 리뷰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심한 시작에 이어 일년 후, 원대한 성숙에 이른 저자의 인적 성숙을 함께 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일 년, 너는 짧은 시간에 어떤 인격적 성숙을 할 수 있겠니?

여행만이 사람을 성숙하게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책을 읽고 나서, 너무도 간절히 세계일주를 하고 싶어졌다.

'꿈꾸는 자'가 아닌, '꿈을 이루는 자'가 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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