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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 정보라 연작소설집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4년 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래 글은 온라인 독서 플랫폼 '지식공동체 그믐'(gmeum.com)의 Beyond Bookclub(비비클럽) 2기 회원으로 참여하면서, 함께 독서를 위한 공유를 위해 썼던 각 장별로 흥미로운 내용이나 인물에 대한 짧은 소감의 글을 모은 것이다.
[문어]
책을 읽기 전 워밍업을 위해 정보라 작가님 인터뷰 기사를 읽고 유튜브 자료들을 보았는데요, 이 편을 읽으면서 "위원장"님이 정 작가님의 남편 분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고백 장면에서 '맞구나, 그렇구나' 했습니다. 위원장님과 나(정 작가님) 캐릭터가 모두 흥미로워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외계 생물체로 등장하는 대왕문어도 흥미로웠는데, 문어의 한자어 문 자가 글월 문 자인데 대학교 복도에서 출몰하니 문어인 이유가 그럴 듯해 흥미로웠습니다. 배운자들을 먹물들이라고 칭하는 비유도 생각나 재미있었고요.
[대게]
러시아 산 대게와 러시아어로 대화하는 내용이 흥미로웠습니다. 대게의 입을 통해 전해듣는 러시아의 현 상황들이 더 생생하게 다가왔고요. 왠지 앞으로는 어디 어디 산 바다 생물을을 만나게 되면 출신지의 언어로 대화하는 상상이 자동적으로 떠오를 것 같습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문어] 편의 등장인물들이 겹치고 거기에 새로이 등장하는 바다 생물인 대게와 시어머니가 부가되는 방식이 흥미로웠습니다. 이러한 방식이 앞으로 읽을 상어, 개복치 등등 다음 편의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을 더 갖게 합니다. 시기가 명절이라 더 그런지, 집에 온 낯선 손님들을 챙기시는 시어머니가 기억에 남습니다. 밥을 먹었는지 챙기시는 건, 역시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불리시는 분들의 전매특허일까요.
[상어]
근자에 사회 전체의 화두이기도 하고, 명절이었기도 하고, 제가 휴일 기간에 <소풍>이라는 영화를 보았기도 해서인지, '돌봄'이라는 주제어가 읽는 내내 계속 떠올랐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를 생각하면 저에게도 중요한 주제라서 더 다가오기도 했고요. 가족들 간의 돌봄을 넘어, 죽도시장 사람들과 전동스쿠터 군단의 서로 돌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거대한 수족관에 갇혀있던 외계 생물인 문어를 비롯하여 상어, 대게, 조개 등 바다 생물들이 궁금해지네요. 다들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요? 아니면, 검은 덩어리들에 의해 또 다른 곳에 갇히게 되었을까요?
[개복치]
이 편을 읽기 직전 인터넷 검색창에서 이미지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개복치 이름은 들어본 듯한데 생김새는 몰랐거든요. '신기하고 재미있게 생겼구나' 생각하며 읽는데, "개복치 꼬리 부근에서 소리없이 조그만 회갈색 잠수함이 솟아올랐다."(170쪽)라는 묘사를 보고 '그럴싸하다!'라며 맞장구를 치게 되더군요. 선우가 바닷 속 모험에서 "말이 엄청 많고 다리 한쪽이 없는" 대게를 만나 기뻤습니다. 그 대게가 선우의 작은엄마에게 안부인사를 전하는 걸 보니, 분명 예브게니임에 틀림없었기 때문에, 예브게니의 안부가 궁금했는데 '다행이다!'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선우가 검은 정장 사람을 만나고, 예브게니를 만나고 하는 걸 보니, 결국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생각하게 되어 흥미로웠습니다. 그렇다면 선우의 하얀 인형을 찾아준 "빨판 상어"는 [상어] 편의 그 "루비처럼 붉은" 그 상어였을까요?
[해파리]
첫 줄에서부터 언급되는 "죽음"에 대해, 죽음과 삶의 뫼비우스 띠 같은 관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하늘에서 죽음이 꽃처럼, 비단처럼, 별의 장막처럼 쏟아져 내렸다"는 묘사가 과연 어떤 이미지일까 상상하려 했지만 잘 되지 않네요. 왜 해파리가 죽음과 연관이 될까 읽는 내내 수수께끼 같다가, 해파리성운에 대해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본 후 납득이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해파리성운에 대해 이번에 처음 알게 되어 이미지 검색도 해보았는데요, 해파리성운이 IC443이라는 것과 그것이 초신성의 잔해이며, 초신성이란 태양보다 10배 이상 큰 별이 수명을 다한 뒤 마지막 순간에 폭발하는 현상이라고 하니, 해파리와 죽음의 연관됨이 이해가 갔습니다. 연작소설을 읽으면서 비욘드 님의 말씀처럼 포항에 대해 궁금증이 커지기도 하고, 제가 알지 못했던 돔배기, 개복치, 해파리성운에 대해 알아가는 재미도 있습니다. 언젠가 포항의 죽도시장도, 송도해수욕장도 가보고 싶네요~
[고래]
이 편은 저를 두 번 놀라게 했는데요, 먼저 검은 덩어리가 다른 행성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놀랐고, 결국 검은 덩어리가 고래가 아닌가라는 추측을 하게 되어 놀랐습니다. 이러한 놀람과 더불어, 해파리의 신호를 감지할 수 있는 화자인 "나"의 능력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나"가 작가, 즉 예술가이기 때문에 그런 능력을 갖게 된 것일까요? 예술가란 모름지기 세계를 촘촘한 촉수로 감각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요. 이 책의 마지막 이야기에 다다르고 보니, 결국 화자들이 지키고자 기어이 지켜내고자 하는 지구 즉 이 세계에 대한 그들의 애틋한 '사랑'이 저에게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들이 항복하지 않고 저항하는 것은 모두 이 사랑의 표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이 모든 이야기들이 "다들 어딘가 손상되고 어딘가 완벽하지 못한" "현실의 인간"인 독자들에게도 사랑을 표현해 보기를 초대하는 초대장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구를, 이 세계를 구하는(구할 수 있는) 것은 영웅호걸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들일 수 있으니까요. 초대장을 받은 저도 제 일상에서 저의 방식으로 항복하지 않고 저항하는 연습을 실천하겠습니다. 사랑을 담아서 말이죠.
[작가의 말]
이 글에서는 각각의 이야기들이 창조된 배경과 전체 맥락을 알 수 있어, 이 연작소설의 지도를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저도 비정규직 종사자로서의 고충, 오늘도 지속되고 있는 전쟁으로 인한 평화에 대한 환멸 그리고 기후위기에 대한 염려에 상당히 짖눌려 있기 때문에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제가 처한 상황으로 인해 느끼고 있던 무기력에서 조금은 벗어나 작가의 다짐을 따라 외쳐봅니다. "항복하면 죽는다. 우리는 다 같이 살아야 한다.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