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이다. 흔해빠진 성장소설이나 연애소설에 질릴대로 질렸을 때, 그래서 독특한-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책을 원할 때 이 작가가 눈에 들어왔다.  

중학교 1학년인가 2학년 때, 도덕선생님이 수업 도중에 흘리듯이 말한 [타나토노트]라는 책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얼마 후에 도서관으로 가서 즉시 대출했고, 읽으면서 빠져들었다. 타나토노트를 다 읽고나서는 다른 소설인 [개미]를 빌려 읽었다. [개미]는 학교도서관에 3권까지밖에 없었는지, 아니면 항상 대출중이었던 건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3권까지밖에 없었고, 그래서 난 3권이 끝인줄 알았다. 4, 5권이 더 있다는 사실은 그로부터 1년쯤 지났을 때였다. 그 존재를 알고도 아직 다 읽지는 않았다. 왜인지 책은 한 번 놓으면 다시 읽기 힘들다. [개미]도 그런 이유때문에 미루고 미뤄진 것 같다. 그래도 나중에 읽어볼 생각이다. 

[타나토노트]와 [개미]를 읽은 후에 나에게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는 작가는 '믿을만한 작가'가 되었다. 내가 말하는 '믿을만한 작가'란, '이 작가의 작품만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라는 믿음이 생긴 작가다. 그래서 그의 모든 작품을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잘 기억이나지 않지만 아마 그 다음으로 읽었던 작품은 [파피용]이었다. 오랜만에 생긴 도서상품권으로 책을 사러 서점에 들렀을 때, 신간코너에 눈에 띄는 책이 있었다. 흑백의 바탕에 눈길을 끄는 파란나비가 있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책. 그 책을 살펴본지 1분만에 구입하기로 마음먹었다. 순전히 작가의 이름이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는 이유에서였다. 

[파피용]역시 빠질만한 독특한 이야기였다. 늘 그랬듯이 읽으면서 그의 독특한 발상에 놀랐다. 지구에서 살기 싫은 인간들이 지구를 떠난다는 이야기는, 나의 눈길을 끄는데 충분했다. 

그 다음은 [뇌]였다. 솔직히 한 70페이지 가량 읽다가 놓은 책이다. 나중에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그리고 [신]. 베르나르식 세계관의 완성이라 불리는 이 책은 과연, 그의 세계관을 완벽하게 옮겨놓은 책이었다. 판타지라기에는 지독하게 현실적이고(물론 판타지도 현실적이지만), 철학의 이야기라기에는 너무나 환상적인, 그래서 장르가 구분 안돼는 대표적인 책이다. 나는 철학적인 이야기로 구분하고 싶다. 이 작가가 지금 인간세상을 비꼬고 있다는 생각은 한참 뒷부분에 가서야 확인되었다. 나는 책의 주제라던가 작가의 의도파악을 잘 못하는 편이다. 그런 나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비꼰 부분이 있었다. 그 표현이 -정확히는 아니지만-기억에 남는다. "구두가 악어로 돌아갔다."였나. 자연스러운 문장들의 행렬을 부드럽게 읽고 있던터라, 그 문장을 읽었을 때 약간 충격받았다. 그리고 감탄했었다.  

읽으며 중간에 "어?"했던 부분도 있다. 바로 주인공의 한국에 관한 이야기였다. 주인공은 한국을 좋아해서 서울과 부산에 방문한 적이 있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이 작가의 말일 거라고 생각했다(맞는 것 같다). 그리고 그는 일본에서 사는 한국인들의 어려움을 말하며, 일제강점기에 대해서 언급했다. 많은 나라들이 일제강점기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는 책을 통해서 그것에 대해 알렸다.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 그가. 과언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가 정부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낸 것이 아닌가 싶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은 엄청나게 팔렸고, 세계각국의 사람들에 의해 읽혔다. 그 짧은 몇페이지는 쉽게 잊혀질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의 뇌리에 남을 지도 모른다. 그것을 알려서, 아니 알게되서 무엇을 어쩔 수 있냐라는 질문이 있다면 나는 대답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신]을 읽는 한국독자들에게 큰 선물을 한 것임은 틀림없다. 나처럼 한국과 멀리 떨어진 프랑스의 한 작가가 한국의 아픔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받은 사람도 있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감동받았고, 그를 더 좋아하는 계기가 되었다.

[신]의 결말부분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허무하다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오만한 베르나르식 표현이라는 글도 봤다. 나는 만족했다. 그는 작가로서 독자들에게 최고의 선물을 준 것이라는 평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 평이 내 생각과 가장 유사하다. 마지막 줄을 읽었을 때, 허무하기보다는 찬탄이 나왔다. 정말 몰입하면서 읽어서 가끔 다 읽고났을 때 먹먹한 기분이 드는 글이 있는데 [신]이 그러했다. 많은 독자가 그의 소설중 [신]을 가장 좋게 평가하는데, 나 역시 그렇다. 

[나무]는 [신]다음으로 좋아하는 그의 소설이다. [나무]는 그의 단편집인데, [신]처럼 길고 무겁지 않아 가볍게 읽기 좋다. 물론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절대 가볍지 않지만 말이다. 

[나무]의 한 단편에서 한국여자가 등장해 날 당황시켰다. 그 전에 인터넷을 떠돌아다니다 읽은 어떤 글 때문이다. 그 글에선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한국을 좋아하며, 그 이유는 자신의 문학을 처음으로 높이 평가해준 나라라서 라고 했다. 출저가 불분명한 글이라 신빙성이 없었는데, 얼마 후에 읽은 인터넷 신문기사를 보고 신빙성을 갖게 되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내한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자국(프랑스)보다 한국에서 더 많이 사랑해주시는 것 같다, 차기작 주인공은 한국인 등등의 기사를 읽었을 때 정말 이 사람이 한국을 좋아한다는 확신을 갖게되었다. 그래서인지 베르나르의 소설에는 가끔 '한국'이라는 단어가 보인다.

어쨌든 [나무]는 기억에 남는 단편이 많은 단편집이다. 제목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노인에 관한것, 애완사자에 관한 것, 전체주의 등등 몇개의 단편은 작가가 드러내려 하는 주제가 명확해서 더더욱 기억에 남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은 주제가 명확하고 단순해서 좋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단순하게 생각하면 보인다, 주제를 잘 찾지 못하는 나도 몇개는 찾을 수 있을 정도다. [나무]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단편은 진주에 관한 것이었다. 제목이 '냄새'였나. 그 비슷한 것이었던 것 같은데, 그 단편은 한동안 날 충격속에 빠트렸다. 홍보문구인가 했던 것에서 '허를 찌르는 반전'이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말 그대로였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에 한 번 더 감탄하게 만든 단편이었다. 

[파라다이스]역시 단편집이다. 총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단편집은 내가 가장 최근에 읽은 그의 작품이다. 파라다이스도 그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독특한 관점과 발상으로 읽는 날 행복하게 해준 작품이다. 이 책을 읽고나니 평소에는 당연하게, 평범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다르게 보였다. 왜 이렇게 세상에는 '추천'이라는 말이 많이 붙은지 처음으로 의문을 가지게 만들어준 책이다.  

위에서 언급한 '차기작의 주인공은 한국인'이라는 기사가 가리키고 있던 책이 나왔다. [카산드라의 거울] 예언에 관한 책이라는데 아직 읽지 못했다. 책을 다 읽기 전까진 어떠한 스포일러나 평가도 읽지 않는 나라서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어떤 서평도 볼 생각이 없다. 돈이 없는 학생이라 도서관에 책이 들어오면 대출해서 읽을 생각이다. 

내가 아직 읽지 못한 그의 책이 너무 많다. 덜읽은 [개미] 4, 5권, [뇌]. 읽고싶은 [아버지들의 아버지]등등, 그는 집필한 책이 많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그의 끊임없는 상상력을 보여주며 책을 쓸 것이라고 믿는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다 읽고나서 든 -너무 재밌는 책이 끝났다는- 슬픔을 그의 글에서는 영원히 알지 못하게 되길 바란다.  

2011.01.01 

W. Soph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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