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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이세요? ㅣ 창비청소년문학 133
표명희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평점 :
이 책은 총 4편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작품들은 청소년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제를 유쾌하게, 때론 무겁게 드러낸다.
<딸꾹질>은 2022 월드컵 당시를 9살 남자 아이의 시선에서 색다르게 그려낸 소설이다. 나는 2002 월드컵에 대한 기억이 없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의 목적으로, 하나의 간절한 마음으로 묶어 주는 스포츠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체육대회에서 우리 학급이 줄다리기 1등만 해도 너무 신나고 흥분되는데, 월드컵 4강 진출이라니 얼마나 떨리고 흥분됐을까.
이변. 강자와 약자가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는 세상에서 약자의 질주와 활약은 기존의 질서를 깨는 짜릿함과 통쾌함을 선사한다. 축구 약체였던 대한민국이 이탈리아와 같은 축구 강국을 이기고 4강에 오른 것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과 가능성을 느낄 수 있었던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세상은 이런 이변이 있기에 재미가 있고, 누구나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만하다.
<당근이세요?>는 경기도 외곽 신도시로 이사를 가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주인공 나라의 시선에서 하루를 그린 이야기이다. 나라의 소중한 삼총사 친구들 보라와 나영이. 이 세 소녀들은 우리 사회가 흔히 부르는 '정상 가족'이라는 형태에서 벗어나 있다. 각자의 이유와 고통과 행복으로 삶을 멋지게 살아내고 있는 소녀들을 나라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며 응원하게 되는 소설이다. 다만, 제목에 나타난 당근거래라는 소재가 신선해 기대가 되었던 편인데, 당근거래와 관련한 내용은 크게 다루지 않은 점은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오월의 생일 케이크>는 민주화 운동 이후 내상을 입은 큰아빠를 바라보는 민서의 시선에서 전개된다. 광주에서 군생활을 했던 민서의 큰아빠는 내면의 상처를 안고 복귀한다. 가족들은 큰아빠가 시간이 지나면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지만, 큰아빠에게 일어난 일은 그렇게 쉽게 잊혀질 일이 아니었나보다. 대체 큰아빠는 광주에서 무엇을 목격했을까. 이 점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오히려 사건의 비극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지점이다.
마지막으로 <개를 보내다>라는 작품은 진서가 반려견 진주를 만나 떠나보내기까지의 시간이 담긴 짧은 소설이다. 이 제목을 보자마자 우리집 고양이가 생각났다. 우리 집에 온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어느새 우리의 전부가 되어 버린 나의 귀여운 고양이. 피곤한 아침에 기분 좋게 눈을 뜨게 해주는 골골송, 퇴근하고 집에 오면 도어락 누르는 소리에 중문 앞에 마중나와 있는 애교쟁이 고양이. 새벽마다 꼭 우리를 깨우고 잔뜩 쓰다듬을 받아야지만 다시 잠을 자는 아기 고양이. 이미 내 딸이 되어 버린 사랑하는 반려묘를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
펫로스증후군을 어떻게 극복하냐는 질문에 누군가가 그건 극복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마음에 품고 그리워하고 즐거웠던 추억을 양분삼아 또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우리 고양이에게 자주 묻는다. 우리의 가족이 되어서 행복하냐고. 나중에 품이가 고양이별로 여행을 떠나는 날, 우리의 가족이 되어 행복했다고 생각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