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우리 술 - 전통과 애환이 빚은 한국 술 이야기
김승호 지음 / 깊은샘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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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술에 관해 말한 책이다. 하지만 책의 성격은 단순한 술 이야기가 아니라 술을 매개로 한 인문 교양서에 가깝다. 저자는 신화와 경전, 고고학과 옛 문헌, 시와 미술 등 다방면에 걸친 풍부한 인문학적 주유와 탐색을 바탕으로 술의 탄생과 역사에 대해 얘기한다. 저자는 진지하고 엄숙해서 인류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술을 즐겼다는, 어찌 보면 증명이 필요 없어 보이는 사실을 말할 때조차도 문헌 증거를 제시한다. 부여에서 제천의례인 '영고'를 행할 때 '음식가무'를 즐겼다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기록을 간접 인용하면서 '먹는 행위(식)'보다 '마시는 행위(음)'을 앞세웠다는 점에 주목하고, 인류 최초의 서사시 <길가메시>에서 야만인 엔키두를 문명의 세계로 유도하기 위해 '맥주를 마시게 하고' 음식을 먹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다. 술에 관한 담론을 펼치면서 저자가 시종 견지하는 이런 태도는 300쪽 정도에 불과한 이 책에 예사롭지 않은 무게와 깊이를 부여한다.

2.
"술은 시간과 정성이 빚어내는 예술품이다."

제1편 제1장을 여는 첫 문장이다. 내가 보기에 책 전체에서 술을 대하는 저자의 애정과 태도가 가장 잘 압축돼 있는 부분이 바로 이 문장이다.

저자는 제1편 제1장에서 술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추적한다. 결론은, 술의 시작은 인간의 '발명'이 아니라 자연에 있는 것의 우연한 '발견'이었다는 것. 그리고 이후 인류가 일궈 온 술의 역사는 자연에서 발효된 술을 모방하며 발전해 온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가 만든 최초의 술은 무엇이었을까?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꿀을 발효시킨 벌꿀술일 가능성이 크다. 저자는 동굴 벽화와 암벽화 같은 고고학 자료, 종교 경전과 신화의 내용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 물론 그 근거들은 다 독자의 관심을 끌 만한 것들이다. 하지만 내 흥미를 가장 자극한 것은 저자가 구조주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의 견해를 간접 인용한 다음 대목이다.

"벌꿀술을 인류가 처음 만든 알코올음료라고 말한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벌꿀술 제조 과정을 문명과 비문명을 가르는 기준점으로 생각했다. 사람의 손으로 유사한 환경을 만들어 직접 발효에 개입하는 순간, 문명이 시작되었다고 레비-스트로스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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