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를 사랑한 여우 같이 보는 그림책 5
조지 애덤스 글, 셀리나 영 그림, 김선희 옮김 / 같이보는책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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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 동화책을 읽는다.
어릴 적에 동화책을 몹시 좋아했고 커서도 좋았다.
아빠는 좀 크고 나서는 동화책만 읽는다고 혼냈다. 그래서 아주 어른이 되고나서 아빠가 내 독서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되어서야 동화를 다시 읽게 되었다.

책을 고를 때에는 그림을 제일 먼저 보고, 다음으로는 내용을 본다.
뭐가 등장하는지가 제일 중요한데 사람보다는 동물책을 더 선호한다.
병아리를 주제로 검색하니 <병아리를 사랑한 여우>가 나왔다. 고양이가 등장한다면 바로 구매했을텐데 여우라니, 내용을 살펴보고도 고민되었다. 빤한 결말일텐데 싶었다.

여우는 강자고 육식이고 병아리를 사랑하지 않는데 동화에선 가능하다. 병아리는 작고 겁많고 여우를 따르지 않는데 동화에선 이것도 된다. 만능이다. 잠시 장미칼을 떠올렸다.

동화적 상상력은 마치 장미칼처럼 무엇이든 가능하게 한다.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과 사람들의 통념과 고정관념과 고집들이 모두 허물어져 내린다. 싹뚝 잘려나간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읽을 때 가장 좋다.

아이들이 어리던 크던 당신이 어리던 어른이던 꼬부랑 노인이던 괜찮다. 동화는 모두 허용할 수 있다. 그리고 생각하는만큼 깊어진다. 병아리나 여우나 다른 여우나 다른 병아리와 닭과 농장과 잔디와 모든 것에 이입하고 생각하고 골몰할 때에 '깊이'가 생긴다. 그래서 동화의 가능성은 무궁하고 무진하다.

키우는 무언가가 있다면 모두 동화책을 읽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것이 식물이던 동물이던 아이던 어른이던 생각이던 신념이던, 모두에 유익하다. 내가 동화를 읽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유고 <병아리를 사랑한 여우>가 존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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