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과 21세기 - 영실평원의 독사들
김상태 지음 / 글로벌콘텐츠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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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은 <고조선과 21세기>이다. 제목이 거창하고 생뚱맞다. 고조선과 21세기가 무슨 상관인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제목을 다시 보면 수긍이 간다. 너무나 익숙한 나라, 그러나 너무 멀어 안개에 가린 것처럼 희미하고 아스라한 나라 고조선과, 우리의 일상이 살아 숨 쉬는 지금 여기, 21세기가 함께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잘 쓴 책이다. 고조선 연구를 둘러싼 두터운 흑막과 이 흑막을 뚫고 결연히 솟아 있는 신채호, 정인보, 윤내현, 복기대, 신용하 등의 가슴 뛰는 저작이 한국 현대사, 국제 정치와 연관되어 종횡무진 서술되어 있다. 얽힌 사정은 복잡하지만 서술은 명료하다. 책 날개에 소개되어 있는 저자의 저술목록으로 보아 이 명료한 서술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걸어온 길이 결코 짧지 않다. 이 책의 내용에 누군가는 찬성하고, 누군가는 반대하겠지만 책에서 배어 나오는 저자의 진심과 노고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마음이 동하여 리뷰를 쓰는 마당이니 전체적인 내용을 요약하거나 책의 인상적인 대목을 이야기하는 것도 방법이겠으나, 내용을 요약하자니 힘에 부치고, 인상적인 대목을 이야기하자니 사실상 전체 내용을 요약해야 할 판이다. 그냥 책을 읽어 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강렬하고 신선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하나만 이야기한다면 고조선 연구를 둘러싼 소동에서 시대의 변화와 흐름을 읽어내는 저자의 시각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환단고기>라는 책이 왜 그 시기에 그렇게 조명을 받게 되었는지, 진보사학은 주류 고대사학계와 어떻게 야합했는지, 그들의 궤적이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등에 대한 저자의 통찰력이 놀랍다.


덤으로 얻은 것은 윤내현의 <고조선 연구><한국 열국사 연구>를 구입해 책장에 꽂아 둔 것이다. 조금씩 읽고 있는데 읽기 쉬운 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난해한 책은 아니다. 속도가 느릴 뿐이며, 이 느린 속도에 대한 보답은 충분히 지불하는 책이다. 아직 다 읽지 못했지만 고대사를 연구한다는 것이 어떤 작업을 하는 것인지, 고조선과 연관된 학계의 사정이 왜 그렇게 복마전인지, 고조선이 흐릿할 때 조선 시대 이전의 역사도 흐릿하게 이야기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사정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이 점에서도 저자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저자의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윤내현 선생님의 책을 읽을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을 듯하다.


저자의 말처럼 영실평원의 독사들이 사라지고 푸른 초원이 열리는 날이 올지는 모르겠다. 언제나 그러하듯 그런 날이 오기를 기원하고 기다리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는 듯하다. 그러나 그런 날을 상상하며 즐거워할 수는 있으리라. 그 날이 온다면 고조선의 영토를 둘러싼 쟁점이 잘 정리된 지도를 하나 가지고 싶다. 책을 읽으며 이런저런 지도를 찾아봤는데 중구난방이라 머리가 아팠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한 국가의 연원에 해당하는 시기에 대한 제대로 된 지도 하나 없다는 건 어이없고 슬픈 일이다. 이 소박한 상식을 사무치게 느끼게 해준 저자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며, 저자의 건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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