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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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름다운 소설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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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도 디자인이 될까요? - 부정에서 긍정으로, 내 감정 내 마음대로
고선영 지음 / 다른상상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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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도 디자인이 될까요?

감정이란 무엇일까? 감정이라는 것은 그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나를 휘두르고 내 마음을 헤쳐놓는다. 내 것이면서도 도대체 내것 같지 않은 감정때문에 나는 오늘도 감정의 노예가 되었다.

내 것 같지 않은 감정을 파악하기 위해 감정에 관한 일명 전문가가 쓴 책을 여럿 읽고 내 감정에 대해 인문학적 소양을 갖췄다고 생각했는데, 아 이런,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하지, 난감해졌던 순간이 왔다. 내 발목을 잡고 땅 밑으로 잡아당기는 것 같은 부정적 감정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부정적 감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감정도 디자인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책으로, 부정적 감정을 긍정적 감정으로 개선하고 긍정적 정서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구성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전반부는 저자가 고통 가운데에서 감정 디자인 방법론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그림 에세이고, 후반부는 작가의 방법론을 독자가 따라할 수 있는 안내서로 구성되어있다. 얼핏 보면 너무 단순한 방법들을 소개하는 것 같지만, 일단 속는 셈 치고 책에서 하라는 대로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만다. 그리고 내가 그리고 있던 선에서 손을 뗐을 때, 내가 이전과 다른 상태에 있음을 깨닫는다. 아까 분명 화났던 것 같은데, 살짝 멍하면서 기분 좋은 상태-알파파가 나온다는 그 편안한 상태가 되어 있다.

이 책에서 주는 따뜻한 색감, 정서가 좋다. 저자가 자신의 고통을 해결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시도해보고 성공했던 방법들을 소개해주려한 것이, 한 사람의 성장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힘들어하는 누군가도 이 책을 통해 자신만의 따뜻한 색감을 찾을 수 있다면, 이 책은 성공한 게 아닐까?

이 책을 두고 고민하는 분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이 책을 감정 디자인 입문서, 감정 관리 실용서 정도로 생각하셨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감정에 관련된 이론서를 이미 섭렵해본 분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내 감정 디자인을 실행해봤으면 좋겠다. 가볍게 접근하실 분에게도 물론 좋다. 이 책의 마지막은 내가 완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독자마다 나만의 고유한 책이 될 것이다.

아마 당신이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즈음에는 자신에 대해서 깊은 이해를 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 충만함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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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앨저넌에게 꽃을 - 운명을 같이 했던 너
대니얼 키스 지음, 구자언 옮김 / 황금부엉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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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ver.me/57BnlnIm

1.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어.

이 소설은 찰리 고든이라는 32세의 나이지만 7세의 지능을 가진 남자의 기록으로 시작한다. 똑똑해지고 싶다는 열망으로 지능 향상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소설 전반은 이 프로젝트로 인해 변화되는 찰리의 어조와 생각의 변화를 통해 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을 전달하고 있다. 처음에는 맞춤법도 틀리고 생각의 범위도 현재에 머물고 타인의 의도도 잘 파악하지 못하는 걸로 나오지만, 소설 중반부터는 엄청난 천재가 되어 있어서 찰리의 고차원적인 생각을 독자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다.

찰리보다 먼저 임상 실험을 거친 앨저넌이라는 쥐는 찰리가 걷게 될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소설 초기에는 똑똑한 앨저넌과의 미로 게임에서 찰리는 계속 지는 걸로 나온다. 어떤 어려운 과제에서도 앨저넌은 해답을 찾아내고야 만다. 그리고 앨저넌에게 발생한 부작용으로 찰리는 자신의 어두운 미래를 직감하며 준비한다. 과연 찰리는 앨저넌과 같은 미래를 맞닥뜨리지 않을 수 있을까?

뇌 수술을 거치고 난 뒤 찰리는 서서히 변화하는 듯하다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화기 시작한다. 맞춤법을 새로 배우자마자 흡습하여 글은 자신의 말 하고자를 정확하게 전달한다. 학습을 위해 책을 읽으면 그대로 흡수해버리고 점차 사고의 폭도 넓어져, 단 수개월 만에 대학교수들도 피할 정도의 천재가 된다. 그리고 지능이 높아지면서 겪게 되는 변화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뇌 수술을 받기 전 지능이 낮았던 찰리의 과거를 자꾸 꿈속에서 만나게 되고, 자신을 바꾸려 했다가 동생이 태어난 후 방치해버린 엄마의 히스테리컬 한 대응, 현실적으로 자신을 받아들였던 아버지, 자신을 싫어했던 어린 여동생을 기억해내게 된다. 과거의 기억은 자꾸 찰리를 찾아오고 이제는 명석해진 찰리는 예전의 찰리와 자신이 같은 존재가 아닌 분리된 자아로 여긴다

뇌 수술 전 찰리는 작은 빵집에서 일하면서 그곳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뇌 수술 후 빵집 동료들이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전에 자신과 함께 있었던 이유가 자신들의 자신감을 높여주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제 빠른 속도로 명석해지는 찰리 곁에서 자신들의 무식함이 드러날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 찰리는 이전에는 무식하다는 이유로, 이제는 똑똑하다는 이유로 사람들 사이에서 배제되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의 우리보다 뛰어나다면 더 행복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지금이 아닌 더 나은 내가 된다면 좋을 거라고. 그러나 고 지능화로 찰리에게 다가온 시련을 보면 지능-행복의 관계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찰리를 이해하기 위한 예를 들자면, 초등학교 시절 하굣길에 친구들과 먹던 설탕을 열에 녹여 먹는 '뽑기'가 당시 나에게 주었던 행복감과 지금 그 '뽑기'를 먹을 때의 행복감과는 차이가 상당할 것이다. 추억을 상기할 수 있는 점을 배제하면, 이제 '뽑기' 가 주는 달콤한 맛은 나에게 별로 의미가 없다.

2. 아이큐가 정말 내 지능을 측정한다고?

아이큐는 대체 무엇일까?

한국 사람들도 아이큐 몇인지 얘기할 때가 종종 있는데, 보통 초등학교에서 자신의 어릴 적 아이큐 검사 받았던 것을 떠올리며 그때 받았던 점수를 말한다. 난 학교에서 봤던 점수는 기억나지 않고, 내가 이후에 학습지에서 옵션으로 주었던 지능 검사 결과가 기억나는데, 상당히 높았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내 기억에 왜곡이 있을지도 모르고, 그때 봤던 지능 검사들에 대해 조금 의심을 가지고 있다. 내 친구 중에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친구는 아닌데, 그 친구가 아이큐로는 우리 학교 전교 1등이 되기도 했기 때문에 지능 검사가 과연 그 사람의 수행 결과에 기여하는 바가 얼마나 되는지 의심을 가지고 있다.

현대의 지능검사와 유사한 최초의 검사는 19세기 후반 프랑스 심리학자 알프레드 비네(Alfred Binet)이 고안해내었다. 당시 프랑스 정부가 모든 아동들에게 의무교육을 실시하면서 교사들이 아이들의 학습 차에 대처할 수 있도록 지적으로 지체가 심해 정규교육을 받기 어려운 아동을 가려낼 수 있는 검사를 만들어야 했다. 이후,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루이스 터만(Lewis Terman)이 비네 검사를 미국 아동들에게 맞도록 수정하여 스탠퍼드-비네 검사를 만들었다. 터만은 비네의 정신 연령 개념을 존속했는데, 이는 신체 연령에 대한 정신 연령의 비율로 지능을 평가하는 것이다. (터만은 터만 연구로도 유명한 학자인데, 터만 연구는 IQ 상위 1%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종단 연구로, 사회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할 거라 기대한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 그렇지 못한 결과를 얻게 되면서, 지능 검사의 허상에 대해 깨닫게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능지수(IQ) = 정신 연령 /신체 연령 × 100

100이란 수치는 정신연령이 신체 연령과 동일할 때 지능지수가 100이 되도록 곱해지는 수치다. 더 쉽게 말하자면, 10살의 아이가 정신 연령 또한 10살이라면 아이큐 100이 나올 것이고, 그 이상의 정신 연령을 가졌다면 100 이상의 아이큐가 나올 것이다.

현재까지 심리학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지능 검사 도구로는, 웩슬러 지능 검사가 있다. 한국에도 K-WAIS(청소년·성인용), K-WISC(아동용), K-WPPSI(유아용) 등의 이름으로 나와있다. 웩슬러 지능검사는 이전 스탠포드-비네 검사가 언어적 능력을 측정하는 데에 비중이 큰 것을 비판해, 언어성 검사와 함께 동작성 검사로 구성되어 측정한다. 치매, 우울장애, 뇌 수술 등 환자의 병전 지능을 측정할 수 있어, 병으로 인한 기능장애의 정도를 양적으로 알 수 있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언어성 점수 차와 동작성 점수 차의 크기, 소검사 간의 상호적인 관계와 함께 검사 참여자 개인의 성격적 측면과 정신역동, 심리 내적인 갈등, 정신 병리를 파악할 수 있게 한다.

현재 한국에서 K-WAIS-Ⅳ와 K-WISC-Ⅳ가 가장 최신 판으로 사용되고 있다.

3. 나에게 중요한 건 뭐지?

자신을 여전히 실험 대상으로 바라보며 인격적인 대우를 하지 않는 니머 교수에게 찰리는 외친다. 찰리의 이 발언이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 책이 출간한 1959년 당시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생의학이 눈부신 속도로 발달했으나 과학자들이 현재와 같이 연구 대상에 대한 윤리 의식을 갖추지 못했던 시기다. 또한, 이 소설이 나온 미국에서는 당시 지능검사는 세계 대전에 참전할 군인들을 선발하는 용도로 쓰였고, 세계 대전 이후에는 미국으로의 이민을 희망하며 밀려드는 이민자들을 선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 지능 검사를 만능처럼 사용하며, 인간을 재단할 수 있다고 믿던 때였다. 대니얼 키스는 그 시대적 상황 속에서 찰리의 목소리로, 지능과 교육이 인간에 대한 애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가치로서 상실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현재 많은 사람들은 다중 지능이나 창의력, EQ(감성 지능) 등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이전 지능보다 더 폭넓게 지능을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사람이 반드시 뛰어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뛰어난 것이 그 사람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아니며,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다시피 행복을 전해주지도 않는다. 우리의 행복은 아주 사소한 감사 인사나 친구에게 보내는 미소들에서 찾을 수 있다. 더 나은 내가 되지 못한 것에 절망한 사람이 있다면, 『앨저넌에게 꽃을』 일독을 권한다. 우리에게 꽃을 전해주는 사람 하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삶은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꽃을 사줄 사람이 없으면, 꽃을 살 돈이라도 마련하길.)

저자 대니얼 키스(Daniel Keyes)는 1927년 생으로, 브루클린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영미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 전미SF판타지작가협회(SFWA)에서 수여하는 명예공로상을 받았으며, 현재 오하이오 주립대학 명예교수로 있다. 그의 대표작 『앨저넌에게 꽃을』은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잇따라 수상하며 장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 후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영문학과 창작을 가르치는 한편, 여러 정신과 의사와 함께 다중인격 환자를 직접 관찰하며 다중인격장애(정식 명칭: 해리성정체장애)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경험을 토대로, 후에 다중인격장애로 무죄를 선고 받은 빌리 밀리건의 실화를 극화한 『빌리 밀리건』을 출간했다. 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장기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에드거 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출처 : 네이버 해외저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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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앨저넌에게 꽃을 - 운명을 같이 했던 너
대니얼 키스 지음, 구자언 옮김 / 황금부엉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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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어.

이 소설은 찰리 고든이라는 32세의 나이지만 7세의 지능을 가진 남자의 기록으로 시작한다. 똑똑해지고 싶다는 열망으로 지능 향상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소설 전반은 이 프로젝트로 인해 변화되는 찰리의 어조와 생각의 변화를 통해 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을 전달하고 있다. 처음에는 맞춤법도 틀리고 생각의 범위도 현재에 머물고 타인의 의도도 잘 파악하지 못하는 걸로 나오지만, 소설 중반부터는 엄청난 천재가 되어 있어서 찰리의 고차원적인 생각을 독자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다.

찰리보다 먼저 임상 실험을 거친 앨저넌이라는 쥐는 찰리가 걷게 될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소설 초기에는 똑똑한 앨저넌과의 미로 게임에서 찰리는 계속 지는 걸로 나온다. 어떤 어려운 과제에서도 앨저넌은 해답을 찾아내고야 만다. 그리고 앨저넌에게 발생한 부작용으로 찰리는 자신의 어두운 미래를 직감하며 준비한다. 과연 찰리는 앨저넌과 같은 미래를 맞닥뜨리지 않을 수 있을까?

뇌 수술을 거치고 난 뒤 찰리는 서서히 변화하는 듯하다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화기 시작한다. 맞춤법을 새로 배우자마자 흡습하여 글은 자신의 말 하고자를 정확하게 전달한다. 학습을 위해 책을 읽으면 그대로 흡수해버리고 점차 사고의 폭도 넓어져, 단 수개월 만에 대학교수들도 피할 정도의 천재가 된다. 그리고 지능이 높아지면서 겪게 되는 변화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뇌 수술을 받기 전 지능이 낮았던 찰리의 과거를 자꾸 꿈속에서 만나게 되고, 자신을 바꾸려 했다가 동생이 태어난 후 방치해버린 엄마의 히스테리컬 한 대응, 현실적으로 자신을 받아들였던 아버지, 자신을 싫어했던 어린 여동생을 기억해내게 된다. 과거의 기억은 자꾸 찰리를 찾아오고 이제는 명석해진 찰리는 예전의 찰리와 자신이 같은 존재가 아닌 분리된 자아로 여긴다

뇌 수술 전 찰리는 작은 빵집에서 일하면서 그곳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뇌 수술 후 빵집 동료들이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전에 자신과 함께 있었던 이유가 자신들의 자신감을 높여주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제 빠른 속도로 명석해지는 찰리 곁에서 자신들의 무식함이 드러날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 찰리는 이전에는 무식하다는 이유로, 이제는 똑똑하다는 이유로 사람들 사이에서 배제되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의 우리보다 뛰어나다면 더 행복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지금이 아닌 더 나은 내가 된다면 좋을 거라고. 그러나 고 지능화로 찰리에게 다가온 시련을 보면 지능-행복의 관계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찰리를 이해하기 위한 예를 들자면, 초등학교 시절 하굣길에 친구들과 먹던 설탕을 열에 녹여 먹는 '뽑기'가 당시 나에게 주었던 행복감과 지금 그 '뽑기'를 먹을 때의 행복감과는 차이가 상당할 것이다. 추억을 상기할 수 있는 점을 배제하면, 이제 '뽑기' 가 주는 달콤한 맛은 나에게 별로 의미가 없다.

2. 아이큐가 정말 내 지능을 측정한다고?

아이큐는 대체 무엇일까?

한국 사람들도 아이큐 몇인지 얘기할 때가 종종 있는데, 보통 초등학교에서 자신의 어릴 적 아이큐 검사 받았던 것을 떠올리며 그때 받았던 점수를 말한다. 난 학교에서 봤던 점수는 기억나지 않고, 내가 이후에 학습지에서 옵션으로 주었던 지능 검사 결과가 기억나는데, 상당히 높았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내 기억에 왜곡이 있을지도 모르고, 그때 봤던 지능 검사들에 대해 조금 의심을 가지고 있다. 내 친구 중에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친구는 아닌데, 그 친구가 아이큐로는 우리 학교 전교 1등이 되기도 했기 때문에 지능 검사가 과연 그 사람의 수행 결과에 기여하는 바가 얼마나 되는지 의심을 가지고 있다.

현대의 지능검사와 유사한 최초의 검사는 19세기 후반 프랑스 심리학자 알프레드 비네(Alfred Binet)이 고안해내었다. 당시 프랑스 정부가 모든 아동들에게 의무교육을 실시하면서 교사들이 아이들의 학습 차에 대처할 수 있도록 지적으로 지체가 심해 정규교육을 받기 어려운 아동을 가려낼 수 있는 검사를 만들어야 했다. 이후,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루이스 터만(Lewis Terman)이 비네 검사를 미국 아동들에게 맞도록 수정하여 스탠퍼드-비네 검사를 만들었다. 터만은 비네의 정신 연령 개념을 존속했는데, 이는 신체 연령에 대한 정신 연령의 비율로 지능을 평가하는 것이다. (터만은 터만 연구로도 유명한 학자인데, 터만 연구는 IQ 상위 1%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종단 연구로, 사회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할 거라 기대한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 그렇지 못한 결과를 얻게 되면서, 지능 검사의 허상에 대해 깨닫게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능지수(IQ) = 정신 연령 /신체 연령 × 100

100이란 수치는 정신연령이 신체 연령과 동일할 때 지능지수가 100이 되도록 곱해지는 수치다. 더 쉽게 말하자면, 10살의 아이가 정신 연령 또한 10살이라면 아이큐 100이 나올 것이고, 그 이상의 정신 연령을 가졌다면 100 이상의 아이큐가 나올 것이다.

현재까지 심리학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지능 검사 도구로는, 웩슬러 지능 검사가 있다. 한국에도 K-WAIS(청소년·성인용), K-WISC(아동용), K-WPPSI(유아용) 등의 이름으로 나와있다. 웩슬러 지능검사는 이전 스탠포드-비네 검사가 언어적 능력을 측정하는 데에 비중이 큰 것을 비판해, 언어성 검사와 함께 동작성 검사로 구성되어 측정한다. 치매, 우울장애, 뇌 수술 등 환자의 병전 지능을 측정할 수 있어, 병으로 인한 기능장애의 정도를 양적으로 알 수 있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언어성 점수 차와 동작성 점수 차의 크기, 소검사 간의 상호적인 관계와 함께 검사 참여자 개인의 성격적 측면과 정신역동, 심리 내적인 갈등, 정신 병리를 파악할 수 있게 한다.

현재 한국에서 K-WAIS-Ⅳ와 K-WISC-Ⅳ가 가장 최신 판으로 사용되고 있다.

3. 나에게 중요한 건 뭐지?

자신을 여전히 실험 대상으로 바라보며 인격적인 대우를 하지 않는 니머 교수에게 찰리는 외친다. 찰리의 이 발언이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 책이 출간한 1959년 당시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생의학이 눈부신 속도로 발달했으나 과학자들이 현재와 같이 연구 대상에 대한 윤리 의식을 갖추지 못했던 시기다. 또한, 이 소설이 나온 미국에서는 당시 지능검사는 세계 대전에 참전할 군인들을 선발하는 용도로 쓰였고, 세계 대전 이후에는 미국으로의 이민을 희망하며 밀려드는 이민자들을 선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 지능 검사를 만능처럼 사용하며, 인간을 재단할 수 있다고 믿던 때였다. 대니얼 키스는 그 시대적 상황 속에서 찰리의 목소리로, 지능과 교육이 인간에 대한 애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가치로서 상실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현재 많은 사람들은 다중 지능이나 창의력, EQ(감성 지능) 등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이전 지능보다 더 폭넓게 지능을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사람이 반드시 뛰어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뛰어난 것이 그 사람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아니며,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다시피 행복을 전해주지도 않는다. 우리의 행복은 아주 사소한 감사 인사나 친구에게 보내는 미소들에서 찾을 수 있다. 더 나은 내가 되지 못한 것에 절망한 사람이 있다면, 『앨저넌에게 꽃을』 일독을 권한다. 우리에게 꽃을 전해주는 사람 하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삶은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꽃을 사줄 사람이 없으면, 꽃을 살 돈이라도 마련하길.)

저자 대니얼 키스(Daniel Keyes)는 1927년 생으로, 브루클린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영미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 전미SF판타지작가협회(SFWA)에서 수여하는 명예공로상을 받았으며, 현재 오하이오 주립대학 명예교수로 있다. 그의 대표작 『앨저넌에게 꽃을』은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잇따라 수상하며 장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 후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영문학과 창작을 가르치는 한편, 여러 정신과 의사와 함께 다중인격 환자를 직접 관찰하며 다중인격장애(정식 명칭: 해리성정체장애)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경험을 토대로, 후에 다중인격장애로 무죄를 선고 받은 빌리 밀리건의 실화를 극화한 『빌리 밀리건』을 출간했다. 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장기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에드거 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출처 : 네이버 해외저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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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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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다거나 서운하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그건 상대가 무슨 행동을 해서라기보다는 그저 자기 혼자 마음이 저 나락으로 떨어져내리는 사람의 아득함이었다.(162쪽)


소설의 두 축을 이루고 있는 경애와 상수는 자신 몫의 아득한 고통을 감내하는 사람들이었다.  다만, 경애는 슬픔에 잠겨 조용히 혼자 추락하기를 선택했던 사람이고, 상수는 세상의 불의,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내면에 간직하고 적당히 유지하는 사람이었다. 둘이 '반도미싱'에서 팀장과 팀원으로 만나기 전에 그랬고, 그 이후로도 얼마간 그랬다. 둘 다 회사 내 아웃사이더로, 적당히 '자기 자신'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만날 수 있었다. (회사 내에선 둘을 처리할 방도로 팀으로 엮어놓았지만, 나름 어벤저스가 되었다.)


사실 둘의 이어짐이 시작된 건, 반도미싱에서 만나기 한참 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친구로,그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사건에 대한 상처를 서로 만나기 전부터 지니고 있었다. 경애는 E로 부르고, 상수는 은총이라고 부르는, 데이비드 린치 감독을 좋아하는 친구. 

소설의 화재 사건은 1999년 인현동 화재 사건을 그대로 옮겨 왔다. 당시 발간된 경향신문을 보니, 그 사건은 중고등학생 포함 55명이 사망하고, 78명이 중경상을 입은 대참사였다. 당시 나도 고등학생이었으므로 뉴스를 접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씨랜드에서 유치원생들이 화재로 죽은지 4개월도 안 된 시점이었다. 이때 뉴스 보도의 뉘앙스가 '왜 호프집에 미성년자가 있었는가, 혹시 불량 청소년 아니었나'하는 것이었다. 그 뉴스를 접한 부모들의 상당수는 자녀에게 "그러니깐 넌 저런 위험한 데 가지 말거라."라고 했을 것이다. 화재를 예방할 수 있었던 장치들을 모두 제거해버리고 자기 혼자 비상구로 도망 간 호프집 사장과 경찰의 초동 대처 실패에 엄청난 목숨이 희생된 것에 대해 더 안타까워하고 분노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 곳에 갔다는 이유로, 죽어야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찰서에서 조사를 받을 때 경애는 물론이고 많은 애들이 교복을 입고 있었다. 너네 교복 입고 창피하지도 않냐, 하고 경찰이 말했다. 경애는 자신이 무엇을 그렇게 부끄러워야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그렇게 말하는 누구도 용서할 수 없었다. 경애가 자다가 발딱 일어나 소리를 지르거나 신음소리를 내면서 악몽에 시달리고 있으면 엄마는 경애를 붙들어 안으면서 기도하자, 기도해, 경애야, 자, 기도해, 라고 했지만 경애는 기도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아이들을 죽게 하는 것이 창조주라면, 그런 비극을 기꺼이 만들어내는 창조주라면 기도하고 싶지 않았다. (69쪽)


나는 1999년~2001년을 내 인생 암흑의 시간으로 기억하고, 오로지 기억나는 건 내가 고통스러워했다는 것 뿐이었다. 경애와 비슷했다.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가는 나를 안고 엄마는, 경애의 엄마처럼 기도하자고 했다. 그러면 그게 비명을 지르게 한 것보다 더 고통스럽게 다가와서, 점차 괴로워도 엄마에게 가지 않았다. 혼자 어두운 비명의 시간을 견뎌야겠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무겁게, 내 몸과 마음이 침잠했다. 소설 속 경애도 구로에 살았고, 나도 25년 넘게 그 구로에 살아봤고, 1999년에 고통을 받았다고 생각하니, 경애가 실존 인물처럼 다가가 서로 부둥켜 안고 싶었다. "우리 그 때 참 힘들었었네." 하면서. 



경애는 자기 동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경애가 사는 동네는 벽면에 쓰인 일련번호로 각각의 거주지가 구분되는 '벌집'들이 있는 곳이니까. 가게 딸린 방에서 살고 있는 자기도 그렇지만 동네에는 방 한칸에 네다섯명이 함께 지내야 하는 집들도 많았다. 그런 친구들은 한번 밖에 나오면 집 안으로 잘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주로 거리에서 시간을 보냈다. 얼음땡을 수십번 하면서, 그렇게 얼었다가 다시 풀리는 순간의 스릴에 몰두하다가 고무줄을 하면서 팽글팽글 돌다가 어지러우면 꼬마애들이 타고 놀아야 할 미끄럼틀을 차지한 채 시간을 보냈다. 이런 여름이면 그런 시간은 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스크림처럼 녹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깐 그런 날들을 보내고 나면 삶이 한살 한살 들어차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닳고 없어지기만 할 것 같았다.(236쪽)


물론 구로에 살았다고 해서 모두 다 힘들게 살았던 건 아니다. 현재보다 과거에는 구로라는 지역구가 워낙 규모가 컸고, 그렇기 때문에 지역구민의 생활 편차도 컸다.나 또한 묘사되었던 환경처럼 척박한 집에서 살진 않았지만, 어린 시절 내 친구들과 내가 놀았던 동네의 풍경과 너무나 흡사하다. 

친구들 집을 돌아다니며, 친구들을 규합해서 고무줄 놀이나 제기를 차면서 어두워질 때까지 놀기도 했다. 그러다가 놀이터 한 켠에 있는 철창을 헤치고 들어가 지하에 있는 민방위 관련 시설에 있는 미끄럼틀보다 경사가 급한 시멘트 구조물에서 신발이 상하든 말든 놀았던 기억이 난다. 놀다가 나도, 친구들도 다치기도 많이 했는데, 그 시절 아이들은 참 잘 다쳤고, 부모님들은 그런 데에 지금보다 훨씬 쿨했다.  



장 뚜렷한 건 배웅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상수와 일행이 자기 시야에서 사라지는 장면을 확인하고 싶었는지 그 엄마가 식당 앞 모도까지 나와 서 있는 모습이었다. 그 엄마가 신고 나온 붉은 가죽끈의 샌들 위로 떨어지던 나뭇잎의 어른거리던 그림자들. 그 검정의 그림자들은 발을 덮는 것 같기도 하고 아주 어둡게 물들이는 것 같기도 했는데 동시에 그것은 바람에 흔들리면서 마치 파도처럼 발을 여러번 쓸어주는 것 같기도 했다는 것.


그런 장면을 연상하다가 상수는 마침내 괄호 안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이 되고 만다."라고 문장을 완성했다. (118~119쪽)


고등학교 시절, 형 상규의 잔인한 폭행 사건과 그 사건으로 인한 피해자 가족을 만난 뒤로, 상수는 달라지기로 했다. 김금희의 단편 「조중균의 세계」의 조종균처럼 부당한 것에 대해 가만 있지 않기로 한 듯 하다. 반도미싱에서 상수는 영업 사원이 하는 그 흔한 접대도 하지 않았고, 미싱의 전문성과 인간애로만 영업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자신이 회사 내에서 아웃사이더로, 코너에 몰리긴 했지만, 그런 태도를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상수는 '리틀 조중균'과 같은 면이 있지만, 조중균에 비해서는 더 부드럽고 섬세한 면이 있었다. 그리고 예상컨대, 항상 깔끔하게 입고 다니는 걸로 묘사된 부분으로 보아, 외모도 더 괜찮을 듯 하다. 조중균을 아는 독자라면, 상수는 조중균에 매력을 살짝 첨가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경애의 모습에서도 조중균의 대쪽 같은 성격이 보이기도 한다. 아마 그것은 내가 김금희 소설 중에서 「조중균의 세계」가 가장 인상 깊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왜 「경애의 마음」일까, 소설을 다 읽고나서도 고민해봤다. 경애가 나와서 경애의 마음이라고 했다고 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 그럴 거면, 「경애와 상수의 마음」이라고 했어야 했다. 경애와 상수가 여러 우여곡절 끝에 서로를 경애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우리가 상처 입고 괴로워하는 다른 이들에게 할 수 있는 최상의 일도, 바로 경애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을 경애합니다." 


*이 글은 개인 블로그에도 기록하였습니다. (클릭)



가장 뚜렷한 건 배웅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상수와 일행이 자기 시야에서 사라지는 장면을 확인하고 싶었는지 그 엄마가 식당 앞 모도까지 나와 서 있는 모습이었다. 그 엄마가 신고 나온 붉은 가죽끈의 샌들 위로 떨어지던 나뭇잎의 어른거리던 그림자들. 그 검정의 그림자들은 발을 덮는 것 같기도 하고 아주 어둡게 물들이는 것 같기도 했는데 동시에 그것은 바람에 흔들리면서 마치 파도처럼 발을 여러번 쓸어주는 것 같기도 했다는 것.

그런 장면을 연상하다가 상수는 마침내 괄호 안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이 되고 만다."라고 문장을 완성했다

경애는 자기 동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경애가 사는 동네는 벽면에 쓰인 일련번호로 각각의 거주지가 구분되는 ‘벌집‘들이 있는 곳이니까. 가게 딸린 방에서 살고 있는 자기도 그렇지만 동네에는 방 한칸에 네다섯명이 함께 지내야 하는 집들도 많았다. 그런 친구들은 한번 밖에 나오면 집 안으로 잘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주로 거리에서 시간을 보냈다. 얼음땡을 수십번 하면서, 그렇게 얼었다가 다시 풀리는 순간의 스릴에 몰두하다가 고무줄을 하면서 팽글팽글 돌다가 어지러우면 꼬마애들이 타고 놀아야 할 미끄럼틀을 차지한 채 시간을 보냈다. 이런 여름이면 그런 시간은 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스크림처럼 녹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깐 그런 날들을 보내고 나면 삶이 한살 한살 들어차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닳고 없어지기만 할 것 같았다.(236쪽)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을 때 경애는 물론이고 많은 애들이 교복을 입고 있었다. 너네 교복 입고 창피하지도 않냐, 하고 경찰이 말했다. 경애는 자신이 무엇을 그렇게 부끄러워야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그렇게 말하는 누구도 용서할 수 없었다. 경애가 자다가 발딱 일어나 소리를 지르거나 신음소리를 내면서 악몽에 시달리고 있으면 엄마는 경애를 붙들어 안으면서 기도하자, 기도해, 경애야, 자, 기도해, 라고 했지만 경애는 기도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아이들을 죽게 하는 것이 창조주라면, 그런 비극을 기꺼이 만들어내는 창조주라면 기도하고 싶지 않았다. (69쪽)

슬프다거나 서운하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그건 상대가 무슨 행동을 해서라기보다는 그저 자기 혼자 마음이 저 나락으로 떨어져내리는 사람의 아득함이었다.(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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