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 쿠쿠 랜드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 민음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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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대기에 웅크리고 앉아 노려보고 보급 부대원 밑에 멈춰 선다.
"짐승들이 좀 쉬어야겠습니다."
보급 부대원은 놀라움과 혐오가 반씩 섞인 표정으로 입을 떡 벌리더니 생가죽 채찍으로 손을 뻗는다. 오메이르는 제 몸의 심장이튀어나와 시커먼 공간 위로 날아가는 것만 같다. 하나의 기억이 떠오른다. 언젠가, 몇 년 전 할아버지를 따라 산 높이 올라가 나무꾼들이 거대한 은색 전나무 고목을 베어 넘어뜨리는 과정을 구경한 적이 있었다. 나무는 장정 스물다섯 명의 키를 합한 것에 맞먹을 정도로 컸고, 그 자체로 하나의 왕국이었다. 나무꾼들은 낮은 목소리로결연히 노래를 부르면서 박자에 맞춰 나무 밑동에 쐐기를 박아 넣었는데, 마치 거인의 발목에 바늘을 박아 넣는 것처럼 보였다. 할아버지는 코크, 부싯깃, 모탕, 지지대 등, 그들이 사용하는 연장들의명칭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보급 부대원이 채찍을 들고 일어서는 지금 오메이르에게 떠오른 기억은 나무가 한쪽으로 기울며밑동이 갈라져 터지고 나무꾼들이 "우아!" 하고 함성을 질렀을 때순식간에 주변 공기를 채우던 부러진 나무의 무르익은 알싸한 향과, 그 순간 그가 느낀 감정은 즐거움이 아니라 슬픔이라는 것이었다. 몇 세대에 걸쳐 별빛과 눈과 까마귀만 알던 나뭇가지들이 옆으로 쓰러져 관목들 사이로 처박히는 것을 지켜보며 벌목꾼들은 모두가 힘을 합쳐 해 낸 것에 득의양양해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오메이르의 감정은 절망에 가까웠고, 그 나이에도 자신의 감정이 환영받지 못할 것임을, 심지어 할아버지에게도 숨겨야 하는 것임을 감지했다. 왜 슬퍼하니? 할아버지는 물었을 것이다. 인간이 뭘 할 수 있겠니? 인간보다, 인간이 아닌 존재에 더 연민을 느끼는 아이는 어딘가 잘못된 아이다. - P435

큰소리로 읽는 동안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그녀가 흐름이 끊기지 않게 읽는 단어들이 귓전을 흘러 지나가는 동안만큼은마리아가 한결 덜 아파하는 것 같다. 마리아는 근육이 이완되면서안나의 어깨에 머리를 떨군다. 당나귀가 된 아이톤은 산적들에게납치되고, 물방앗간 아들의 채찍을 맞으며 바퀴를 끌고, 지치고 갈라진 발굽으로 천지 만물이 끝나는 곳까지 걸어간다. 마리아는 통증으로 신음하지도 않고, 보이지 않는 땅 밑 광부들이 방바닥 밑에서 긁어 댄다고 속삭이지도 않는다. 안나 옆에 앉아 촛불을 바라보며 두 눈을 깜빡이는 그녀의 얼굴은 즐거움으로 생기가 넘친다.
"이게 진짜 있었던 일일까, 안나? 배를 여러 척이나 통째로 삼킬만큼 큰 물고기가 정말 있을까?"
쥐 한 마리가 돌바닥을 가로지르더니 뒷다리로 일어서서 안나를향해 코를 발름발름하는 것이, 마치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다. 안나는 리키니우스와 앉아서 마지막으로 나눴던 대화를 떠올린다. 그는 MöOos, 그러니까 mythos라고 썼었다. 대화, 설화, 예수 이전의 암흑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전설.
"어떤 이야기는, 안나가 말한다. "거짓이면서 동시에 진실일 수있어." - P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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