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필로, 철학이 젊음에 답하다
올리비에 푸리올 지음, 윤미연 옮김 / 푸른숲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신간소개를 보고 읽게 되었다. 프랑스, 영화관에서의 강의, 바칼로레아, 화려한 저자의 이력 등 관심이 가는 면면이 있었으나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목차였다.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의미', '욕망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인간은 시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저 내용 아래 무엇이 써 있을까 상상만으로도 군침이 도는 주제들이다. 읽고 보니..우주를 담고 있는 책이네.  

 

책을 읽으면서 부끄러운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대학시절에 동서양의 고전을 읽는 세미나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10개의 강의 중 참아 가면서 5개를 듣고 더 이상 지속할 수가 없었다. 책을 읽는다고 도서관에 줄창 앉아 있었으나 무슨 말인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입시지옥을 거쳐 대학에 들어왔으니 이제 교양인으로서 지성을 쌓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의지만 있었을 뿐 문제의식도 그것을 따라갈 논리도 없었었다. 아니, 논리로만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철학이란 책상머리에 앉아서 세상을 그려보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삶을 통해 문제를 인식해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므로. 그런 면에서 프랑스의 풍토에 참 부러움을 느끼게 된다. 고교 졸업생들이 이런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이해할 수 있다니..(사실, 나이차이도 나랑 별로 안 나는 저자가 이 정도로 자유자재로 개념을 쉽게 가지고 놀 수 있다는 것도 참 질투가 난다.)  


이 책을 읽다보면 철학자들이란 우리의 선입견과는 달리 건강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희망을 포기하는 것이 유익하다'를 설명하는 부분이 단적인 예인데- 프리올 선생은 그것이 스피노자의 것인지 그의 것인지 아니면 그냥 나처럼 평범한 이가 말하는 것인지 전혀 어렵지 않게 파이트 클럽을 끌여들여 술술 설명해낸다.- 희망이란 기본적으로 미래를 상정하고 있으므로 결국은 희망은 현재가 우리를 실망시키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라는 것이다. 그리고 희망은 본래 희망하는 것이 일어나지 않을 것에 대한 두려움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희망을 버린다는 것은 현재를 직시하며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버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완전함을 이해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차갑게 인식하는 것이 스피노자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이다. 시니컬해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완전 낙관적인 것이지..(그렇지 않고 자기를 기만하면서 만족을 얻는 것을 이 책에서는 술주정뱅이의 행복이라고 말한다.)

여튼, 이 책은 그 동안 거의 포기했던 철학책 읽기를 다시 시작할 용기를 주었다. 저자 스스로도 처음엔 데카르트에 대해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가 알랭에게서 많은 도움을 얻었다고 한다.(물론, 난 알랭을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알랭드 보통의 그 알랭 아니다.) 이 책에서도 그의 설명을 많은 부분 인용하고 있다. 그렇다. 원전은 원래 어려운 것이라고 위안을 삼아본다. 절대 내 머리가 나쁜 것이 아니고!  


매 문장문장마다 밑줄을 그어야 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밑줄 긋기를 포기했을 정도로 참말로 명석한 책이다. 문제의식은 있으되, 나처럼 원전은 버거운 사람에게는 정말 보석같은 책이다.  


덧1. 아이폰의 스마트함에 담뿍 빠져 스티브 잡스에게 절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이 책의 저자에게도 비슷한 심정.

덧2.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토드 부크홀츠 저) 이런 책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강추.  

덧3. 이 책은 젊음에게 답할 뿐만 아니라 중년에게도 답해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