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보는 세계의 놀라운 건축물
피터 알렌 지음, 한성희 옮김, 박재연 감수 / 런치박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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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이야기들과 사람, 그렇게 시대를 담은 그들, [그림으로 보는 세계의 놀라운 건축물]

 

여행이 주는 여러 즐거움 중에 새로운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익숙했던 시야에서 벗어나 평소에 보지 못한 것들을 보게 되면 아, 이래서 여행을 왔지, 하고 저절로 혼잣말을 하게 된다. [그림으로 보는 세계의 놀라운 건축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 세계의 온갖 신기한 건축물들을 책장을 펼치는 것만으로도 손쉽게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책이다.

 

마흔 개의 건축물을 눈이 즐거운 색감의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로 소개하고 있는 책의 본문에는 각각의 건축물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짤막한 설명이 담겨 있다. 또한 한국의 건축물을 대표하여 수원 화성이 소개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다른 건축물에 비해 국내 독자들이 실제로 가봤을 가능성이 높은 이 건축물이 과연 책에서 어떤 일러스트와 설명으로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지 살펴보는 재미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독일의 바이에른에 있다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소개하는 페이지가 가장 인상 깊다. 아름다운 외관을 자랑하는 이 성은 디즈니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 등장시킨 성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이야기로도 이미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있다.

 

건축물은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관습, 그리고 보유하고 있던 기술과 추구하던 이상향을 다분히 반영하는 것으로, 단순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떠나 사유하는 사람들에 따라 깊이 있는 영감과 이야기를 제공한다. 이 책은 올컬러 인쇄를 제공하고 있으며, 참고가 될 만한 역사적 사실의 간단한 브리핑, 그리고 무엇보다 동화책에 나와도 무방할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를 실어 독자들에게 큰 즐거움을 준다. 책의 첫 부분, 시작하는 글에 적힌 건축은 시간과 장소를 말하는 동시에, 시대를 초월하는 것이어야 한다라는 말처럼, 우리의 건축물은 우리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갑자기 깊어진 겨울을 향해가는 요즘, 따스한 곳에서 편안한 자세로 이 책을 펼쳐 들고 낯선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건축물을 음미하며 시공을 뛰어넘어 여행을 떠나는 색다른 시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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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함 속 세계사 - 129통의 매혹적인 편지로 엿보는 역사의 이면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지음, 최안나 옮김 / 시공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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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전해지리라, 운명의 편지들이, [우편함 속 세계사]

 

언제부터인지 거리에 서 있는 우편함을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 별로 쓸 일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놓여 있던 우편함이 하나둘 없어지기 시작한 탓인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SNS와 이메일, 휴대폰 문자 메시지 등 편지를 대신해 상대방과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편지라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과거보다 멀어진 존재라는 점이다. 편지로 우리는 마음을 전해왔다. 또 꾹꾹 눌러쓴 손글씨는 보는 것만으로도 상대가 어디에 있든 또렷한 형상으로 낚아채 눈에 또 마음에 선하게 떠올리게 만들었다. [우편함 속 세계사]는 이런 편지를 주고 받았던 역사 속 인물들과 편지를 보낸 상대의 관계를 소개하고 그 편지를 실은 특별한 기획의 편지 모음집이다.

 

책의 구성은 편지를 보낸 날짜와 보낸 사람, 받는 사람, 그리고 그 둘의 관계를 설명한 간단한 본문에 이어 주인공인 편지가 직접 등장하는 식이다. 편지를 쓰게 된 배경을 설명해주는 점이 편지를 읽기 전 독자의 이해를 도와 특히 좋다. 437개의 편지 속에서 우리는 목차가 말해주듯 사랑, 가족, 창조, 용기, 발견, 여행, 전쟁, , 파괴, 재앙, 우정, 어리석음, 품위, 해방, 운명, 권력, 몰락, 작별이라는, 우리 삶에서 빠질 수 없는 18개의 주제들을 마주한다. 2018524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가 북의 김정은에게 보냈다는 편지와 1775730일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가 프랑스의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보낸 편지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두 편지는 각각 분명한 목적을 담고 상대에게 전해졌지만 얻어낸 결과는 사뭇 달랐다. ‘만나는 순간을 매우 기대하고 있었습니다라고 편지의 서문을 열지만 곧 미국의 것이 워낙 막강하고 강력해서라며 은근한 제힘의 과시와 위협을 담아 결국 받는 사람이었던 김정은이 공식적인 화해 서신을 보내게 되는 것으로 제 역할을 다했던 전자와 달리, 후자는 부디 불행이 너를 집어삼킬 때까지 내가 살아 있지 않기를이라며 딸에게 드리우는 어두운 그림자를 걱정하며 호되게 어린 왕비를 꾸짖은 마리아 테레지아가 그러나 나는 죽는 날까지 널 다정하게 사랑할 게다로 끝내 숨길 수 없는 모정을 녹여 편지를 끝맺었지만 결국은 딸 마리의 비극적인 운명을 되돌리지 못한 공허한 외침으로 남는다.

 

다시 생각해보니 몸만 두고 마음이 상대에게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는, 편지의 다른 정의를 언젠가 본 기억이 난다. 역사 속에 남은 수많은 편지들은 그렇게 상대에게 여행을 떠나는 것도 모자라 그 유명함과 깊은 의미로 시간을 거슬러 후세에 남아 전해졌다. 우리에게 전해진 이 책의 편지들도 읽는 사람에 따라 각기 푸릇한 새 의미를 얹어 또 다른 기억으로 특별한 옷을 입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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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산책 - 일본 유명 작가들의 산책잡담기 작가 시리즈 3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외 지음, 안은미 옮김 / 정은문고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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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에 사랑을, 두 걸음에 고독을, [작가의 산책]

 

많이는 아니지만 책 앞머리에 실린 이 산문집의 주인공들이 쓴 책을 몇 권 읽어보긴 했다. 조금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의 책들도 있었음을 떠올리다가 벚꽃이 그려진 표지의 산뜻함에, 그 희한하게 느껴지는 괴리감에 잠시 주춤하다 책을 읽어내렸다. 다행히도 이 책에 실린 산문들은 전에 읽었던 그들의 작품만큼은 무겁지 않았다.

 

와카야마 보쿠스이의 어느 날 점심은 벚꽃이 지는 걸 실감한 작가가 갑자기 먹을거리를 챙겨 무작정 산으로 나선, 아주 짧고 평범한 어느 하루의 몇 시간을 그린 글이다. 이 글에 큰 사건은 없다. 갑자기 산행을 떠남, 그리고 갑작스레 소나기를 맞이함이 사건이라면 사건이다. 작가는 별것 없는 주위 풍경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열심히 관찰하며 세밀하게 써 내려간다. 글의 장르 특성상 역자의 글솜씨도 어느 정도 반영이 되었겠지만 그래도 원글의 작가가 어느 정도로 꼼꼼히 그날의 시간을 글에 눌러 담았는지는 예상이 되고도 남는다. 그렇게 비가 살짝 온 산의 풍경에서는 마른 풀에서 새빨간 꽃이 피어나고 솔잎 끝에서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며 바다는 빛나고 잔물결은 살랑거린다.

이렇게 자신이 사는 일본의 어느 곳을, 파리를, 베네치아를, 잘츠부르크를 그들은 산책하며 저마다의 시선으로 풍경을 사색한다. 산책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던 작가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무거운 시간도 글을 쓰고 난 뒤 어느 시점에 와서는 조금이라도 무게를 덜 수 있었기를 바래본다.

 

작가들의 산책 잡담기라는 깨알 같은 부제처럼 산책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주가 된 이색 콘셉트의 책이 반갑다. 그들의 산책만큼 우리 중 누군가가 할 오늘의 산책도 여운 가득한 시간으로 채워졌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오카모토 가노코의 복숭아가 있는 풍경에서 본 마지막 글귀를 떠올려본다. ‘인간은 괴로워도 예술로 구원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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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 (출간 15주년 기념 백일홍 에디션)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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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았고 또 살아갑니다, [호미]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작가 박완서의 산문집 [호미]는 읽고 있자면 마음이 따스한 봄날처럼 평화로워진다. 복작이는 내 일상도 잠시 동안 숨을 죽이고 저자의 느긋함과 여유로움에 분주했던 내 시간도 조용히 젖어 든다. 마지막에 실린 작가의 말을 보고서야 이 산문집이 저자가 일흔이 넘어 쓴 글들의 모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거 거저먹은 나이 아니다라는 문장을 보고 피식 웃었는데, 과연 그 말이 무색하지 않게 산문집은 일상과 삶을 연결 짓는 날카로운 시선에 탄탄한 필력이 더해져 있다.

 

글의 특성상 별 의미는 없어 보이지만 네 개의 큰 주제로 산문들이 구분되어 있는 이 책에서는 꽃과 나무를 사랑한 저자, 일상과 주변인들을 사랑한 저자, 가족과 특별히 더 가까웠던 이들을 사랑한 저자의 모습 등이 각각 저마다의 형태로 드러난다.

특히 누구나 한 번쯤 살며 경험해보았을 깁스로 인한 생활의 불편함을 주제로 한 내 인생에서 가장 긴 8은 저자의 꼼꼼한 시선과 차분한 필체가 어우러져 다분히 산문의 특성을 드러낸다. 저자는 내 인생에서 가장 긴 8에서 전화 때문에 급히 움직이다 미끄러져 오른손 팔목이 부러지는 바람에 한 달가량 깁스를 하며 평소에 몰랐던 불편함에 당황스러워하기도 하고 운수 안 좋은 날에서는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우연히 마주친 모자와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듯하다가 조그마한 반전을 담은 이 이야기는, 그래서 비슷한 제목의 유명한 또 다른 글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가 세상을 떠나고 근 10년이 다 되어서야 그녀가 남겼던 또 다른 글들을 읽는 감회는 남다르다 주변의 소소한 것들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글을 눈에 담는 여름밤, 빠르게 흘러가는 이 시대의 시계도 조금은 느리게 똑딱거리는 듯 느껴져 왠지 모를 뭉클함마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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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은연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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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사랑의 소용돌이에 빠진 여자, [안나 카레니나]

 

필독서 100’, ‘권장 소설’, ‘전 세계 작가들이 뽑은 최고의 소설, 딱 봐도 남달라 보이는(?) 무게감 있는 타이틀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평범한 듯 보이지만 대담한 주제와 생명력 가득한 캐릭터들이 가장 큰 매력으로 꼽히는 명작 중의 명작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달리 불행하다.’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사랑과 결혼 말고도 윤리와 죽음, 인생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주제에 관한 저자 톨스토이의 생각이 드러나는 작품이라 불린다. 하지만 몇 번을 읽어도 처절했던 안나의 삶과 사랑에서 좀처럼 시선을 거두기가 어렵다.

 

안나가 일단 표면적으로는 불륜을 저지르는 나쁜 여자이지만, 그녀 속에 감춰진 공허함과 아픔을 나도 몰래 천천히 음미하며, 그렇게 그녀의 심정에 동화되어 읽게 된다는 뜻이다. 또 탄탄한 문장력으로 무장한 묘사 속에서는 당시 러시아 사교계를 향한 저자의 냉정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불륜을 등장시켜 비판받게 하지만 그 속에서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던 안나의 마음을 세심하게 묘사했던 것은, 어쩌면 그녀의 면죄부를 조금이나마 독자들의 손에 쥐어주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지. 남편 카레닌에게 드러나는, '불륜을 저지른 아내 때문에 자신이 겪게 될 어려움'을 먼저 걱정하는 태도 역시 읽는 사람이 쉬이 그의 편을 들 수 없게 하는 점이다.

아름다운 외모에 명랑한 성격을 가졌던 그녀, 러시아 정계에서 인정받는 정치가 남편과 귀여운 아들이라는 단란한 가족이 있었던 그녀, 누가 보아도 완벽한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 실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던 공허함이 있었고, 마치 그 틈을 노리기라도 한 것처럼 운명 같은 위험천만한 사랑이 다가온다. 그리고 그 사랑의 불길은 너무 크게 타오른 나머지 안나의 삶마저 삼켜버린다. 모두를 뒤로 한 채 다시 찾아온 애정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지만, 그렇게 내디딘 발걸음을 돌릴 수도 없는 막다른 길목에서, 그렇게 안 그래도 힘겨운 사랑이 흔들린다. 그리고 결국 기찻길에 몸을 던지고 나서야 감당할 수 없던 마음의 크기로부터 비로소 해방된 그녀의 인생을 지켜보며 도덕적인 교훈보다는 그녀를 대신한대도 수긍할 법한, 다소 감상적일지 모르는 회한에 젖는다.

또 다른 등장인물들이자 소설 속 한 축을 나눠 담당하는 키티와 레빈 커플의 이야기 역시 가정과 행복의 가치 등 나름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만, 그래도 가련하게, 하지만 열정적으로 삶을 불태운 안나의 이야기에 더 끌리는 이유는 다분히 개인적인 것이라고 해두자.

 

본문에 앞서 저자가 적은 '복수는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으리라.'는 문장은 로마서에 나온 말이다. 그래, 그 누가 안나의 죄를 묻고 벌을 내릴까. 결국 안나가 스스로, 그렇게 죄 같은 사랑으로 생명을 끊는 벌을 끌어안는다. 열정과 불안이 공존하는 안나의 삶과 성실과 신앙이 함께 했던 레빈의 삶은 대비되어 우리에게 정도(正道)를 제시하지만, 인간의 미성숙함 속에서 때로는 무책임이라는 단어가 당연한 듯 함께 하는 불같은 사랑을 온몸으로 보인 안나의 삶은 작지만 신경 쓰이는 성가신 울림이 되어 안 그래도 스산한 겨울밤을 찾아온다. 책을 덮은 이 공간에 흐르는 공기를 무겁도록 적셔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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