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 (출간 15주년 기념 백일홍 에디션)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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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았고 또 살아갑니다, [호미]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작가 박완서의 산문집 [호미]는 읽고 있자면 마음이 따스한 봄날처럼 평화로워진다. 복작이는 내 일상도 잠시 동안 숨을 죽이고 저자의 느긋함과 여유로움에 분주했던 내 시간도 조용히 젖어 든다. 마지막에 실린 작가의 말을 보고서야 이 산문집이 저자가 일흔이 넘어 쓴 글들의 모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거 거저먹은 나이 아니다라는 문장을 보고 피식 웃었는데, 과연 그 말이 무색하지 않게 산문집은 일상과 삶을 연결 짓는 날카로운 시선에 탄탄한 필력이 더해져 있다.

 

글의 특성상 별 의미는 없어 보이지만 네 개의 큰 주제로 산문들이 구분되어 있는 이 책에서는 꽃과 나무를 사랑한 저자, 일상과 주변인들을 사랑한 저자, 가족과 특별히 더 가까웠던 이들을 사랑한 저자의 모습 등이 각각 저마다의 형태로 드러난다.

특히 누구나 한 번쯤 살며 경험해보았을 깁스로 인한 생활의 불편함을 주제로 한 내 인생에서 가장 긴 8은 저자의 꼼꼼한 시선과 차분한 필체가 어우러져 다분히 산문의 특성을 드러낸다. 저자는 내 인생에서 가장 긴 8에서 전화 때문에 급히 움직이다 미끄러져 오른손 팔목이 부러지는 바람에 한 달가량 깁스를 하며 평소에 몰랐던 불편함에 당황스러워하기도 하고 운수 안 좋은 날에서는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우연히 마주친 모자와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듯하다가 조그마한 반전을 담은 이 이야기는, 그래서 비슷한 제목의 유명한 또 다른 글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가 세상을 떠나고 근 10년이 다 되어서야 그녀가 남겼던 또 다른 글들을 읽는 감회는 남다르다 주변의 소소한 것들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글을 눈에 담는 여름밤, 빠르게 흘러가는 이 시대의 시계도 조금은 느리게 똑딱거리는 듯 느껴져 왠지 모를 뭉클함마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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