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필드짱 > 꿈에 그리던 김형경 작가님을 만나다.

김형경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된 건 대학교 2학년 때 들은 교양 글쓰기 수업에서였다. 그 수업에서 책 3권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는 과제를 하게 되었는데 그 중 한 권이 바로 “천 개의 공감”이었다. 그 책은 내가 처음으로 읽은 심리치유에세이였고 제목 이상으로 많은 공감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유년기에 힘든 일을 많이 겪었던 나였기에 가지고 있던 마음의 상처 또한 깊었다. 그 상처들로 인해 살아가는 게 힘들었지만 가지고 있는 성격을 어떻게 하겠냐고 그냥 불편해도 참고 살아왔는데 천 개의 공감을 읽으면서 이런 책이 있다는 걸 모르고 살았다는 게 억울할 정도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후에 사람풍경도 찾아 읽고 내면아이를 달래며 나에게 이토록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김형경 작가님을 꼭 뵙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벤트로 작가님의 강연회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추운 날씨에 집에서 2시간 남짓한 거리였지만 작가님을 뵐 수 있다는데 그 정도야 감수할 수 있지 않겠는가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꽤 오랜 시간이 걸려서 강연회장에 도착했다. 처음 본 작가님의 인상은 푸근한 느낌의 교수님 같은 모습이었다. 역시나 좋은 책을 쓰시는 분은 발산하는 아우라가 다르다고 느꼈다.
강의의 주제는 “관계맺기”였다. 유아기 때 부모가 어떻게 대하느냐가 아이가 성인이 된 후의 관계맺기 방법에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었다. 사랑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언급하시며 잘못된 관계맺기 방식에 대해 5가지 유형으로 나타내셨는데 나는 그 중 3가지나 해당되었다. 사랑의 거렁뱅이, 전이ㆍ투사의 관계맺기가 해당되었는데 이러한 부분들은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힘들어하는 부분이기도 하였다. 작가님께서는 유년기에 상처 입은 사람들은 갈등을 피하려고만 하기 때문에 사랑도 일도 잘 못한다고 하셨다. 너무나 공감하는 말이었다. 사실 나는 어렸을 적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어 사람과의 관계맺기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러면서 다른 여느 아이들처럼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갈등을 경험하고 또 그러한 갈등을 원만하게 풀어내는 과정을 겪지 못하였고 대학교에 오면서부터 그러한 부분이 나를 힘들게 하였다. 인간관계에서 어떻게 진실된 마음을 얻는지 몰랐던 나는 그저 나를 희생하며 상대방에게 잘 해주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낌없이 주던 나의 노력에 대해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무관심 뿐이었다. 어느새 나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걸린 사람이 되었고 상대방의 관심을 구걸하는 사랑의 거렁뱅이로 살고 있던 것이었다. 이제까지는 두려워서 못했지만 그런 나의 모습을 벗어버려야겠다.
관계맺기를 힘들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인 나의 예민함은 전이ㆍ투사와 연관된다고 생각한다. 전이의 예를 들자면 나는 타인의 지적이나 비난을 받으면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한다는 생각이 들어 견디기 어려워진다. ‘저 사람이 왜 날 싫어할까? 내가 못나서일까’하며 자꾸만 고민의 수렁속에 빠져드는 나를 발견하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작가님의 말을 듣고 나니 그러한 감정을 부모님에게서도 느꼈던 것이었고 윗사람한테 비난을 받는 상황에서 내 내면에 있던 감정들이 표출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부모님의 무관심과 지나칠 정도의 비난이 내면에 감정의 응어리를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투사는 어찌보면 나를 힘들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나는 내 주위에 이해 못할 인간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친구가 했던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떠올리며 “쟤는 대체 왜 저러는걸까? 저렇게 살고 싶을까?”하고 되새김을 하고 또 한다. 하지만 작가님의 말씅에 따르면 타인의 마음에 안 드는 점은 바로 자기 자신안에도 있는 점이라고 한다. 사실 이 부분은 예전에도 들었던 부분이었고 나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체 내 안에 그 친구같은 이기적이고 뻔뻔한 모습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작가님의 구두쇠의 예를 들으며 나는 조금씩 수긍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발산되지는 않았지만 내 내면에도 그러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사람은 타인의 결점은 잘 찾아내지만 자신의 결점은 잘 찾아내지 못한다. 자신은 옮고 타인은 잘못되었단 생각을 자주 하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에게도 문제점은 많다.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 볼 줄 아는 능력이 생길 때, 그리고 다양성을 인정할 줄 알 때 인간관계가 수월해진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관계 잘 맺는 법 3가지를 말씀해주셨는데 3가지 모두 당연하지만 여지껏 실천하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먼저 내가 사랑의 부자가 되어 남에게 사랑을 주자는 것.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게 우선시되어야 하며 못난 나의 모습, 이기적인 나의 모습까지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 안에 사랑이 넘치는 사람은 누구와도 관계맺기가 가능하다고 한다. 내가 행복해야 타인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두 번째로 부모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하는 것을 꼽으셨다. 엄마의 사랑,지지, 승인을 받기 위한 일을 위주로 사는 것은 어린아이의 모습이고 또한 엄마가 반대한다고 하지 않는 것도 어린 아이의 모습이니 버리라는 것이었다. 20살이 넘었으면 자기 인생은 자기가 결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그렇게 여태껏 내 의견을 묵살하고 부모님 의견만 따라온 것을 반성하였다. 사실 내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결정(군대 가는 시기, 대학원서 쓰기)을 내릴 때 내 의견은 배제되기 일쑤였고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좋은 기회들을 놓친 적이 많았다. 그러면서 20대 중반부터 나는 부모님을 굉장히 원망하며 살아왔다. 부모의 지나친 간섭이 내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하며 말이다. 그러면서 내 건강도 나빠졌고 덩달아 별로 좋지 않은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 원망과 분노를 속에 담아두는 것은 독을 마시는 것과 같이 해로운 것이라고 한다. 이제는 부모님으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할 시기가 된 것 같다. 내면의 부모를 떠나보내면 전이나 투사도 줄어든다고 한다. 이제는 부모님으로부터 상처받은 기억들(Parent's tape)도 놓아버려야겠다. 지난 일들은 돌이켜보면 내 인생의 결정권을 온전히 부모님에게 넘겨준 내 책임이었다고, 반항하며 내 소신대로 행동하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고 생각하려 한다.
세 번째로 내가 가장 잘 안 되는 부분인 공감하는 법을 다루셨다. 타인의 마음속에 들어가 그의 심정을 이해해주고 무조건 그의 편이 되어주기도 하는 것, 나를 기준으로만 생각하던 나였기에 가장 부족했던 덕목이지 않나 싶다. 늦게 들어오는 아내에게 잔소리하는 남편에게 화를 내기보다 남편에게 유아기 때의 분리불안이 남아있음을 이해하고 편하게 대하는 것을 예시로 들어주셨다. 판단ㆍ충고는 피하며 상대의 조그만 잘못은 눈감아주고 편들어주는 것이 친밀한 관계의 모습이라고 한다. 문득 지난 날 나에게 고민을 상담하던 친구에게 그 친구의 잘못된 점을 꼬집어주기만 하고 그의 심정을 공감해주지 못했던 일이 떠올라 미안해진다. 그 친구가 원했던 건 단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편들어주는 친구였을텐데 말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주위사람들에 대해 동일시를 하고 있음을 의식해야 한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나는 자라면서 가장 친하게 지내고 오랜 시간을 공유했던 친구들의 말투나 행동을 나도 모르게 따라하고 있음을 느낀 적이 많았다. 근묵자흑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친구를 잘 사귀라는 말도 결국은 같은 맥락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날 항상 비관적인 모습으로 살았던 내가 내 친구들에게 부정적인 에너지로 그들을 고통스럽게 하지 않았나 하는 미안함이 들었다. 또한 그들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나도 긍정적인 마음을 배울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때문에 힘들어했었을 그리고 나를 성장하게 해준 친구들을 위해 한 턱 쏘도록 해야겠다.

강연회가 끝난 후 바쁘신 일정에도 친절하게 싸인을 허락해주신 작가님 덕분에 나는 꿈에 그리던 작가님과 짤막하지만 몇 마디를 나누고 저자 친필 싸인을 받았다. 너무나 긴장한 탓에 말까지 더듬었지만 그래도 내 생에 정말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김형경 작가님. 정신과전문의 저리가라 할 정도로 해박한 심리학 지식으로 강연회 참석자들의 질문을 망설임 없이 시원하게 대답해주시는 작가님의 모습은 진정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정말 의미 있었던 강연회였고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을 치유해주는 좋은 책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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