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풀잎은 노래한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7
도리스 레싱 지음, 이태동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평점 :
남아프리카의 어느 마을, 1950년대. 한 여자가 피살되었다. 그 여자를 주인으로 모셨을 흑인 하인이 금품을 노리고 저지른 범행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일부러 관심을 피하는 듯했다. 억압된 원주민들의 지위로 봤을 때 백인의 죽음은 분명 큰 이슈가 되어야 할 것이었지만, 미묘한 냉담함으로부터 소설은 시작한다. 소설의 1장에서 죽음을 맞이한 피살자 메리. 그녀의 이야기는 각 장을 통해 공개되는데 책을 읽었다면 필연적으로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1장을 다시 펴보리라는 것을 알게 되는 책. 도리스 레싱의 책에 등장하는 그녀는 처절했다.
불쌍하고 추하고 정신마저 이상해진 여자. 자신과 이글거리는 태양 사이에는 녹기 일보 직전의 열판이 가로로 있고, 자신과 저주스러운 어둠 사이에는 잠깐 동안의 낮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은 할 수도 없는, 삶 자체를 상실해 버린 여자. <P.332>
1928. 영국,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했다. 소설의 배경인 남아프리카는 2년 뒤인 1930년.
1948년 남아프리카는 아파르트헤이트를 시작했고, 이는 내 동생이 태어난 뒤 두 살이 되던 해(1993)까지도 지속되었다. 20%도 안 되는 백인이 절대다수의 흑인에게 가할 수 있는 불평등한 법. 자세한 내막은 잘 알지 못하고 단순한 기록이니, 향후 관련된 책들을 찾아볼 계획이다.
여성이 참정권을 갖게 된 것은 채 100년이 안되는 짧은 역사이다. 여성으로서, 그 짧은 기간 동안 동등해지기 위해 싸워온 시간들과 이 전 역사 속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부분이다.
이 소설은 1950년 처음 출간되었다고 했다. 배경은 남아프리카. 오직 백인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들 속의 이야기이다.
백인 문명. 특히 백인 여자가, 경우가 어찌 되었든 간에 흑인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 걸 결단코 용납하지 않을 백인 문명은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일단 그러한 관계를 인정해주면, 백인 문명은 붕괴되어 그 무엇으로도 구제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인 문명은 터너 부부의 경우와 같은 비참한 실패를 용납할 수가 없었다. <P.41>
소설은 진행 내내 한낮 한여름이다. 모든 것들이 죽어있는 한 여름. 남아프리카의 여름을 상상해 본 적 없지만, 이런 타는듯한 여름이라면. 사람은 미칠 것 같다. 10월까지도 한여름인 이곳. 메리에게 겨울은 오지 않는다.
메리는 어릴 적 학대하는 아버지 아래에서 오로지 위안 삼을 것은 맞지 않았다는 것 외에는 없는 삶을 벗어나 도시로 왔다. 그녀의 이십 대는 찬란했고, 성공을 거두었으나 그녀의 서른은 결혼을 하지 않는 이상한 여자. 몸은 한껏 늙어가는데 마음은 소녀인 이상한 여자라는 평판을 벗어나기 위해 결혼할 상대도 정하지 않은 채 결혼을 결심했다. 그렇게 그녀는 가난한 남자 리처드를 만났고, 그녀의 서른은 다시 그녀를 어릴 적 아버지 앞으로 데려가는 듯했다. 무능한 한 남자의 가정 속에서 그녀는 잠시 벗어났었던 그 일말의 여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국가의 위기도 그렇겠지만 한 개인의 위기 또한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런 위기가 있었음을 깨닫는다. (...) '내년'이라는 말에 과연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또 한 번의 실패? 기껏해야 형편이 조금 괜찮아진다는 의미가 들어있을 뿐이었다. 기적은 기대할 수 없었다. <P.228>
백인이지만 여성이었던 메리. 그녀는 흑인을 잘 다루지 못하는 여성이다. 미개하고 어리숙한 흑인을 너그럽게 봐줄 깜냥도 안 되는 여자. 당시 사회는 흑인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은 백인 남성뿐이라는 의식이 있었고, 그녀는 그 시선의 또 다른 피해자였던 것이다. '모세'(이름 속에 들어있는 아이러니 라니!)라는 흑인을 부리게 되면서 겪게 되는 사항들을 읽다 보면, 시기적인 것들을 감안했을 때, 도리스 레싱은 정말 치열하게 글을 썼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설 속에서 그녀는 점차 하인이었던 모세에게 의지하며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것을 넘어서 미묘한 감정이 싹트는 듯한 모습들을 보인다. 그것은 모세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평생의 핍박을 받던 흑인은 생전 처음 자신에게 무너지는 백인을 본 것이다.
그의 말투에 대해 가슴속에서 보통 때와 같은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그 목소리에 깊이 빨려 들고 말았다. 그런 개인적인 관계에 대해서 도대체 어떡해야 될지 마음을 결정할 수 없었다. <P.263>
소설은 지지부진하게도 비정상 속으로 나를 끌고 들어간다. 감안해야 할 점은 이 책은 1950년대에 나왔다는 점이고, 그때 흑인의 지위는 지금처럼 의식 속에만 남아있는 편견이 아니라 법으로 보호받는 '정설'이었다는 것. 너무나도 당연하게 신체적 조건만 좋은 흑인은 백인의 발바닥도 쳐다보지 못할 위치였던 것이다. 절대다수의 유색인종을 지배하기로 생각한 백인 문명은, 언제든지 전복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의식 깊이에서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현대에 와서 인종 차별은 일종의 포비아 현상일 뿐, 법적으로는 금지되어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사회 시스템은 근본적인 차별은 있을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는 이 시대에 도리스 레싱의 <풀잎은 노래한다>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떤 감정까지를 끌고 가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책의 문맥을 살필 때 흑인과 백인의 사랑은커녕 백인이 흑인을 인격적으로 대해 주었다는 것 자체가 모독인 사회였음은 분명했다. 그런 사회에서 메리를 '마님'이 아닌 '부인'(조금 더 신사적인 의미? 원서를 보지 않았으니 알 수없지만 조금 더 근대화된 지칭 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으로 부르는 선교사 아래 있었던 모세는 아주 충격적인 인물이다.
"오렌지는 다 떨어졌어요. "
그는 냉담하게 다시 한 번 말했다. 그러나 그 말투에는 자기만족과 의식적인 힘이 담겨 있어서 찰리는 일순간 숨이 막히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문자 그대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P.303>
스포일러랄 것도 없이, 그녀를 죽인 것은 모세이다. 1장에서부터 못을 박고 시작한다. 그녀의 죽음과. 죽음을 둘러싼 내막들을 말이다. 하지만 처음에 읽었을 때는 흘려보냈던 그 모든 것들이. 끝까지 읽고 돌아와 읽히는 충격이란. 자주 가는 블로그 이웃과 나눴던 말처럼. 정말 믿고 보는 도리스 레싱이다.
어느 한순간 가슴 섬뜩한 두려움을 느꼈다. 그녀를 통째로 삼켜버릴 것만 같은 엄청난 공포의 전주곡이 들려오는 듯했다.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마음이 무로 돌아간 평정 상태에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공포의 그림자가 무엇인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P.327>
이 책은 내가 읽은 그녀의 두 번째 책인데, 처녀작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치열하고 치밀한 책이었다. 읽었던 두 권의 책은 성격도 성향도 완전히 반대여서 공통점이라고는 모두 도리스 레싱의 펜에서 나왔다는 것뿐일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바로 "겹겹이 쌓여있는 아픔"이다.
가난하고 힘듦을 어찌어찌 피해온 듯한 서른 살의 메리는 또 다른 고난을 만난다. 주변에서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평판을 피해 남편감을 찾았지만, 결국 그녀의 삶은 가난과 힘듦으로 다시 들어간다. 사랑을 찾지 못한 채, 그녀는 그녀의 삶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로부터 남편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했던 그녀에게 흑인 하인 모세는 또 하나의 괴로움이었다. 흑인이지만 어쩐지 그녀에게 이빨을 드러내 보일 것 같은 두려운 존재. 그녀는 이중의 괴로움 속에서 살았다.
오랜 기억이지만 좀처럼 처절해서 주인공의 이름이 잊히지 않았던 <다섯째 아이>의 어머니 헤리엇은 눈앞에 나타난 운명의 상대와 이상적인 집을 꾸린 듯했지만 내내 현실과 부딪혀야 했다. 금전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남편과 본인의 이상에의 변심. 유복했던 가정에 태어난 악마 같은 문제아 벤 때문에 무너져가는 그녀 역시도 어머니로서의 괴로움과 여자로서의 상실감 속에서 살았다.
단 두 권의 책만으로 도리스 레싱을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앞으로 그녀의 책을 완독하려 시도할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