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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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사람은 얼마나 어리석은지. 자신이 믿는 신념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내려놓는다. 나는 어렸을 때, 공부만 열심히 하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 어떤 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내 행동의 반경 모두를 부모가 지켜주고 있었는데, 나는 그저 나 혼자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 막연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책은 아동법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고등법원의 판사인 피오나가, 여러 법정의 일들을 겪으며 그리고 불완전했던 그녀의 사생활을 헤쳐나가면서 겪는 이야기들이다. 이언 매큐언의 책은 다섯 번째인데 개인적으로는 속죄 이후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이다.

그러나 한 생명이 다른 생명보다 더 가치 있다고 추정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 한 것이었다. 쌍둥이를 분리하면 매슈가 죽었다. 쌍둥이를 분리하지 않으면 부작위로 인해 둘 다 죽었다. 법적, 도덕적 운신의 폭은 좁았고 이 문제는 결국 차악의 선택으로 결론지어야 했다.<P.42>

 가끔 어떤 글을 보고 메일을 보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철학과 종교에 대한 텍스트들을 많이 올리니 특정 종교에서 지속적으로 메일을 보내곤 한다. 그냥 읽지 않고 메일을 지우거나, 애매한 제목 덕에 클릭을 해 봤다가 기분이 나빠질 때도 있다. 종교는 믿는 자에겐 어마 무시한 힘을 갖는 신념이겠지만 믿지 않는 자에겐 그저 텍스트에 불과하다. 타인에게 강요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만약 특정 종교에서 말하는 형벌이 믿지 않는 자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온전히 개인이 감당해야 할 일이다. 선한 자가 단지 믿음을 갖지 않아서 생기는 불행은 종교적 형벌이 아니라 그저 불운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종교인들에게도 이 책은 어떻게 비칠지 궁금하다. 일단 나는 무교이다.
종교적 신념에 의해 샴쌍둥이로 태어난 아이를 차마 수술대에 올리지 못하는 부모. 인간의 생사는 인간이 정할 수 없다고 믿는 부모의 아래에서 운이 좋다면 한 아이가 살 수 있고, 당장 수술하지 않는다면 두 아이 모두 죽는 상황. 이 상황에서 과연 법은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가? 부모는 어떤 판단을 해야 할까? 사실, 이 사건은 다음 사건의 전초에 불과하지만 종교적인 입장을 빼고 생각한다 해도 부모의 입장에서 온전하지는 않지만 함께 태어난 두 아이를 어떻게 선택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선택이 옳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이는 기피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기피, 그게 신자들이 쓰는 말이죠? 아버지와 장로들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기피당할까 봐 두려운 겁니다. 끔찍한 죽음이 아니라 삶을 원한다는 이유로 자신이 아는 유일한 세상이 등을 돌리는 상황인 거죠. 그것이 어린 소년에게 자유로운 선택일까요?<P.112>

                             더 끔찍한? 사건이 있다. 여호와의 증인 가정의 열일곱 살(아마도 영국법의 성인은 열여덟 살인가 보다.)인 아이가 본인의 죽음을 주장하고 있다. 수혈을 받을 수 없다고 버티는 아이는 아동법의 보호를 받고 있지만 성인의 나이에 가깝기에 '치료 거부'를 선언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본 사건을 맡은 피오나의 감정선에서 인간의 근본적인 권리들이 부딪히는 것이다. 생명권, 존엄권, 종교의 자유 기타 여러 인간이 만들어 낸 텍스트에 불과한 때로는 대다수가 동의하고 있기에 평소엔 부딪히지 않던 권리 아닌 권리들이 말이다.

해결이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저는 판결을 내리는 데 있어서 A의 나이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신앙과, 치료를 거부할 권리에 내포된 개인의 존엄성에 응분의 비중을 두었습니다. 본 판결에서 A의 존엄성보다 소중한 것은 A의 생명입니다. <P.169>

스포일러를 하자만 그 아동은 피오나의 판결에 의해 살아났고, 한 해를 더 살다가 그 아이의 치료거부권이 발동하는 18세에 재발하여 죽었다. 피오나는 그 아이를 살려냈지만, 살려내기만 하였고 그 아이의 주변을 변화시키지는 못했으며 지속적으로 뻗어오는 도와달라는 말들을 그녀는 외면했던 것이다.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사랑이라는 그 애매한 단어 때문에 잠깐의 흔들림 때문에 말이다.

아동은 섬이 아니다. 법정을 벗어나면 내 책임도 끝난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아이는 나를 찾아왔고 그 애가 원했던 건 모든 사람이 다 원하는 것, 초자연적인 힘이 아닌 자유로운 사고를 하는 사람만이 줄 수 있는 것이었는데. 그건 '의미'였어. <P.288>

아마 책이 종교로부터 아이를 구해내고 마무리되었어도 평범하게 읽어낼 수 있는 소설이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고, 존엄성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언 매큐언은 한번 더 들여다 보길 권한다. 과연 아동법으로 그 아이를 구해냈다고 해서 그 아이에게 존엄성이 부여될 수 있을까? 그 아이의 삶이, 신앙의 테두리 안에서 밖으로 꺼내어진다고 해서 그 아이는 삶을 부여받은 것일까?
  마지막 말이 마음이 아픈 건 그것이다. 피오나는 아직 혼란스럽다. 그녀는 그 아이에게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다. 그녀 역시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는 건강한 인간은 아니었던 것이다. 남편의 외도와 본인의 사회적 배경에서 줄타기하는 그녀는 법정에서는 제법 훌륭한 선고를 했지만, 결국 그 아이를 구해낼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피오나를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책 안에서는 물론 무거운 주제들도 있지만 그에 비하면 비교적 가벼운? 남편의 늦바람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그녀의 감정선이 너무 잘 표현되어있어서, 서럽지만 책 제목이기도 한 아동법에 대한 판결들 때문에 묻히는 것들. 그녀의 남편이 한없이 원망스러우면서도 이러면 안 되는데,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법과 결혼한 와이프. 그리고 살면서 마지막으로 원하는 불꽃같은? 사랑. 물론 가장 행복한 결말은 다시 두 사람의 사랑이 타오르는 것이겠지만 책에서는 피오나의 감정만큼이나 애매하게 표현된다.

미리 생각해보지도 않고 둔 자충수, 그의 나이트를 룩으로 막은 셈이었다. 완전한 바보짓,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그가 머무른다면 모욕, 그가 떠난다면 심연.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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