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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평점 :
시대를 통과하는 문학. 공통점이라고 할 순 없지만 적어도 내가 읽은 남미의 문학은 몇 대에 거친 이야기들을 하기 즐기는 것 같다. <영혼의 집>에서 알바까지 계승되는 유전적인 사랑스러움이 그랬고. <빼드로빠라모>가 그랬듯이. 이 책도 한 가문에 얽힌 관습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내놓는다. 요즘 한 물가긴 했지만, 그래도 쿡방까지 곁들여서 말이다. 1월부터 시작해 12월에 끝나는 열두 가지의 음식과, 한 가정의 애정사. 오랜만에 제대로 된 연애소설을 한 권 끝낸 느낌이다.
마마 엘레나를 평생 시중들어야 할, 결혼 못 할 막내딸의 운명을 타고난 티타. 그녀는 부엌에서 자랐고 덕분에 가문의 요리를 계승 받으며 자랄 수 있었으나, 사랑할 자격을 갖지 못한 채 양파를 저미는 눈물 속에서 태어났고 자랐다. 그를 사랑하는 페드로의 청혼을 받았으나 페드로는 그녀의 운명을 이기지 못했고, 그녀를 곁에서 볼 수 있도록 그녀의 언니와 결혼하는 방법을 택했다.
"진실! 진실! 티타,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진짜 진실이야. 진실은 보는 사람의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거야. 예를 들어, 네 경우에는 너와 페드로가 진심으로 사랑하는데도 로사우라언니가 아랑곳하지 않고 일부러 페드로와 결혼했다는 게 진실이야. 내 말이 틀렸니?"<P.198>
소설은 관능적인 요리와 환상문학이 버무려져 펼쳐진다. 유혹적인 마음을 담아 만든 요리를 먹은 사람들이 섹스를 하러 사라지는 장면이나 슬픔을 담아 만든 결혼 케이크를 먹은 사람들의 눈물바람은 예사 이야기다. 분명 황당할 정도로 과장된 표현들도 그저 받아들이게 되는 매력이 있는 책이다.
티타는 본인의 운명을 거스를 수 있을까.
티타는 그제야 자신의 몸을 통해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모든 물질이 왜 불에 닿으면 변하는지, 평범한 반죽이 왜 토르티야가 되는지, 불같은 사랑을 겪어보지 못한 가슴은 왜 아무런 쓸모도 없는 반죽 덩어리에 불과한 것인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P.75>
생은 점점 페드로와 티타를 갈라놓는 듯했다. 마마 엘레나의 방해 아닌 방해 역시 마찬가지였고. 더군다나 티타는 주치의였던 사람에게 다른 사랑의 냄새를 맡기도 한다. 낯선 문학이지만 그리 낯설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우리네 역시 이런 공동체의 삶을 택하고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못 이뤄봤던 내 생을 다음 세대에게서는 끊어내길 원하는 우리네처럼. 티타는 페드로의 자식이 본인과 다른 삶을 찾길 바라고, 끊임없이 음식을 만든다. 그 모든 장면들이 때론 관능적으로 때론 맛있게 표현되어있다.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불꽃을 일으켜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합니다. 그 불꽃이 일면서 생기는 연소 작용이 영혼을 살찌우지요. 다시 말해 불꽃은 영혼의 양식인 것입니다. 자신의 불씨를 지펴줄 뭔가를 제때 찾아내지 못하면 성냥갑이 축축해져서 한 개비의 불도 지칠 수 없게 됩니다. <P.125>
몸속에 간직 한인 때문에 과학적으로 전부 설명할 순 없지만 혼령이라고 믿게 되는 무언가가 무덤에서 새로 피어나기도 한다. 우리는 마른 몸에서 피어나는 혼령에 대한 두려움은 가지고 있으나,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몸에 인을 간직했지만 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축축해진 사람. 혹시 나의 모습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티타를 지펴 줄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었을까.
티타는 인형의 섬세한 모양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어렸을 때 소원을 비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이었던가 생각했다. 그때는 불가능이라는 게 없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을 다 바랄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금기시되는 것과 죄악시되는 것, 정숙하지 않은 것은 바랄 수 없다. 하지만 대체 정숙하다는 게 뭐란 말인가?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P.184>
소설은 고전문학이라고 하기엔 최근에 씐 책이긴 하나, 시대를 관통하는 질문에 대한 물음표를 품고 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운명. 그 관습들이. 과연 정조라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행복에 반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더군다나 사랑은 잔인하게도, 그 사랑을 품은 채로 자신을 가까이에 두기 위해 본인의 언니와 결혼을 했고, 언니는 이 모든 사실을 알고도 결혼을 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상황에서 어떤 것이 옳은 것이고 어떤 것은 옳지 않은 것인가?
아니, 모든 상황을 옳고 옳지 않음으로 판단해야 하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책을 읽다 보면 나는 가끔 로사우라(티타의언니)의 편이 되곤 했다. 가문의 판단을 받아들인 언니가, 잘못한 것은 무엇이 있다는 걸까? 티타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결혼을 결심한 언니의 마음 역시도 관습을 비켜가려 하는 티타만큼이나 절박한 무언가였을 텐데.
시간을 할애하여 읽을 만큼의 매력적인 책은 어떤 것일까? 문득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인데, 나의 입맛에 맞는 책은 책 속에 인물들 중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는 상태일 때 즐겁게 읽어 내려갈 수 있는 것 같다. 이 책 안에 절대악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절대적인 피해자 역시 단 한 명도 없다. 마마 엘레나의 삶 역시도 이해할 수 있는 삶이었으며 비밀을 간직한 여인이었다. 되려 요즘의 시선으로 보자면 가문을 지키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던 한 여인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하인 한 명 한 명, 주변인 한 사람까지도 절대 선은 없으며, 절대 악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크고 작은 에피소드와 죄악이 섞여 만들어진 소설. 한동안 여운이 남을 것 같다. 그리고 특유의 마무리. 마치 전설처럼 내려오는 레시피 한 권. 그 한 권에 얽힌 세대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행복한 가문의 후손의 목소리가 반바퀴를 돌아, 세대를 넘어서 친근함을 전했다.
사람들의 얘기로는 그 잿더미 아래에서 갖가지 인생이 꽃을 피웠기 때문에 그 토양이 일대에서 가장 비옥해진 것이라고 했다.<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