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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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 섬 >

 

얼마 전, 달달한 책을 소개해달라는 이야기에 달린 댓글. 김연수의 소설을 추천해준 분께 감사해야 할 것 같다. 한국소설은 왠지 한국어인데도 잘 안 읽힌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 책은 왠지 모를 가슴 시림 때문에 못 읽겠더라.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건 나의 일이었다.> 얼마나 달달한 이야기인가.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절절하게 전하는 고백이겠지만, 김연수의 소설 속에서는 눈물이 난다.

살아오면서 나는 단 한 번도 100퍼센트의 엄마를 가져본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33.3퍼센트의 엄마가 위안이 되는 건 아니다. 엄마는 어떤 경우에도 100퍼센트의 엄마여야만 하니까. 그렇지 않다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진 속에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33.3퍼센트의 엄마가 100퍼센트의 나를 안고 어떤 나무 앞에 서있다.<P.47>

카밀라 포트만. 그녀는 입양아이다. 여섯 박스로 남겨진 그녀의 어린 시절과, 양모의 죽음 그리고 양부의 재혼. 자신을 사랑해주는 만남과 그 남자가 발견해준 작가의 인생. 모든 것들은 그녀는 자신이 태어난 곳. 한국으로 떠밀었다. "카밀라"라는 이름. 그녀는 그 이름이 싫었지만 그녀의 고향 진남에 오게 되면서, 동백꽃을 바라보고 자신의 이름은 운명이었음을,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생각했던 것만큼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었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 과정은 아주 시리고 아프다. 사회에서 여러 사람의 압박, 친아버지의 죽음. 모든 상황은 그녀를 자살로 떠밀었다. 그녀의 나이는 현재를 살고 있는 카밀라보다도 어렸다. 열일곱, 그녀는 그렇게 카밀라를 잃고 죽었다.

 

***제가 읽은 책은 자음과모음이라는 출판사의 구본인데,

절판 되고 문학동네에서 새롭게 책이 나왔나 봅니다.

개인적으로 표지의 시점이 재밌습니다. 구판은 왠지 정지은의 시점인것 같은데, 문학동네는 훗날 찾아온 카밀라. 희재가 파도와 대화하는 듯한 장면이네요..^^***

시점은 매번 변한다. 정말 마음에 든다. 특히나 2부에서 정지은, 카밀라의 엄마 시점에서 적어내려가는 그 부분은 너무나 아프다. 주인공은 너이지만, 너에게 보내는 2인칭. 그러나 정작 너는 이 말을 들을 수 없겠지. 카밀라와 정지은은 핏줄이지만 만날 수 없기 때문에 더 시리다.

내 말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나보다 어린 엄마를 만난 적이 있어요.

나는 네가 조금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네 이야기를 들으며 창밖으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는 지훈처럼 나도 너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건 나의 일이었다. <P.228>

살면서 나는 너를 이해한다. 네 말이 맞더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하지만 정작 그 사람을 100% 이해한다는 것은, 아니 절반이라도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것은 얼마나 큰 오만인지를 깨닫는다. 소설에서 김연수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단순히 카밀라 포트만이 엄마로서의 이지은을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라고 이해하고 싶다.

그때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우리는 기억하지 못해요. 그럼에도 그때의 우리는 유령처럼 지금의 우리를 따라다닙니다. 왜냐하면 도서실, 타워트레인, 피터 한트케, 동백나무 등은 그대로니까. <P.201>

사람에게는 날개가 없다. 날개라는 단어는 존재하지만 사람의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너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말 역시 존재하지만 사람의 것은 아니다. 살아오면서 33.3%의 엄마는 위안이 되지 않았다는 카밀라. 그녀가 위안을 찾을 곳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그녀에게도 날개는 없었다는 것이다. 누구의 것도 아니듯.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심연이 존재합니다. 그 심연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타인의 본심에 가닿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날개가 필요한 것이죠. 중요한 건 우리가 결코 이 날개를 가질 수 없다는 점입니다. (...) 날개는 우리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길은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날개가 없었다면, 하늘을 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 했을 테니까 하늘을 날 수 없다는 생각도 없었을 테지요. <P.275>

소설은 시원스럽게 달려간다. 시점을 뒤바꿔 가면서. 덕분에 2부가 처음 시작할 때 많이 헤맸었다. 2부의 첫 등장은 너이다. 너가 누군지 모른 채 한참을 지나서야 깨닫는다. 화자는 카밀라의 엄마. 이지은이구나. 하고 말이다. 그런데 재밌는 건 그것을 깨닫는 순간 2부는 끝난다. 목차를 처음에 읽어봤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다시 읽게 되는 부분이다.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

모든 것은 두 번 진행된다. 처음에는 서로 고립된 점의 우연으로, 그 다음에는 그 우연들을 연결하는 선의 이야기로.우리는 점의 인생을 살고 난 뒤에 그걸 선의 인생으로 회상한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과거의 점들이 모두 드러나 있기 때문에 현재의 삶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앞으로 어떤 점들을 밟고 나가느냐에 따라서 그들의 인생은 지금보다 좋아질 수도있고 나빠질 수도있다. 하지만 너 같은 경우는 다르다. 과거의 점들이 모두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네 인생은 몇번이고 달라지리라.<P.201>

여러 시점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진행되는 과거. 모든 것은 되풀이되어 자꾸자꾸 진행되지만 진행될 때마다 과거는 자꾸자꾸 변하기만 한다. 마치 파트릭모디아노의 소설 같다. 어쩌면 마지막에 가면 카밀라는 결국 희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회의감이 들 정도로 변한다. 결말을 그래서 아버지가 누구지?에 맞춰 읽다 보면 그렇다. 하지만, 결국 결말은 희재와 희재의 만남. 지은이 파도의 일처럼 사랑했던 사람들의 만남으로 바라본다면 더욱 마음이 아리지 않을까. 책 속에 숨어있는 표현들이 너무 마음이 아프다. 낮과 밤은 이렇게나 다른데 한 군데 모아 하루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생은 이렇게나 다른데 어떻게 그 점을 한 군데 모아서 인생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다시 한번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 문학동네에서 재판되었던데, 그걸 다시 집어봐야 할 것 같다.

소설의 끝에서 결국 카밀라는 어머니는 찾았지만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모호하게 결말이 난다. 그 부분이 너무 마음에 든다. 사실 끝부분에 가면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참 묘한 작가이다. 작가의 말은 보통 읽지 않는데 마지막 장까지 읽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는 책에 여백으로 남겨둔 것을 독자가 눈치채기 바란다. 어떤 것을 남겨두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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