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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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읽어보려던 책은 이 책이 아니었다.

이름만 익숙한 작가 김숨의 책, 카프카님의 리뷰에서 만났던 L의 운동화. 그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가 실패하고 대신 빌려온 책이었다. '한 명'. 신간이 나왔구나 하며 별생각 없이 집어온 책 때문에, 다른 책을 읽을 생각도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없는 일주일이 지나갔다. 소설의 내용은 위안부로 일본에 끌려갔던 소녀의 이야기이다. 그 소녀는 이십만 명 중 돌아온 이만 명. 그중에서도 두 명 남은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시간이 흘러 어르신들 중 한 분이 살아남았을 때를 가정하여 책의 배경은 설정되어있다. 자신이 위안부임을 등록하고 모든 것을 증언한 혼자 남은 여성과, 숨어지내는 또 다른 한 명의 위안부 피해자인 화자. 책은 단순하다. 그리고 매끄럽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전혀 자극적인 말 하나 없는 심심한 문체. 그런데도 도저히 책장을 넘기지 못하겠다.

옷 수선 가게를 나와 골목을 걸어가던 그녀는 중얼거린다

왜 하필 나인가? <P.54>

양파망에 넣어지는 순간 새끼 고양이는 늙은이의 것이 되었다.

밭메다가, 목화따가가, 물동이 이고 동네 우물가에 물길러 갔다가, 냇가에서 빨래해 오다가 학교에 가다가 집에서 아버지 병간호 하다가 억지로 끌려나온 소녀들이 하하나 옥상이나 오바상이나 오토상이라고 부르던 일본인 업주의 것이 되었듯. <P.77>

사실 자극적이지 않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숨겨진 진상이 자극적인 것인데, 어투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 내용만큼은 이게 정말 소설안의 이야기였으면 싶다. 그리고 이런 일을 상상하는 작가는 못됐다며 마무리하고 싶어진다.

아래는 무시로 바늘 들어갈 구멍도 없이 훌떡 뒤집어졌다.

소녀들은 자신들 몸에 다녀가는 군인들 명수로 일요일인지 알았다. 그곳에는 달력도 없어서 소녀들은 날짜도, 요일도 몰랐다. 모든 날들은, 모르는 날들이었다. 모르는 날들이 흘러가는 동안 소녀들은 폭삭 늙었다.<P.88>

작가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위안부 관련된 자료들을 탐독했을 것이다. 250페이지가 조금 넘는 책에는 거슬릴 만큼의 미주가 달려있다. 대사 하나하나를 고를 때마다 고심했을 작가의 괴로움이 느껴지면서도 이 이야기가 단순한 소설이 아님에 힘겨워지는 숫자들이다. 누군가의 생을 알리는 데에 그리고 기억하는 데에는 고통이 따른다.

말을 할 줄 아는 사람. 세련된 대화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이런 문제들에 조금 더 집중해 줬으면 좋겠다. 나는 하지도 못하면서.

의정부역에는 위안부 소녀상이 있다. 가끔 지나다니다가 한 번씩 눈길을 주는 게 다이다. 그렇게 조각나서 묻히고 있는 삶이 이 책에 있다. 기억한다는 것은 단어를 외우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나서 비로소 깨달았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소설의 제목이 한 명이 아니라 恨命으로 읽혀 너무 힘들었다. 작가의 의도는 아닐지 몰라도. 한자음이 없고 소설의 설정도 위안부였던 할머니 한 명의 이야기인데도. 전부 읽고 나니 정말 원망으로 가득한 운명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여서. 나는 왜 표지를 조금 더 유심히 보지 않았나 괴로워하면서 읽었다.

 

누군가 나를 표현해 보라고 묻는다면 이 책을 읽는 시점에서 헛똑똑이라고 대답하고 싶어진다. 우연한 기회에 손글씨 릴레이를 참여하라는 권유로 참여를 하면서. 한 사람의 인생도 모르면서 지금의 마음보다는 한껏 가벼운 마음으로 적어내려갔던 몇 개의 글씨가 부끄러워진다. 이 책 한 권을 읽으면서도 중간중간 마음이 심란해서 책을 덮는다. 내가 뭘 안다고.

할 수만 있다면, 10월의 나를 찾아가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마을버스는 어느새 사거리 너른 대로로 들어서 있다. 차창너머 세상으로 눈길을 주면서 그녀는 새삼스레 깨닫는다.

여전히 무섭다는걸.

열세 살의 자신이 아직도 만주 막사에 있다는걸.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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