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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평점 :
도서관에는 자유가 있다?
금지된 욕망이 비뚤어짐을 낳기 전에, 왜 그 욕망이 금지되어야 했는지 혹시 그 금지됨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소설 속에서 서양 소설이 금지된 이유가 단순히 자유에 대한 억압이었다는 것을. '일괄된 생각'과 '일괄된 목표'를 가지지 않고 '다양한
생각'을 가진 '개개인'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 파생되는 문제점들에 대해서, 당대의 지식인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까.
책 안의 배경은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 문화대혁명은 '예술은 정치의 도구가 되어야 하고, 예술은 인민을 위해 봉사하여야 한다'라는
슬로건 아래 혁명적 영웅에 대한 이야기들로 만들어진 문학들만 허락되고, 서양문학은 철저하게 사장되어 볼드모트가 되어버린 시대이다. 지식층의
자녀들이 시골로 소위 '재교육'을 받으러 가면서 시작되는 나와 뤄 그리고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와 뤄는 형제처럼 지내며 바늘구멍보다 통과하기 어렵다는 '재교육이 끝나는' 시기를 기다린다. 하늘 긴꼬리닭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중국
소녀를 만나게 되고, 셋은 우정을 쌓는다.(물론 사랑도..) 마을의 또 다른 재교육을 받던 '시인'의 아들 안경잡이 소녀는 큰 가방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방 안에는 서양의 책들이 들어있었다.
사실 배경이나, 이야기들은 평이하다. 한 여자를 마음에 두었던 두 남자가 지붕을 쳐다보게 된 이야기이다. 발자크의 소설로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여자가 마을을 떠나면서 마무리되는 이 짧은 이야기에는 시대적 답답함이나 문학에 대한 열망이 가득가득 들어있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들었던 단상들은
- 책에서 이름이 등장하는 사람은 뤄 뿐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특징으로 기억된다.
- 발자크의 책 내용은 어떤 내용이었을까.
- 문학에의 접근을 막고 혁명에 대한 것들을 주입하면, 정말 사람은 교화되는 것일까.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박근혜-최순실게이트가 터지면서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져 책을 다시 집었다.
책에는 몇 구절 정도가 한 페이지에 할애되어 쓰여있는데 그중 한 구절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Republic of Korea'.
손바닥으로 하늘을 더 이상 가릴 수 없는 시대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생각보다 많고 넓게 썩어버린 부분이 드러나는데
몇 년이나 걸렸던 것일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연루되어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아직 알지못한 빙산의 아랫부분엔 무엇이 있는걸까.
아직 청춘의 혼돈
상태에 빠져 있는 열아홉의 숫총각이 애국주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정치 운동에
관한 혁명적 장광설밖에 모른다고 생각해보라. 그런데 갑자기 그 작은 책은 침입자처럼 나에게 욕망과 열정과 충동과 사랑에 눈을
뜨라고 말하면서, 그때까지 고지식한 벙어리에 지나지 않던 내게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p.80>
사실 나는 정치에 대해선 문외한에 가깝다. 그저 jtbc의 뉴스를 듣거나 썰전을 보거나, 20대가 가질 수 있는 보편적인 일들을 할
뿐이다. 사실 그마저도 사상 초유의 대통령이 연루된 게이트가 터지게 되면서야 보게 되는 것이다. 어설프게 알면서 '어떤 방향으로 가자'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선동가이다. 자신이 아직 확고한 방향을 정해두지 않았는데, 그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은 어느 순간 방향을 잃게 된다. 그래서
나는 정치와 밀접한 과를 나왔음에도, 후배들이 묻는 질문 하나에 답변하지 못 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확고한 방향을 정해두지 않은' 기간은 결코 길어선 안된다. 애매모호한 그 시간을
'중립'이라고 표현해서는 더더욱 안될 것이다.
혹시 우리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억압되는 시대에 살고 있지는 않은가. 분명 문화계에는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우스갯소리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제발..), 모 그룹은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려서 부회장이 퇴출된 것은 아니냐는 소리가 돈다.
우리는 자유를 침해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당장 광화문 길거리에서 마음 맞는 사람이 세명 모여서
피켓을 들면 집시법 위반이다. 사전에 신고를 해야 하는 것이다. 뉴스 보도를 전적으로 믿지 못하는 청년층. 세계는 손에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져 당장 오늘 아침 뉴욕타임즈를 손에 넣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찾아보는 자만이 볼 수 있는' 그 정보의 온도
차이가 현시점에서는 매섭다.
하늘긴꼬리닭 마을에 가끔 들리는 재봉틀 아저씨. 그 사람이 오는 날은 마을에 잔치가 열린다. 모든 사람들이 입을 옷을 수선하고, 새로운
옷을 만들고. 각자 가진 능력 안에서 개성을 표출하기 위해 설레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소설에 나오는 바느질 소녀는 이 재봉틀 아저씨의
딸이다. 제법 부를 축적한 늙은 재봉사는 나와 뤄의 이야기를. 발자크의 소설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억압하려야 할 수없는
자유의지가 들어있는 것이다.
늙은 재봉사는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온종일 재봉틀을 돌렸다. 그와 동시에 프랑스
소설의 영향임이 분명한, 눈에 잘 띄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러운 환상이 마을 사람들의 새 옷에 뱃사람 디자인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P.175>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이 변했다.' 라는 말에는 사실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아직 책에서만 겪어본 일이다. 그러나, 가만 돌이켜보면 우리
집 집 전화는 언제였는지 모르지만 사라졌다. 더 이상 펜팔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E-book을 읽기 위해 리더기를 사느냐 마느냐 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 가랑비에 옷은 분명히 젖는다.
환상을 찾아서. 한 번의 낙태 경험을 안고 여자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바느질 소녀가 갑자기 오늘은 혁명가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