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태엽 오렌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2
앤소니 버제스 지음, 박시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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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리뷰를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다 읽고 아이러니하게도 <일루셔니스트>가 생각났다. 그 영화의 줄거리와는 하등의 관계도 없다. 단지 저 장면. 마법사가 마술 쇼 중 오렌지나무를 키워내는 장면이 기억났을 뿐이다. 어떤 트릭을 썼던, 오렌지 나무는 더 이상 '자연적'인 형태가 아니라, 마법사에 의해서 짧은 시간 안에 자라나 열매를 맺는다. '인위적인 오렌지나무'가 되어버린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말도 안 되는 트릭을 사용하는 마법'으로 치부했던 일. 기계적으로 수 초내에 아주 아름다운 오렌지나무로 자라나는 하나의 오렌지 씨앗. 그것을 컨트롤하는 마술사...

"만약, 당신이 만든 오렌지나무가 아주 썩어버렸거나, 타인을 섞게 만들 오렌지 나무라면."

아마 당신은 당신의 트릭이 실패했다고 관객에게 말하거나, 아예 오렌지나무를 없애거나 혹은 다시 마술을 재개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마술 쇼의 일부분이었다면 말이다.

맨 첫 장을 보았더니 제목이 쓰여있더군. <시계 태엽 오렌지>라고. 그걸 보고 내가 말했지, "거참 멍청한 제목이로군. 도대체 누가 태엽 달린 오렌지에 대해 들어보기라도 했을까?" 그리고 나는 그 일부분을 설교하듯 위엄찬 목소리로 소리 내어 읽었지. "인간, 즉 성장하고 다정할 수 있는 피조물에게 기계나 만드는 것에 적합한 법과 조건들을 강요하려는 시도나 또 수염이 난 신의 입술에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려는 시도. 여기에 대항하여 나는 나의 칼, 펜을 든다." <P.31>

이 책은 제목부터가 이해가 안 되는 책이다. 읽고 나서도 한동안 뒤통수를 맞은 듯 이해하기 힘든 책이었다. 내게 이 책을 권한 사람은 이렇게 소개했다 '또라이가 판을 치는 책이다. 아주 충격일 거야.' 참고로 나는 또라이라는 단어를 긍정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이다. 누군가 똘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주 매력적이다. 한 곳에 미칠 수 있는 사람이 좋고 책 역시 어딘가 미쳐서 나사를 풀어버린 책이 좋다. 그런데 이 책은, 아주 많은 곳의 나사가 풀려있다.

어떤 정부라도 버젓한 젊은이를 태엽 감는 기계로 만드는 것을 승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지. 그건 탄압을 자랑스레 여기는 정부나 하는 짓이야. <P.183>

요즘 나라가 시끄럽다. 얼마 전에 박근혜 게이트라는 단어를 썼다가 뭇매를 맞은 적이 있었다. 대통령의 이름이 볼드모트도 아니고, 확실히 현실이 소설보다 즐거운 시기에 살고 있다. 드라마 작가들은 분발하시길. 아무튼 이 책의 주제는 이거다. '사회는 공동의 선을 위해서 자유를 억압할 수 있는가'

책의 주인공 알렉스는 아주 못된 소년이다.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알렉스. 책은 3부로 구성되어있는데 1부는 알렉스의 입에 담기 어려운 비행에 대해서, 2부는 그 후 소년원에 가게 된 이야기와 알렉스에게 더 부당하게 선을 강요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3부에서는 더욱더 처참하게 강요된 선을 빼앗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책은 전후반 내내 충격요법을 사용한다. 아주 자극적인 범죄행위들 살인, 마약 강간에 대하여 서슴치 않은 날것의 단어로 늘어놓는다. 알렉스는 아주 못된 아이이다.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는 광적인 인물이다. 이 사람은 교화되지 않을 인물이며, 소년원이 아니라 감옥에 들어가야 하는 것은 당연하게 그려진다.

교도소에서 알렉스는 자유를 억압당했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도소에서 일련의 사건이,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르게 되면서 알렉스는 새로운 실험 '루드비히 요법'의 첫 사례가 된다. 그는 더 이상 사회의 악이라 생각되는 행위를 저지르고자 하면 심각한 두통과 고통을 느낀다. 참을 수 없는 구토 때문에 그는 악행을 저지르지 못하고 되레 착한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교도소를 나와 자유를 얻었지만 더 이상 그의 일상이었던 살인과 강간 마약은 눈앞에 두기도 힘든 더러운 일이 되었다.

한 사람의 자유가 강압당한 사회. '살인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사라진 인간 알렉스. 그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완벽하게 사회의 편이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회는 그를 부품으로 받아들여줄 준비가 안된듯했다. 그는 이 삶이 싫었다. 더 이상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택했다. 다른 사람을 죽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죽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면 나는 이 일로 어떤 득을 보나요? 지금의 상태가 치료가 되나요? 내가 다시는 속이 메스껍지 않고도 <합창>을 들을 수 있는 날이 오나요? 다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나요? 나에게는 어떤 일이 생기나요?<P.189>

일련의 과정들은 충격적이다. 차마 입에 담기도 싫은 일들이 많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들의 화자'는 알렉스이고, 알렉스는 이곳저곳에서 자신보다 더 흉폭한 '사회'의 굴레에 갇힌다. 정작 자신이 위험에 처했을 때 사회는 더욱 가혹했으며, 공범들은 잡히지 않았고 경찰이 되거나 행복한 삶을 산다. 같은 일을 했지만 본인만 괴로움에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저 애에게는 진정한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그렇지 않나요? 자기 이익, 육체적 고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모독하는 괴이한 행동을 하게 된 거죠. 그게 진심에서 한 행동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어요. 쟤는 더 이상 나쁜 짓을 하지 않겠지요. 그러나 또한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신의 피조물도 더 이상은 아니지요. <P.150>

넌 내 생각에도 죄를 저질렀어. 그렇지만 그에 대한 처벌이 너무 심했어. 저들은 너를 인간이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 만들었어. 네겐 선택할 권리가 더 이상 없는 거지. 넌 사회에서 용납되는 행동만 하게 되었어. 착한 일만 할 수 있는 작은 기계지. 이제 똑똑히 알겠구나. 조건반사기법이라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P.183>

이 책이 참으로 못된 날것이라는 이유는, 책 안에서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화자는 중범죄자이고, 그를 교화하려 했었던 성직자 역시도 썩어있다. 그를 가둔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사회를 향해 '펜'을 들었던 알렉산더는 또 하나의 알렉스일 뿐이다. 그의 아내는 알렉스에게 강간당하고 죽었다. 알렉산더는 그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알렉스를 죽이려 했다. 그는 또 하나의 '사회의 악'이 되어버린 것이다. 참 거지 같은 소설이다.

 

강요된 선이라는 아주 직관적이지만 낯선 단어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더욱 이 책이 신선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날것의 느낌이 나는 책이다. 시계태엽 오렌지는 나쁜 책이다.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른 화자 알렉스를 이해하라고 말하는 책이, 공동의 선을 위해서 알렉스를 교화하려 시도하는 사람들을 못되게 그리는 이 책이 날것의 느낌이라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할 일이다. 강요된 선과 자신의 자유의지로 악을 선택한 사람. 둘을 저울질해 볼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세상은 정말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말이다. 그러나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오렌지는 씨앗을 심으면 자연의 섭리에 따라, 뿌리를 내리고 일정 시간이 지나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신의 영역 또한 아니다. '자연 현상'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오렌지 씨앗은 애초에 틔워지지 않을 수도 있고, 썩은 열매를 맺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컨트롤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에서 알렉스는 교화가 될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처음 소설이 출간되었을 때는 삭제되었던 부분이라고 한다.

그리고 내가 지금 가는 곳은, 여러분, 여러분은 갈 수 없는 나 혼자만의 길이야. 내일도 향기로운 꽃이 피겠고, 더러운 세상이 돌아가겠고, 별과 달이 저 하늘에 떠있을 거고. 여러분의 오랜 동무 알렉스는 홀로 짝을 찾고 있을 거야. 엄청 구리고 더러운 세상이야. 여러분, 자 이제 여러분의 동무로부터 작별 인사를. 그리고 이 이야기에 나오는 다른 놈들에게는 커다란 야유를, 엿이나 먹으라 그래. 그러나 여러분들은 가끔씩 과거의 알렉스를 기억하라고. 아멘, 염병할.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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