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날 갑자기 필연적으로 바뀔수 없는 생득적인 부분에 대해 부정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가령 아직 어린 아이가 생물학적 시간보다 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한다던가, 여자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남자가 되고 싶다던가하는 주어진 시간 혹은 주어진 육신이 허락하지 않는 것에 대해 원하게 된다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 것에 대해 부정하게 된 한 여인의 이야기가 <채식주의자>의 줄거리 일 것 이다.

안타깝게도 현대 의학으로는 바꿀 수 없는 (어쩌면 그래서 정신병이라고 불릴지도 모르는) 그녀가 되고 싶어한 것은 '나무'였다. 아니, 되고싶어 했다기 보다는 어느 시점부터 그녀는 나무가 되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리뷰에는 줄거리아닌 줄거리들이 포함되어있다. 책을 읽은 사람들이 부담없이 함께 생각해 줬으면 하고 적어내는 리뷰이다.

베스트셀러에 대한 미묘한 신경전이라고 할까. 사실 채식주의자를 읽어보라 주변에서 권한 사람은 많았지만 읽기까지는 시간이 꽤나 오래 걸렸다. 소설 속 <몽고반점>이야기의 J처럼, 아직 깨야할 것들이 많은 자에게는 너무나도 더러운 소설일 수도있고 혹은 자신이 '깨어졌다고 믿는 자'에게는 하나의 예술 일수도있고. 책의 예술성이라는 것은 시간에 따라 시대에 따라 너무나도 확연히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 이해 못하는 거 아니니까 나한테 옹졸한놈이라고 욕하지 말아요. 내가,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온건한 사람이라는 걸 오늘 알았어요. 호기심때문에 하겠다고 하긴 했지만 감당하기 힘들군요. 그만큼 더 깨져야 할 부분이 있다는 거겠지만...... 일단은 시간이 필요해요<P.130>

그녀는 왜 그토록 갑자기 나무가 되었을까. 세상에서 가장 평범하다고 느껴졌던 그녀가 지독한 꿈을 꾼 뒤부터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로부터 모든 것들이 변해버린 것이다. 아주 어린시절 느꼈던 잔혹함이 어느날 갑자기 살아난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내재 되어있다가 터져나온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브래지어를 하지않는다. 의식적으로 사회운동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알수없는 답답함 때문이다. 주변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종류의 답답함. 어쩌면 어린시절 자신을 물었다는 이유로 오토바이에 메여 동네를 돌다가 죽은 개 한마리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 이유역시 그녀의 꿈 만큼이나, 그리고 그녀의 속마음 만큼이나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그녀 조차도.

무엇 때문일까.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져. 내가 뭔가의 뒤편으로 들어와 있는 것 같아. 손잡이가 없는 문 뒤에 갇힌 것 같아.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여기 있었던 걸 이제야 갑자기 알게 된 걸까. 어두워. 모든 것이 캄캄하게 뭉개어져 있어. <P.37>

평범한 채식주의선언에서 시작했던 작은 일은 결국 그녀와 그를 이혼하게 만들고, 그녀를 정신병원에 가뒀다. 병원에 갇혔던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의 동료가 사람이 아닌 나무들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유난히 말이없는 영혜는 사실 사람의 육신을 가지고 있었으나 인간의 언어보다는 그들의 동료인 나무들의 언어를 습득했을 것이다. 마지막 단편에서 물구나무를 서 있는 그녀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얼굴이 터질듯한 표정의 30Kg정도 나가는 그녀가 악독하게 물구나무를 서있는 장면이. 그녀는 자신의 동료들처럼 손에서부터 뿌리가나오고 다리에서 잎이 나와 마침내는 온전히 그녀의 동료들과 같아질 것이라고 생각 했을 것이다.

현대의 의술은 말한다. 그녀는 정신병이라고. 그녀가 먹지 않으면 수일 내에 죽을 것이며, 이런식의 음식 거부는 처음보았노라고. 그녀는 말한다. 나의 위장이 이제는 퇴화되어 버렸다고 의사가 말하지 않았느냐고. 이대로면 자신은 나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필요한 것은 몇 모금의 미음이 아니라 햇빛과 빗줄기라고.

죽음은, 삶의 뒷편으로 인간이 만들어낸 단어다. 삶의 뒤에 생물학적으로 '죽음'이라고 이야기하는 숨이 멎은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직은 미지한 곳이기 때문에 더욱. 사람들은 삶에 집착한다. 그 삶이 내가 원하지 않는 삶이라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연명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저 단순히 어떤 계기에 의해서 미쳐버린 한 여인의 삶이 그 여인의 입장에서 그려진 그리고 그 주변인들의 관찰에서 그려진 부분들을 읽고 있노라니 문득, 영혜의 정신병이 이해가 가기도 했다. 그녀는 그냥 나무가 되고 싶었을 뿐이다. 삶에대한 집착이 없었을 뿐이다. 어쩌면 사람들 대신, 동물대신 선택한 다른 동료들이 가르쳐준 것일 수도있겠지.

난 몰랐거든. 나무들이 똑바로 서 있다고만 생각했는데......이제야 알게 됐어. 모두 두 팔로 땅을 받치고 있는 거더라구. 봐, 저거봐, 놀랍지 않아? (...)어떻게 내가 알게 됐는지 알아? 꿈에 말이야, 내가 물구나무 서 있었는데......내 몸에서 잎사기ㅜ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땅속으로 파고들었어. 끝없이, 끝없이......<P.180>

사실 이 책에서 가장 심기를 건드린 것은 <몽고반점>이라는 단편이다. 영혜의 형부가 예술을 한답시고 영혜를 탐하게 되는 그 스토리. 나체에 꽃잎을 그리고, 마치 식물이 된 듯한 비쥬얼로 시선을 속이고 벌어지는 그 단편에서는 사실 등장인물들을 이해하기 너무어려웠다. 한참 뒤에야, 나는 책과 합의를 보았다. 영혜는 형부가 그려준 그림처럼 몸에서 꽃이 돋아나고 나무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그림을 그리고는 잔혹한 꿈을 꾸지 않았고 마침내는 정말 나무가 될 수 있으리라는 꿈을. 그리고 그는 특유의 예술적 감각으로 그녀가 본인이 상상했던 이미지에 가장 잘 맞는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그는, 그녀가 '나무'라는 것을 본인이 인지했든 아니든 의식에 어디에선가 인정해준 거의 유일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영혜는 나무였더라도 그는 사람이다. 그것도 아주 평범한. 욕망에 사로잡힌. 그래서 이 단편이 너무나도 불편했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약간 멍이 든 듯도 한, 연한 초록빛의, 분명한 몽고반점이었다. 그것이 태고의 것, 진화 전의 것, 혹은 광합성의 흔적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는 것을, 뜻밖에도 성적이 느낌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식물적인 무엇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P.101>

고집스럽게도 나는 책의 해설을 읽는 것을 하지 않는다. 책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 같아서 가끔은 불쾌할 때도 있다. 꼼꼼히 책을 읽어 소화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책의 다른면을 본 나를 위한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책을 다시 책장에 꽂았으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구경하러 가 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