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류재화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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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은 다 고만고만하죠." 난 대화에서 얼른 빠져나오려고 혼자 중얼거리듯 말했다. 사실 더 할 말도 없었다. "하지만 불행한 가족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죠."그 뭐시기씨가 갑자기 나를 묘한 눈길로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순간 나는 또 한번 소스라치게 놀랐다.<P.186>

이 장면을 상상해보면 지금도 웃음이 든다. 나만 알 것이라는 문장을 들이밀었는데 묘한 공기의 변화와 함께 어 나도 이걸 알아하고 받아치는 한 사람. 아마 나였다면 저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이 책을 쓴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 순간이 있다. 사실 이 책은 블로그 이웃분들이 내가 아주 좋아할 것 같다면서 권한 책이다. 벌써 삼독을 했다. 고슴도치의 우아함. 간극에 서있는 사람들을 매력적으로 느끼는 것처럼, 제목의 아이러니에서부터 사실 심상치 않겠다는 생각은 했다.

 

- 고슴도치 그리고 우아함.

모든 아이러니는 어느 고급아파트에서 시작된다. '고슴도치'와 '우아함'의 간극처럼 뚱뚱하고 가방끈 짧은 오십살의 수위 그러나, 그녀는 사실 철학과 특히 미학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그저 평범한, 낮은 수위로 살기를 원한다. 그 부잣집 맨션에서 사는 외교관의 딸인 팔로마는 열한 살이다. 그녀는 아주 똑똑하다. 그래서 세상은 시시하다. 하지만 평범하게 보이는 것이 살기 편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더 이상의 목표가 없다면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세상을 마감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유를 찾아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아파트에는 새로운 사람이 이사를 들어온다. 뛰어난 통찰력을 가진 일본인 부자 오즈씨. 세 사람은 각각의 이유로 고슴도치가 되었고 그 속에는 아주 우아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이야기는 순간, 순간을 지나가면서 문장을 만들어 낸다. 사실 책을 읽어가면서 줄거리가 없어도 읽을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책의 내용은 사색이 깊었다.

 

- 미셸

그녀의 가족은, 죽은 자의 이름을 물려받았다. 가난한 그녀의 집안은 부잣집에 이겨지고 무시당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녀의 언니는 아름다웠지만 가난했고, 그녀는 똑똑했지만 아름답지 못하고 가난했다. 모든 것은 시작점부터가 다른 세상이었다. 그녀는 사람보다는 책과 지식을 택했었다.

미셸 부인에겐 고슴도치의 우아함이 있다. 겉은 진짜 철옹성 같은 가시로 뒤덥혀있지만, 안은 부드럽고 섬세하다. 무딘 듯 하나 무디지 않고 몹시도 고독하고 더없이 우아한 작은 짐승, 고슴도치처럼.<P.200>

그녀의 내면의 우아함을 알아본 사람들은 몇 명 있었다. 그것이 쓸모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은 남겨두도록 하자. 아무튼 그녀는 비범한 여인이었다. 그녀의 내면에 자리 잡은 현자는 '미학'을 사랑하는 누군가인듯했다.

절의 이끼 위에 핀 동백, 교토산의 자줏빛, 푸른 도자기 찻잔, 덧없는 정열 한 가운데 순수하게 피는 아름다움. 우리 모두가 바라는게 그런 것 아닐까? 우리는, 서양 문명은 거기에 도달할 수 없는걸까?

생의 움직임 속에 영원을 응시하는 것. <P.137>

글의 모티브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동백을 택했다는 것 자체가 글쓴이는 동양적인 정신을 흠모하거나, 아주 많이 이해하고 있을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게했다. 그것이 너무 강해서 때로는 읽기가 거북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동백은 본디 외로운 꽃이다. 늦겨울 봄을 부르는 꽃이다. 꽃이 피기는 괴로운 시기 홀로 피어 떨어지고, 그 꽃은 바닥에서부터 핀다. 꽃째 떨어진 동백은 꽃째 죽는다. 사실 소설에서 말하는 일본 영화는 어떤 영화인지 알 수없으나, 영화를 보지 않아도 동백의 이미지가 너무 새겨져서 힘들었다.

 

흰 동백. 그녀의 삶은 한없이 떨어지는 동백이었다.

 

- 팔로마

그녀는 윤택함이 정해져있는 소녀다. 사실 문학적 설정이긴 하겠지만, 영악한 이 소녀는 모든 일의 개인 심판관이 되어 세상을 본다. 그녀의 삶이 재미가 없었던 건 미래가 보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주변인들을 보며 그의 미래를 점치고, 혹은 그의 성격을 되씹으면서 참 재미없는 세상임을 느꼈지만, 그녀는 그녀에게 '거울'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음을 느꼈다. 어린 자신을 어린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은 사람. 그녀보다 더 깊이 있는 무언가가 있는 사람. 놀랍게도 그 우정은 오십살의 나이를 뛰어넘어 발현되었다. 자신의 집 주위에게서.

아빠는 매일 아침 여섯시면 일어나서 아주 진한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는다. 이런식으로 아빠는 매일 자신을 건설해나간다. '자신을 건설해나간다'라고 한 것은 밤 동안 모든게 재로 변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는데, 그게 일종의 새로운 건설이기 때문이다. 이 우주에서 인간의 삶은 이런식이다. 끊임없이 어른으로서의 정체성을 재건해야 한다. 허술하고 덧없고 너무나 허약하며 절망이라는 옷을 입고 있는 정체성을.<P.126>

새로운 것을 건설하면서 죽는 것이 소원이었던 그녀를 더 이상 죽음을 생각하지 않게 만든 것 역시 미셸이었다. 어린 나이의 사춘기 소녀에게 멘토를 만난다는 것은, 더구나 아주 강력한 조력자를 만난다는 것은 아마도 이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사실 이 책의 결말에서 가장 큰 상실감을 안게 된 여인 역시 그녀였을 것이다.

그녀는, 작은 미셸이었다.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해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미셸. 책을 읽다보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시각으로 미셸과 팔로마는 삶을 바라본다.

예쁜장미. 그리고 낙화. (...)그것은 시간과 장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스쳐가는 바로 그 순간을 잡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물들이 아주 찰나적으로 어떤 모습을 띠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아름다움과 죽음을 동시에 본다.<P.384>

특히나 이 책은 미학에 대하여 아주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아마 대부분의 말에 공감을 하기 때문에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겠지만 사실 '이 정도는 알고 읽어라'라는 느낌의 책이라서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무언가를 꼬집는 책은 불편하다.

문법을 안다는 것은 언어의 껍질을 벗기는 것, 언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는 것, 그러니까 어떤의미로는 완전히 벗은 언어를 보는 것이다.<P.219>

- 그리고, 오즈

신데렐라콤플렉스. 사실 이 책의 결말이 아니었다면 드라마로 제작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마도 같은 영혼의 주파수를 가진 미셸과 오즈는 현대판 신분(수위와 부호라는)을 뛰어넘는 영혼의 교류를 이어갔을 것이다. 너무 닮았던 둘은 너무 늦게 만났다.

러시아문학을 좋아하는 두 사람이 조금 더 빨리 만날 수 있었더라면 아마도 그녀는 조금 더 빨리 껍질을 벗어던지고 지적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책 속에서 가장 힘들었던 장면이 있다면, 작가가 어느 나라사람인지 알지 못한 채, 맹목적인 동양의 정신에 대한 찬양과 이해할 수없는 포인트를 비집고 들어오는 일본 문화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오즈가 초대한 저녁식사에 온 미셸이 화장실에 들른 그 장면이다.

그 순간 나는 내가 미쳤거나 하늘나라에 갔다고 믿었다. 지금까지 불명확했던 소리가 점점 더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인데, 소리는 모짜르트 같았다. 모차르트의 레퀴엠 중 <콘푸타티스>. (악인들을 쳐부수어 화염속에 던지시고!) (...) 우린 사슬에서 풀려난 듯 폐에서 터져나오는 푸흐흐흐 소리를 내뿜으며 서로를 쳐다봤다. 좀 진정되면 우리는 다시 서로를 쳐다보았고, 또 한무더기의 푸흐흐를

화장실에서 아주 장엄한 레퀴엠을 들어야 했던 미셸은 얼마나 당황했을까. 그리고, 그 화장실 문앞에서 당황해하는 미셸보다 더 당황해서 서있을 오즈를 생각하며 나도 함께 미묘한 두 사람의 경계가 무너짐을 느낀 이 순간. 사실 이 장면이 나는 이 책에서 가장 애정이가고 사랑스러운 순간이었다. 레퀴엠을 몰라서 두번째 읽을땐 찾아 들어보았는데, 세상에 이 음악이 나오는 화장실이라니...

책은 잰척하는 사춘기 소녀와 너무 많은 것을 숨긴채 안주하는 수위, 노년을 즐기는 한 남성의 이야기라고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안에서 분명한 것은 적어도 나랑 비슷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 누군가를 만났다는 것이다. 유독 고전읽기를 좋아하는 것도, 고집이 센것도 자기방어안에 가두고 사는 그 무엇인가에 대해서 늘어놓는 방식이 비슷한 책. 그래서 친근하면서도 연민이 드는 누군가. 전혀 다른 책인 밀란쿤데라의 <참을 수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생각나는 이유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여튼 오랜만에 유쾌하지만 유쾌하지 못한 책을 만났다.

그래서, 이 책을 추천해주신 분께 감사하다.

나는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임무를 찾기 위해 우리는 태어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그것ㄹ을 완수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찾는 억지를 부리지 않고, 우리의 동물적 본성에 신성한 것이 있다고 믿지 않는 것. 그럴때만이 죽음이 우릴 데려가는 순간에도 건설적인 어떤 것을 한다고 느낄 수 있다. 자유, 결정, 의지 이런 것들은 모두 공상이다. 우린 벌들의 운명을 공유하지 않고도 꿀을 만들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 역시 임무를 완수한 후 죽을수밖에 없는 불쌍한 꿀벌일 뿐이다.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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