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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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을 해 봤는데 어쩌면 내가 한국소설을 기피하는 이유는, 단순한 문화적 사대주의가 아니라 뼈아픈 현실을 도피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너무 현실과 맞닿아 있는 책은 두렵고, 보기에 추해서 굳이 읽을 필요까지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특히 한국소설중에도 최근에 나온 소설들, 현대가 무대인 것들은 더 그랬다. 나는 너무 쉽게 반문한다. '이 책을 쓴 사람, 어딘가에 잘 살고 있는 것 맞지?'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세상의 크기는 얼만할까? 과거 어느 시점보다 지금을 사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크기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학교에서 배웠던 용어들, 지구촌 시대라느니 우리나라가 일일생활권에 들어온 지 반세기가 안됐다느니 하는 것들은 전부 흘러간 말에 불과하다. 사실 지금은 몸이 그곳에 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시기이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몇 초 되지 않는 시간에 전파를 타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시대. 그게 지금의 현실이다. 내가 밟고 있는 지면이아니라 내가 응시하고 있는 화면이 또 하나의 세상인 시대. 사이버시대라는 말은 너무 오래된 구식표현이고, 지면과 화면이라는 두 개의 세상에서 저울질을 하며 각자가 서로의 의견을 피력하고 이해하고 때로는 싸우며 지낸다.

댓글부대라는 책을 읽고 리뷰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여기에 있다. 상대적으로 휘둘리기 쉬운 사이버공간에서 벌어지는 각축전. 이미 많은 사람들이 댓글부대라는 용어를 너무 쉽게 사용하고 있고, 일베나 메갈 등 실제로 '지면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 문제가 되어 벌어지는 사회적인 사건사고들은 비일비재하다. 그렇게도 외면하고 싶은 현실들이 자꾸 지면으로 톡 하고 튀어나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공간에서 마치 자유로운 것 같다. 각자를 비판하고 혹은 옹호하면서 어쩌면 인터넷은 '각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민주주의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사람 한 사람은 전부 각자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공간. 그런데, 문득 생각해보면 그곳은 '지면'이 아니다. 단순히 화면안의 콘텐츠의 파편들이 모여 있는 하나의 거대한 가상공간이었을 뿐이다. 심지어 그 가상공간의 나는 내가 아닐수도있고, 무수히 많은 인격의 나 즉, '세컨 아이디'였을지도 모른다. 우스갯소리지만 '넷카마'라는 단어를 아시는지. 좋은 의미의 단어는 아니지만 Internet+おかま 로 사이버상에서 여성의 행세를 하는 남자들을 말한다. 그 가상의 공간에서 나는 없는 남편을 만들고, 교수가 될 수도 있고 혹은 아주 어린 학생이 될 수도있다. , 나를 변형하여 '내가 원하는' 혹은 '내가 필요한' 나로 만들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사건의 심각성은 여기에서 온다. 언어는 휘발한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혹은 정말 안 좋은 일이었다고 하더라도 술 한 잔 기울이면서 했던 이야기는 일주일만 지나도 곡해되거나 분위기만이 남는다. '그 선배 나한테 좀 심했지' 혹은 '그래, 그럴 만도 했어'정도의 감정만이 남는 지면상의 문제와는 달리 화면속의 공간은 연소되지 않는다. 내가 쓴 글들은 어딘가에 분명 남아있고, 지워지지 않는다. 내가 지웠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문제는 오늘의 나는 관심병이 있는 여성이었는데 며칠 뒤의 나는 청소년이 되어있을 때 온다.

책 속의 주인공이 그런 삶을 살았다는 것은 아니나, 사이버공간은 매우 자유롭다. 철저하게 대중 중심적인 공간이 바로 화면 안 세상이다. 그 곳에서는 각자의 얼굴은 서로가 공개 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심지어 타인으로 위장도 가능한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는 '좋아요''공감' '댓글 수''진실'이 되는 곳이다. 사실 진실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 순간의 즐거움과 그 순간의 이야깃거리면 충분하다. 사실, 사이버공간상의 개개인은 그렇게 똑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쉽게 선동되고 알기 쉬울 수 있다. 각자가 각자의 의견을 피력하고 각자가 대표가 되는 세계이다. 정당도 정치도 중요하지 않다. 모두가 각자를 대표하고 있는데, 정당이 왜 필요할까? 단지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리고 내 글이 묻히지 않는 것이다. 조금 자극적인 방법이라고 할 지라도 말이다. 나 역시도 이렇게 장문의 글을 쓰면서 생각한다. '내가 이 글을써서 내 블로그에 올렸는데 글이 너무 길어서 아무도 안 읽으면 어떻게 해야하지?' 무플, 무공감이 '탈락'이 되는 화면 속 세상이다.

촛불 들고 나섰던 애들도 아마 바뀌지 않을 거야. 1985년부터 1995년 사이에 태어난 애들, 특히 여자애들. 난 그 애들을 아주 버렸다고 생각해. 걔들은 평생 정부 탓이나 하면서 살아갈거야. 히피들이 추하게 늙어간 것 좀 봐. 얘들도 꼭 그렇게 될거야. 공부도 하지 않고 남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남이 자기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소통을 안 하네 어쩌네, 80년 광주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네, 그런 어리광을 늘어놓으며 평생을 살거야. 그냥 전라도 인구가 그만큼 늘었다고 보면 돼. 그걸 어쩌겠어. 투표를 못하게 하겠어. 인터넷을 못하게 하겠어? (...) 우린 그다음 세대를 공략해야해. 아직까지는 머리가 그렇게 굳지 않은 애들.<P.152>

<댓글부대>는 이러한 교묘함을 이용한다. 2012년도 대선을 떠들썩하게 했던 국정원 댓글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실제로 있는 공간과 없는 공간을 섞어서 만들어낸 소설이다. 일베도 오유도 나는 모두 알고 있는 공간이며, 사실 이런 커뮤니티들은 무수히 많다. 그런 곳에서 댓글을 조작해 나가는 팀-알렛을 둘러싼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영화를 보고 있는 듯 하다. 어떻게보면 진부한 마무리일수도있고, 어떻게보면 너무 자극적이라 불편할 수 도있지만 아주 가까이에, 내가 참여하고 있는 사이트 자주 눈팅하는 곳들 그 어디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가까운 이야기이다. 현실보다도 더 현실 같은 가상공간이 이제는 신의 영역이 되어 현실세계를 조작하려 들고있다. 팩트와 픽션 중간 어딘가에서 헤메고 있는 소설속에서 누군가는 현실을 보고 누군가는 소설을 읽는다.

다소 길다고 느껴지는 차례를 천천히 모아서 읽고나면, 사실 <댓글부대>의 시놉을 살펴볼 수 있다. 길게 적어둔 에필로그보다 더 와 닿으면서도 신선하다고 느낀 점이다.

책을 전부 다 읽고 나선, 웅장하고 거대하게 시작했다가 마무리할 시간이 부족했거나 무언의 압박에 의해서 급하게 마무리 해 버려야 했던 뒷내용이 궁금해져 더 찾아보게 만드는 영화 한 편을 본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나 역시 1985년부터 1995년 사이에 태어난 애들, 특히 여자애들이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전형적인 키보드 대화에 능숙하지만 아날로그세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 중간어디에서인가 나를 피력하는 세대.

임상진 그게 다 거짓말이었단 말이죠?
찻탓캇 글쎄요? 뭐라고 해야 할까요? 저희가 나름대로 사전조사를 했어요. 저희가 올린 글의 주인공에 해당하는 실존 인물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비슷한 사연이 있는 사람은 여러 명 있었어요. 나인쓰레드픽처스가 그전에 영화를 찍고 제대로 임금을 지불하지 않은 건 사실이에요. 영화스테프들 처우가 열악한 것도 사실이고요. 삼궁은 이렇게 표현하더라고요. 사실은 아니지만, 진실이라고.<P.37>

사실은 아니지만 진실은 가득한 사이버 공간에서, 나는 나의 생각인 것인 양 재 생산된 재 가공된 '진실'을 찾아 공감을 하고 사이버판 마녀사냥을 나선다. 혹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을 끊임없이 찾아 나선다. 나는 매우 정의로운 척 한다. 사실 내가 정의롭다고 믿는다.

요즘 정치하는 친구들은 그걸 몰라. 경제가 사회 분위기를 결정하는 게 아니야. 사회분위기가 경제를 결정하는 거야. 집단의 힘, 군중의 마음!(...)그런데 멍청한 놈들이 그런 열광을 불러일으킬 생각은 않고 요즘 젊은이들은 패기가 없다느니, 뭘 포기한 세대라느니 하면서 오히려 기를 꺾어놔. 아주 악질적인 사고방식이야. <P.148>

가공된 현실은 때론 더욱 현실 같고, 더욱 잔인하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감정을 읽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피해를 입더라도 내 눈앞에서 벌어진 일은 아니기 때문에 당장 발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죄의식 또한 얇고 적게 가져갈 수 있다.

물론, 작가는 말한다. 이 책은 특정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가상의 이야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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