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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세상의 가장 낮은 곳 이야기. 가장 쓰레기 같은 인간의 이야기이다. 고상한 척하기 좋아하는 현대인들에게 불편한 책. 이렇게 포장하지
않더라도 나한테 엄청나게 불편한 책이었다. 이웃분들 중 한 분이 요즘 너무 심각한 책들만 읽어 머리가 아프다는 농을 했더니 기꺼이 추천해 주셨던
책.
정말 '생각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그냥 인간의 가장 아랫부분을 긁고 있어서 힘들긴 했지만.
어쩌면 나의 성별이 남자였다면 조금 더 편하게 읽을 수 있었을는지도 모르지만, 여자여서 그런가. 조금은 화가 나기도 하는 부분이 많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내면을 감추고 살아간다. 참 쉬운말로, '나는 거짓이 없는 사람이야.'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런 사람도 꼭 옷은
입는다. 어쩌면 타인의 불편함을 위해서, 자신의 안정을 위해서 어떤 형식으로든 무엇인지 모를 내면을 감춘 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특히나
금기시 되고있는 '성욕'에 대한 단어들을 적나라하게 풀어내는 곳에서. 알듯 모를듯한 불편함 위로 통쾌함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체국>은 그런 책이다.
이 작품은 허구이며 아무에게도 바치지 않는다는 찰스 부코스키의 우체국. 그럴 수밖에. 이 책을 누구에게 바치면 싸우자는 건가? 사실 찰스
부코스키는 실제로도 우체국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는 작가이다. 경험을 바탕으로 펴 낸 책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믿어주자 <이 작품은
허구이며, 아무에게도 바치지 않는다.>
책의 내용은 소설의 주인공이 인생의 나락에서 올라오는 드라마틱한 일도 아니고 뭔가 어려운 역경을 헤쳐나갈 생각은 더더욱 없으며 영웅적인
인간도 아니다. 그저 빈민층의 섹스 중독자인 한 사내가 우체국에 취직하게 되면서, 여전히 섹스 중독에 알코올 중독자로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일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소설의 전반에 걸쳐서 주인공이 하고 있는 생각은 그것인 것 같다. 그는 뇌의 98% 섹스, 1.9%는
알코올, 그 나머지로 오만가지 잡다한 삶을 해결해 나가는 사람이다. 우체국에 취직을 하게 된 이유도
처음엔 실수로 시작되었다.
크리스마스 즈음이었는데, 저기 언덕배기에 사는 술주정뱅이가 귀띔을 해왔다. 매년 크리스마스를 잘 넘기는 용한 꾀가 있는 사람이었다. 거기
가면 개나 소나 다 써준다기에 가본 건데 어쩌다 보니 이 가죽 자루를 등에 짊어지고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고 있었다. 끝내주는 일이잖아, 나는
생각했다. 만만하잖아! ... 하지만 이런 생각을 떨칠 순 없었다. 세상에, 집배원들은 편지를 넣고 다니면서 여자들하고 같이 눕기도 하는구나
이거 나한테 딱 맞는 일인데. 오, 이거야, 이거. 이거라고 <시작>
이 책의 매력은 그거다. 주인공은 시작부터 끝까지 쓰레기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갱생한다거나 뉘우치지 않는다. 그저 섹스를 하고 근무태만을
하고 술을 마시고 경마를 할 뿐이다. 할 수 있다면 일을 그만두고 싶지만, 그러지는 못한다. 이런 사람이 우체국에서 십여 년을 정규직으로
버텼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아무렴 어때. 아무튼 처음에는 거북했지만 점점 읽을수록 더 아래는 어느 쪽이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묘한
쾌감이 있다.
마치 내가 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경험해 가는 느낌이다. 나는 길을 가던 여자를 바로 침실로 끌어들일 능력이 없으며, 갑자기 일을 하다가
강간을 할 생각도 더더욱 없으며, 이혼과 동거 그리고 여러 명의 여자들을 한꺼번에 만나는 취미는 더더 더욱 없다. 일종의 관음증일까 아니면
간접경험일까. 아무튼 무언가 통쾌한 느낌이다.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G.G는 착한 사람이야.> 하지만 이 착한 아저씨가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는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마침내 내 앞에 있는
우편물이 G.G.보다 적은 날이 온 것이다. <P.54>
G.G.는 우체국의 성실한 직원이다. 모두에게 착한 사람이었던 G.G.는 마을의 어린 여자아이에게 귀엽다고 먹을 것을 주려고 했다가
성추행으로 고소를 당한다. 그 후 그는 더 이상 착한 사람이 아니었고 반쯤 미친 미치광이일 뿐이었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이 부조리함을 눈치챈
사람은 우습게도 인생의 밑바닥을 긁고 있는 주인공뿐이다. 문제는, 이 주인공의 신용 역시 그의 인생만큼이나 밑바닥이기 때문에 아무도 신용하지
못한다.
현실세계에서 이런 인간을 만나게 된다면, 나는 정말 경멸해 버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이 소설에서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이
사람의 삶을 쫓아갈 뿐이다. 사실 내심 읽으면서 단 한 번만이라도 이 사람이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거나, 이 사람이 무언가 뉘우치거나 그의
직장에서 인정을 받거나 하는 일이 생겨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계속 웃고 여자의 엉덩이와 허벅지를 주무르면서 키스를 해댔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돈이 지속되는 한, 사람도
지속되었다.
두 사람은 다시 나를 태워다 주었고 남자는 여자와 함께 떠났다. 문 안으로 들어와 작별 인사를 하고 라디오를 켠 후 위스키를 찾아마셨다.
웃었고, 기분이 좋았고, 마침내 느긋해졌으며 자유로웠다. 짧은 시가 꽁초에 손가락을 뎄고 그런 후에 침대로 갔으며 침대 가장자리에 걸려서
넘어지는 바람에 매트리스에 벌러덩 누워서 잤다. 잤다, 잤다.<마지막>
어느 순간 생각했었지만, 그런 일은 마지막까지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쩌면, 고상한 가면을 쓰고 외면하고 있는 일들. 그저 일을 하지않고, 하고싶은데로 살고싶어! '그러니 날 좀 가만
내버려두시오!' 책 속의 주인공은 강렬하게 외치고 있는 메세지를 우아한척 하는 나는 불편하다는
단 한마디로 치부해 버린건 아닐까?
똥꾸멍이 뭐가 나쁘냐고! 당신한테도 똥꾸멍은 있잖아.
나도 똥구멍이 있다고! 가게에 가서 큼지막한 쇠고기 스테이크를 사봐. 거기도 똥꾸멍은 달렸어!
지구 상에는 똥구멍이 널렸단 말이야! 어떤 면에서는 나무들도 똥구멍이 달렸는데 못 찾는
것뿐이야. 나무들도 이파리를 싸잖아. 당신 똥구멍, 내 똥구멍, 세상에는 수십억 개의
똥구멍들로 가득 찼어. 대통령에게도 똥구멍이 있고, 세차장 직원들도 똥구멍이 있어. 판사들도 살인자들도 똥구멍이
있다고. 심지어 자주색 넥타이핀 남자도 똥구멍은 있어! <p.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