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
올더스 헉슬리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우연히 <멋진 신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흠칫 놀랐다. 분명히 읽었던 책인데, 단순한 SF소설로 남아있던 그 책에 대해 문학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식의 해석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뒤로 사실 부끄러워 졌다. 과거에 읽은 책들은 나는 과거의 감정으로 읽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갑자기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아무도 늙지 않고 모두가 행복한 세계. 모든 사람이 원하는 삶을 살고, 만인은 만인의 것인 세계. 당신은 더이상 고통을 참을 필요가 없고 더러움을 보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 당신은 늙지 않고 죽음은 당연한것으로 괴롭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곳. 그런 유토피아가 존재한다면. 그 곳은 정말 모두가 '행복'한 것일까.

 사실 나는 일본의 문학들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들의 행복을 찾는 방식들에 대한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들을 볼 때면 가끔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대다수의 영화가 액션, 조폭들,부조리에 대한 이야기 이고 휴머니즘에 대한 이야기에서 빠질 수없는 것은 사랑이라는 조미료인 우리나라의 대다수의 영화들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가끔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부러워지는 오늘이다.

이런 책을 읽고나면 항상 혼란스럽다. '나는 누구인가'보다 더 힘든 질문이다. '내가 사는 이 세계는 괜찮은가' 혹은, '여기는 어디일까', '어디쯤에서 나는 살고 있는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대답한다. 모든 고통은 몇 알의 소마로 소멸된다고. 그로 인한 반작용은 고작 몇 년의 여생이 줄어듦이다. 하지만 문제는 안된다. 어렸을 때부터 철저하게 죽음은 삶의 연장으로 당연한 것이며 두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입'하면된다.

나는 태어나기 전부터 계급이 정해져 있다. 어머니는 상스러운 말이다. 여기있는 모든 사람들은 공장에서 태어났으며 그저 유희를 즐기고, 자는 동안에는 수만번씩 반복되는 여러가지 규율들을 뇌로 익힌다. 우리는 그저 행복을 위해 산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이 결합하는 일은 없고, 더구나 아이를 낳는 비상식적인 행동은 하지 않는다. 아이는 모두 시험관에서 나오면 되니까.

우리는 식은 죽 먹듯 새로운 개인을 만들어 낼 수 있단말일세. 우리가 원하면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거야. 이단적 행위는 단순한 한 개인의 생명 이상의 것을 위협하거든. 다시 말해서 그 것은 사회 자체에 타격을 주는 것이지. 바로 사회 자체에게<P.184>

책을 읽는 내내 소름끼치도록 공상소설이 아니라는 생각만 잔뜩들었다. 2016년에 읽어 내려가는 독자가 1932년도에 쓰여진 책을 보면서 소름이 돋는다는건 정말 흔치 않은 경험일 것이다. 그 시대의 그 상상력으로 소름이 돋는것이 아니라, 현대사회에서 바라보는 멋진 신세계는 정말 먼 미래가 아닌 것 같아 소름이 돋는다. 나이어린 동생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람이 소모품으로 작동하는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라고. 멋진 신세계는 정말 멋지게 자본주의에 대해서 말한다. 아랫계급은 교육을 할 필요조차없다. 세익스피어는 낡은 것이기에 필요가 없으니 아무리 멋지더라도 최상위 계층만이 확인 할 정도로만 남아있으면 된다. 어려운 단어들 어려운 말들로 빙빙둘러서 설명하고자하면 정말 힘겹게도 써 내려갈 수 있겠지만 어쩌면 현실은 허상이어서 낡은 진실들을 가려야할 이유가 어딘가에는 존재할 지도 모른다는 그런 발상이 과거에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해진다.

"최적의 인구는" 무스타파 몬드가 말했다.

"빙산과 같은 형태를 띠도록 구성되는 것이야.-구분의 팔은 물 밑에 있고 구분의 일은 물 위에 있어야 되는거야."

"물 밑에 있는 사람들은 행복을 느낄까요?"

"물 위에 있는 것보다 더 행복을 느끼는 법이야. 예컨데 여기 있는 자네 친구보다 더 행복하지."<P.278>

사실 읽는 내내 등장인물의 이름에 대해 신경쓰지 않고 읽어 내려왔다. 그것은 중요하지가 않았다. 그저 스토리를 따라내려가면서 외설적이고 야만적인 단어로서의 '어머니'.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 "야만인"과 "문명인"의 차이에 대한 것들이 맴돌 뿐이었다. 이것은 현실과 너무 닮아있다. 빅데이터시대인 오늘, 사람들은 말한다. 모든걸 다 알 수 있기에 모든 걸 다 알필요가 없다고. 정보는 너무 흔한 것이되었고. 내가 알게된 정보는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기에 귀하지 못한 시대. 헉슬리가 1932년 이야기했던, '주입식 교육'은 어쩌면 지금 랜선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매일매일 쏟아지는 정보들. 그리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사람들.

이를테면 물방울은 단단한 화강암에 구멍을 뚫지만 그것은 물방울이라기보다 오히려 액체의 형체를 띤 밀랍 방울들이다. 어떤 물건 위에 떨어지면 그것에 밀착하여 외피를 덮고 한 덩어리가 되어 마침내 진홍색 일체로 되어 버리는 방울이다. P.38

"결국 만인은 만인의 소유물 이니까."

4년간, 매주 3일 밤, 1백 번씩 반복한 말이다, 하고 버나드 마르크스는 생각했다. 그는 수면시 교육의 전문가 였다. 6만 2천 4백 회의 반복이 한 개의 진리를 만든다. 바보같은 것들! <P.61>

만인이 만인의 것인 사회. 고통과 불필요한 것이 모두 사라진 이 세계는 과연 유토피아인가.

나의 얼굴은 너의 얼굴과 같고, 각자의 계급에 불만이 없기를 끊임없이 주입받아 살아온 당신은 과연 행복한 걸까 아니면, 독약에 감염된 것일까.

문명이 닿지 않은 어딘가에서 '비 문명'의 '야만'을 간직한 어느 나라에 문명을 주입하고 이해하라 강요하는, 자본을 들이대는 다큐멘터리들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던 경험들.. 시뮬라르크를 현실이라고 믿으면서, 그저 소마라는 약을 먹으며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과연 행복을 극대화 하는 삶일까? 아니 애초에 괴로움이 사라지는 삶이라는게 원래의 삶이고 고통이 가득한 지금이 가짜의 삶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과연 당신은 고통을 없앨 수 있다면, 거짓된 공간이 진실보다 훨씬 편안하고 편리하다면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

"그러니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 그래."(...)"나이를 먹어 추해지는 권리,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이가 들끓을 권리,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몰라서 끊임없이 불안에 떨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온갖 표현할 수 없는 고민에 시달릴 권리도 요구하겠지?"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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