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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글라스 ㅣ 아티초크 픽션 1
얄마르 쇠데르베리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16년 1월
평점 :
나는 괜찮은데 너는 왜 울어? 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책들이 좋다. 아니에느로가 그랬고, 헤르타뮐러의 <저지대>가 그렇듯이. 격한 어조로 격한감정을 노래하면서 울리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편견이 깨졌다. 등골이 서늘한 책 한 권. 사랑하고 애정하는 것들은 어느정도의 흠이 있어도 그조차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감정이 있다. 그런데 도저히 흠을 따질 수 없는걸 보면, 정말 단단히 빠지긴 빠졌나보다.
가만히 앉아서 생각한다. 얼마전 박범신의 <은교>를 읽고 소재 자체가 너무 자극적이고, 나에겐 불편한 책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 리뷰하는 <닥터글라스>는 그것보다 한 술 더 뜬 감정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심지어 유명한 작가 한명 쉬이 떠오르지 않는 스웨덴의 소설. 그런데 왜 불편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책과 모든것이 반대인 책. 글쓴이는 한없이 시끄럽고 한없이 울부짖는다. 심지어, 일기체이다. 절대적인 한명의 작가가 한명의 시선에서 써 내려간 책.
처음에 아티초크출판에서 이 책을 내놓겠다 했을 때 어쩌면 진부한 한 문장이 나를 완벽하게 사로 잡았었다. "인생은 나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정점을 찍는다. "고맙게도 햇빛은 애써 우리를 찾아 내려온다. 나무 아래 무덤까지"
그는 의사이다. 자신의 지휘를 만족하고 권력을 어느정도 다룰줄 아는 사람이다. 이상하게도 그는 유부녀나 그를 사랑하지 않는 누군가에게만 끌린다. 일종의 여리여리함이 있는 여자. 그런 여자들만이 그의 눈에든다. 그의 눈에 들어온 한 여자는 목사의 아내.
늘 그렇듯 소재는 간단명료하게 정리된다. 물론 스포일러가 될까봐 더 이상의 이야기들을 꺼내놓을 수는 없지만, 결말을 알고 보는 심리극은 재미가 없으니 소용없는 노릇이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서 쭉 읽어 내려가다보면 어느 날 닥터글라스의 일기의 끝에서 소름돋아하고있는 나를 발견하게된다. 사실 거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의 마음에 들어온 그녀는, 의사인 나에게 모든것을 이야기한다. 목사인 남편과의 부부생활은 사실 강제적이며 자신은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그가 아닌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있다고.
도덕은 회전목마 같다는 느낌이 전에 없이 강렬했다. 이전에 몰랐던 건 아니지만 그 회전 주기가 몇 세기, 아니 영겁이라고 생각했었다. 한데 지금은 몇 분, 몇 초에 불과한 듯 했다. 나는 어지러웠다. 이 광기의 와중에 보이는 유일한 길잡이라고는 마음속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가 입 안에서 중얼거렸다. "조심하시오, 목사!"<P.68>
닥터글라스는 갈등한다. 그녀가 원한다면 언제든 목사를 자신이 독살하리라. 아무도 모르게. 하지만, 그 마음은 점점 눈덩이 처럼 불어나 목사를 죽여야겠다는 생각까지 가는 그 과정이 소름돋는다. 한 편의 연극으로 꼭 상영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어떤 배우가 맡아야 하려나..ㅎㅎ 아무튼 이 이야기의 정점은 닥터글라스가 목사를 죽여야할지 말지를 두고 내면속의 세 사람(현재의 닥터글라스, 목사를 죽이고자 하는 닥터글라스, 목사를 죽이고싶지않은 닥터글라스)이 치열하게 싸우는 곳이 이야기의 정점이다. 8월 7일. 혹시나 이 책을 읽을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꼭 저 부분을 읽어보고 선택해 보기를 바란다.
인간의 의지는 하나의 통일체가 아니라 서로 상반된 수많은 충동들의 종합체이다. 하지만 우리는 허구를 필요로 하며, 의지라는 관념보다 더 필요한 허구는 없다. 그러면 자, 내게 이 일을 행할 의지가 있을까? <P.138>
이 이야기가 왜 치열한 논쟁거리였는지 알 것 같다. 인간이 살면서 논쟁삼기 좋은 것들. 죽음, 사랑, 종교, 외로움, 살인, 낙태....모든것들이 다 있다.
심지어 한 인물의 '일기'라는 의식 속에 전부 있다. 최근에 쓰여진 책이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 세련되어있다. 주제역시 아주 자극적인데, 아마 번역본이어서 더 현대에 적합하게 번역이 된걸까?
사람들은 사랑받기 원한다. 그러지 못하면 칭찬이라도 받기 원한다. 그것도 아닐 경우 두려움의 대상이 되길 원한다. 그마저 아닐 경우 혐오와 멸시의 대상이라도 되기 원한다. 사람들은 어떤 형식으로든 반응을 원한다. 우리의 영혼은 공백앞에서 불안해 한다. 우리의 영혼은 어떤 대가를 치르든 접촉을 원한다.<P.105>
한 권의 책을 읽고 이렇게나 진이 빠지는 경우는 또 처음이다. 사실 쓰고싶은 말이 없다. 그냥 머릿속이 복잡해 질 뿐이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구절만 잔뜩 필사하고 잔뜩 옮겨적어 놓는다. 닥터글라스는 왜 그의 인생이 그를 스쳐 지나간다고 이야기 했을까?
모든 대답은 8월 7일에 있다.
가끔 혼자 생각하지만, 매일 잊어버리는 사실 중 하나는 사실은 '내 속에는 내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가끔 나는 나의 자아1번과 손잡고 어떤 일을 하기도하고, 자아2를 어딘가에 가두기도 한다. 나는 온전히 나의 인생을 맞잡지 않는다. 내 안에 있던 수많은 나 중에는 나의 인생의 대다수를 직격탄으로 맡는 녀석도 있고, 어린시절 어떤 일로 인해 이미 죽어버린 자아도 있을 것이다. 가만 보면 정신분열증 같은 이야기이지만 내 생각에는 그렇다.
타인과의 투쟁보다 내 내면과의 투쟁이 더 힘든 것이 아닐까. 누구나 그렇듯이.
소설의 장르를 나누는 것에 대해 애매모호하다고 느꼈었는데, 이렇게도 명쾌하게 이런 소설이 심리소설이라는 장르구나 하는 것도 처음이다.
광증에 불타버린 한 남자의 일기를 몰래 훔쳐보면서 순간순간에 범행에 동조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그냥 글라스의 의식에 파묻혔다. 그래! 괜찮아! 저질러!!! 버려!!! 이러면서...=_=.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흥이고 하는 성격이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그냥 모든 것들 다 필요없고, 재미있게 읽었다. 책을 덮고나니 딱 한가지 생각이 남는다. 나는 그래서 나의 그 약을 어디에 감추고 있는걸까.
닥터 글라스가 목사에게 건네고자 했던 그 약, 사실은 어느 순간에 내가 먹고자했었던 그 약. 나는 어디에 숨기고 있을까. 이 책이야말로 정말 밤에 읽어야 할 소설이다. 모든 마음의 문을 열어서. 닥터글라스가 되어보면 나도 모르게 그 광기에 사로잡히게 된다.
나는 두려워 할 것이 없다. 그런데 왜 자꾸만 문이 잠겨있는지 확인할까? 그것은 다른 사람들, 산 자, 죽은 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들의 의견으로 형성된 엄청난 기압이 저 문밖에 쌓이다가 마침내 문을 부수고 들어와 나를 뭉개고 가루로 만들어 버릴 것 같은 위험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이 잠겨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P.186>
방금 첨탑 뒤에서 나온 달은 슬픈 표정이다. 이목구비가 형언하기 힘든 고통으로 일그러지고 뭉그러지고 침식된 것 같아 보인다. 가엾어라, 너는 왜 거기에 앉아있지? 위조범으로 몰렸어? 햇빛을 위조했다고? 사실 그것은 굉장한 범죄다. 그 범죄가 저질러지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P132>
종말이야 언제가 되었든 어차피 오는 것이니 두려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점점 더 현실이 꿈이 되고있다. 어쩌면 원래 그랬던 건지도 모른다. 내가 글라스라는 이름의 의사로 나오는 꿈에 그레고리우스라는 목사가 등장한 건지도 모른다. 이 꿈에서 깨면 나는 거리 청소원일지도, 아니면 교회의 주교일지도, 어린아이나 개일지도....혹시 모르지...<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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