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숨 쉬는 세계 별별 마을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마을 여행
이정주 지음, 민재회 그림 / 종이책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군함도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하여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요즈음 누구나 공감하고 그 의미를 함께 할 수 있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을 한 지역에서 한꺼번에 만나볼 수 있는 기회는 특별한 의미가 있을거에요. 오랜 역사동안 한 지역에서 함께한 사람들이 일구어낸 문화유산은 단순한 문화재의 가치 뿐만아니라 그 지역의 역사, 지리, 사회, 경제, 문화 모두를 아우르는 결정체이고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진정한 가치를 지니고 있을거에요. 이 책을 통해 마을 전체가 유산인 열 곳을 함께 여행하며 그속에 담긴 특별한 의미를 아이와 공유해 볼 수 있었어요. 오랜 시간동안 발전보다는 마을의 역사를 지키기 것에 더 큰 가치를 두었던 그들이 존경스럽네요. 아마도 이 책에 소개된 열 곳의 마을은 기회가 된다면 우리가 흔히 여행을 통해 만나볼 장소일거에요. 아이들에게 단순히 멋지다, 특이하다, 뭔가 다르네라는 느낌만을 주는 눈으로만 보는 여행보다는, 여행 가이드의 딱딱하고 지루한 설명에 여행이 힘들다는 느낌을 받게 될지도 모르는 우리 아이들에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이 책을 통해 배운 역사와 문화가 여행중 행복의 가이드가 되길 바라며 마음으로 느끼는 여행에 도움이 되길 빌어봅니다.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중간에 위치한 터키 이스탄불은 아시아와 유럽,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함께 하는 마을이지요. 1,500년 동안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로마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수도였던 이스탄불의 원래 이름은 이 마을의 아름다움에 반해 수도를 옮긴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름을 딴 콘스탄티노플이었어요. 종교가 바뀌는 엄청난 변화속에서도 원래의 것을 훼손하지 않고 발전시킨 역사적인 마을인 이스탄불은 오스만 제국의 다른 종교와 문화에 대해 열린 마음때문에 더 발전하였을거에요. 그 마음이 오늘날 이스탄불 세계 문화유산의 결실을 가져오지 않았을까요?

 

잘츠부르크를 로마처럼 만드는 데 앞장선 디트리히 대주교는 잘츠부르크를 왕이나 영주가 아닌 대주교가 다스리는 마을로 만들고 싶었어요. 로마처럼 정치와 종교가 하나가 되길 바라며 로마의 바로크 양식을 고집하면서 잘츠부르크를 건설했어요. 한때 모차르트를 쫓아냈던 잘츠부르크는 지금은 완전히 '모차르트의 마을'이 되었어요. 잘츠부르크를 찾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모차르트를 보러 오는 거니 죽은 모차르트가 잘츠부르크를 먹여 살린다는 우스갯소리가 헛말이 아니네요. 잘츠부르크가 문화유산을 지켜오기까지 몇 번의 위기가 있었어요. 나폴레옹 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이지요. 전쟁이 끝난 후 부서진 잘츠부르크 대성당을 다시 짓기로 뜻을 모으고 역사학과 고고학을 공부해서 원래의 모습에 가깝도록 다시 지은 것을 보면 잘츠부르크 사람들이 세계 문화유산 마을로 지정되기 훨씬 이전부터 국가와 힘을 합쳐 문화유산을 보호하려고 노력한 문화재 보호 활동은 세계 문화유산 마을로 지정된 이후 활동과 특별히 달라진 점이 없으며 그러한 마음이 잘츠부르크를 중세 시대의 역사와 모차르트의 음악을 간직한 문화유산 마을이 될 수 있도록 만든거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르네상스 예술의 꽃이 활짝 피어 있는 마을 피렌체는 인간의 사랑, 기쁨,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표현한 작가 단테의 고향이지요. 예술 후원으로 시민들의 마음을 얻으면서 피렌체를 통치한 메디치 가문은 르네상스 미술을 눈부시게 발전하게 하였어요.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이 자기들만의 것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누려야 할 재산이라고 생각한 메디치 가문의 지혜와 천재들의 노력 덕에 피렌체는 찬란한 르네상스 예술의 꽃을 피웠고 마을 자체가 독특한 예술 작품으로 인정되어 세계 문화유산 마을로 지정되었어요.

 

체코의 왕과 대통령이 사는 프라하 성은 여러 건물이 모여 있어 성안에 또 하나의 마을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 지은 시기와 건축 방법이 모두 달라 성 안의 건물만 봐도 유럽의 건축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금세 알 수 있을 정도에요. 프라하는 천 년의 시간이 머무는 중세의 도시니까요. 300년이나 지속되는 오스트리아의 지배속에서도 체코 사람들은 자신들의 역사와 전통을 잊지 않기 위해 체코의 문화를 지키자는 운동을 펼쳤어요. 또한 프라하가 1,000년 동안의 시간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전쟁을 일으킨 독일에게 바로 항복하였기 때문이지요. 독일과 싸워보지도 않고 무릎을 꿇은 일 때문에 주변 나라들의 조롱을 들어야만 했지만, 마을과 사람들을 지킬 수 있었어요. 그들은 어려움을 겪을 때 조용하고 부드러운 방식으로 마을을 지키고, 음악, 문학으로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키우면서 1,000년의 역사가 살아 있는 아름다운 프라하를 오늘날까지 유지한거에요.

 

남편이 왕위에 오른 지 2년 만에 세상을 갑자기 떠나버리자 안나 아말리아 왕비는 8개월 된 아기 아우구스트 왕자가 왕위에 오를 때를 대비해 교육을 잘 시키려고 많은 예술가와 철학자들을 불러모았어요. 이런 일은 단순히 아들의 교육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자신도 작가, 음악가, 철학자들과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했어요. 안나 아말리아 왕비는 독일 최초의 공공 도서관을 열었고 아들 아우구스트는 어머니의 뜻을 이어 자신을 도와줄 인재를 찾아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 괴테를 모셔왔어요. 괴테 덕분에 바이마르는 독일의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 잡을 수 있었고 바이마르에서 시작된 문화는 유럽 전체로 퍼져 나갔어요.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물건을 편리하면서도 아름답게 디자인하는 움직임이 바이마르에 있는 바우하우스에서 탄생했는데 이곳의 교수와 학생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서 오늘날 세계 건축과 디자인이 발전할 수 있도록 하였어요. 작은 마을 바이마르는 이처럼 여전히 독일 전체,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외부에서 적이 쳐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구불구불하고 미로 같은 길을 만들어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9,000여 개의 미로를 가진 모로코 페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있는 도시지요. 코르도바 출신이 정착한 안달루시아 지구와 카이로우안 출신이 이주한 카라위인 지구로 나뉘어 발전한 페스는 두 지역을 하나로 통합하고 12세기에 성곽을 쌓으면서 오늘날의 페스 메디나가 만들어졌어요. 전통 방식을 지키는 가죽 작업장, 잘 보존된 골목길과 전통 시장 등 메디나는 모로코의 문화와 이슬람 정신을 알리는 살아 있는 보물이에요.

 

태양신이 보낸 남매가 황금 지팡이를 들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쿠스코에 도착해 황금 지팡이를 꽂았더니 땅 속으로 쑥 빨려 들어가 몸의 가장 가운데에 있는 배꼽처럼 땅이 꺼져 이 땅에 도시를 세웠다는 '세상의 배꼽'이라는 뜻의 쿠스코는 잉카 제국의 종교, 정치, 행정의 중심지였어요. 16세기 스페인이 잉카 제국을 침략하면서 잉카의 위대한 문화유산을 없애고 그 자리에 스페인 문화를 덧씌우려 했고 지금은 잉카 제국의 모습보다는 스페인의 흔적을 더 많이 찾을 수 있는 쿠스코지만 페루 사람들은 잉카 제국의 후예라는 자부심으로 자신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스페인의 영향으로 가톨릭을 믿기 시작했지만, 예수님의 얼굴을 원주민처럼 까맣게 하거나 성모마리아의 얼굴을 잉카인과 닮도록 바꾸기도 하는 등 잉카 제국의 전통과 스페인의 문화가 어우러진 독특한 마을을 탄생시켰어요. 요즘 태양신을 모시던 코리칸차 신전을 옛 모습으로 복원하는 공사가 한창이라는 코스코에 태양의 신전이 완성되면 잉카인의 자부심은 더 커질거에요.

 

바다 실크로드의 한 지점이었던 호이안은 세계 여러 나라를 한꺼번에 만나는 바닷가 길목이에요. 호이안에 큰 항구가 있다는 소식이 유럽에 전해지며 외국인이 많이 드나들던 곳이라 외국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적어 쉽게 가톨릭을 전파할 수 있다고 생각한 프랑스는 알렉상드르 드 로드 신부를 통해 17세기부터 가톨릭을 전파하기 시작했어요. 프랑스 신부들이 도와준 덕분에 왕위에 오른 응우옌 가문은 그 대가로 프랑스 신부들이 가톨릭 세력을 넓히는 것을 허락해주었지만 태도를 바꾸어 가톨릭을 탄압하기 시작하고 프랑스 신부와 베트남 성직자를 마구 죽였지요. 단단히 화가 난 프랑스는 이를 구실로 베트남을 식민지로 만들었어요. 응우옌 왕조가 프랑스에게 떼어 준 다낭은 호이안과 비교할 수 없는 작은 항구였지만 프랑스가 '모든 외국 배는 다낭에만 정박할 수 있다'는 규칙을 만들어 국제항 역할을 대신하게 하고 자연현상으로 호이안을 바다와 연결하는 투본 강 바닥에 흙이 쌓이면서 수심이 얕아져 큰 배가 들어올 수 없게 되자 호이안은 옛 모습을 잃은 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져 갔어요. 모두의 관심에서 멀어진 마을이라 베트남 전쟁때 폭격을 맞지 않아 다낭에게 1등 항구의 자리를 빼앗긴 호이안이지만 오히려 문화유산을 지키는 행운을 갖게 되었어요. 호이안은 작은 마을이지만 수많은 나라가 찾아와서 각 나라의 문화를 남겼기 때문에 이렇게 작은 동네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흔적을 한꺼번에 찾을 수 있는 마을은 흔하지 않을거에요.

 

중국의 4대 고성인 리장 고성이 있는 중국 리장은 나시족이라는 소수민족이 뿌리내리고 있는 마을이에요. 주식이 젖과 고기인 티베트족이 윈난 성에서 가져 온 차를 마시고 소화도 잘 되고 건강도 좋아지기 시작하자 윈난 성의 차와 티베트의 말을 맞바꾸기 위해 상인들이 오가던 길 차마고도가 생기고 리장의  시장은 점점 커지고 리장 고성이 차마고도의 중심지가 되었어요. 1996년에는 나무를 끼워 맞춰 지은 건물들이 큰 지진을 잘 견디어 낸 덕분에 리장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을이 되었지요. 중국 한족들이 많이 이주하고 외부인들이 너무 많아서 나시족의 문화가 희미해질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800년 동안이나 전통과 문화를 지켜온 나시족은 앞으로도 이 마을을 잘 지켜 갈 거에요. 

 

우리나라의 열두 개의 세계 문화유산중 마을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우는 경주역사유적지구, 한국의 역사 마을인 하회와 양동, 그리고 백제역사유적지구에요. 백제의 문화유산이 있는 백제의 두 번째 수도 공주에서는 공산성, 무령왕릉을 만날 수 있고, 세 번째 수도인 부여에서는 왕궁 터인 관북리 유적지와 정림사지 5층 석탑을 만나볼 수 있어요. 무왕이 건설한 제2의 수도 전북 익산엔 왕궁리 유적지와 미륵사지 석탑이 있어요. 백제의 건축 기술과 불교 발전 모습을 볼 수 있고, 중국, 일본과의 교류를 통해 발전한 백제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어요. 백제 후반기의 수도이거나 수도 예정지로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웠다는 공통점이 있는 백제역사유적지구는 1,500년 전의 오래된 역사이고 신라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면서 이어지지 못하고 사라져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백제의 역사를 세계인들의 관심속에서 그들의 찬란한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불교문화에 대한  재평가를 하게 하는 기회를 주었어요. 

 

세계 문화유산을 배우면서 왜 이곳이 세계 문화유산이 되었을지 생각하는 시간은 많이 부족했던것 같아요. 이 책을 통해 오랜 시간을 이어 온 마을들을 여행하며 왜 이 마을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정했는지 마을의 역사를 이해하면서 알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낯선 지명, 이름, 문화재도 있었지만 그들이 지켜온 유산의 의미가 무엇인지 함께 공감하면서 역사와 문화의 지식을 넓힐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가질 수 있었네요. 아이와 함께 그 마을을 여행할 기회가 된다면 함께 하나하나 짚어가며 눈으로 보이는 화려함과 놀라움 속에서 그속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봐야겠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