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People : 장영실 Why? 인물탐구학습만화
변왕중 글, 신정훈 그림, 윤재웅 감수 / 예림당 / 201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TV 드라마로 재조명되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큰 관심을 받게 된 장영실, 그와 관련된 키워드를 보면 세종의 남자, 천민, 면천, 조선 과학 중흥기 등을 들수 있을거에요. 천민 출신이라 그런지 그에 대한 많은 자료가 남아있지 않고 가마 사건 이후로 역사속에서 사라져버려 그의 인생 후기가 궁금해지던 차에 이렇게 Why? People 장영실 책을 통해 그에 대해 다시 한번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너무나 기뻤어요. 어릴적부터 신분의 제한에도 불구하고 남다른 관찰력과 손재주를 가진 장영실이 세종이라는 신분을 초월한 인재 등용에 관심이 있던 임금을 만나 그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지금 그의 이름이 오르내릴 일은 없었을거라는 생각을 하니 그의 주변 인물들에 대하여도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아이와 함께 장영실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해요.
 

 

장영실의 숨은 능력을 알아차리고 세종에게 천거한 이천, 신분에 관계없이 실력으로 인재를 등용하여 조선 과학 기술을 한 단계 더 성장시킨 세종 대왕, 동래현의 관청에 속한 기녀로 원나라 귀화인과의 사이에 장영실을 낳은 후 미천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보살핀 그의 어머니, 그들 모두 장영실이 세상을 바꾸는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인물들입니다. 누구 한명이라도 없었더라면 그의 수많은 발명품은 만들어지지 않았을거에요.

 

아무리 빼어난 능력을 가진 인물일지라도 그의 능력을 발휘할 시대적 배경이나 환경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미처 꽃을 피우지 못하고 지기 마련일거에요. 하지만 장영실이 살던 시대는 고려를 멸하고 조선을 건국하여 백성의 삶을 안정시키기 위해 많은 인재를 발굴하려고 노력한 태조 이성계, 명나라를 섬기며 앞선 명나라의 문화를 수입하고 물품을 교역하려고 한 조선의 외교 정책, 신분에 관계없이 인재를 추천받는 도천법을 실시하고 원나라의 앞선 과학 기술과 고려 때까지 우리가 이룩한 천문 과학의 유산을 바탕으로 과학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 세종 대왕의 시대였어요. 이런 새로운 시대의 발걸음과 함께 했던 장영실이었기에 그의 수많은 발명품은 조선 초기 과학 기술 분야의 중심에 서 있을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장영실은 관찰력이 뛰어났어요. 자주 심부름 가는 마을의 높은 분들 위치는 미리미리 파악해 두었고. 숨바꼭질 술래를 할때도 주변 환경을 잘 살펴보면서 친구들이 어디에 숨었는지 금방 찾아냈어요. 그런 영특함으로 어떤 일이든 맡기면 빠르고 정확하게 임무를 수행했지만 다른 관노 아이들의 시기를 받게 됩니다.

 

아버지께서 징표로 주신 어머니의 은장도를 고쳐드리기 위한 효심으로 대장간 일을 시작하게 된 장영실은 성실함을 인정받아 관아의 일이 끝나면 곧장 대장간으로 찾아가 밤늦도록 일에 집중했고 손재주와 눈썰미가 좋아 빠르게 대장간 일을 익혀나가게 되지요. 형방 어른의 추천으로 관아의 대장간에서 일하게 되면서 드디어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찾아옵니다.

 

어린 나이이지만 그동안 배운 대장간 일의 기초를 토대로 자신의 재능을 펼치기 시작한 장영실은 현감 어른의 멋진 의자를 만즐어 인정받는 인재가 되고 현감을 만나러 온 이천에게 낯선 물건을 보고 빠른 시간에 그 원리와 활용법을 판단하는 사물의 직관력을 인정받게 되고 이를 계기로 어머니가 준 책으로 천민의 신분이지만 글공부를 시작하게 되지요.

 

마을에 찾아온 최악의 가뭄에 수차와 대나무 수로를 통해 강물이 농지 곳곳으로 흘러 들어가게 하여 가뭄을 해결하는 등 마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재로 거듭나며 젊은 시절을 관아에서 보낸 장영실은 도천법으로 신분이나 지위에 관계없이 추천하라는 어명을 받은 현감의 추천으로 한성으로 떠나게 되고 상의원에 있는 현감의 친구 이천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환도장에서 일하게 된 장영실은 칼 만드는 솜씨로 소문이 나게 되고 공조 참판인 이천의 추천으로 명나라로 가서 천문을 공부하고 시설을 시찰하고 돌아와 조선에도 그와 같은 기구를 만들라는 어명을 받고 명나라 유학길에 오릅니다. 명나라에서 천문에 대한 새로운 책과 기구도 볼 수 있었지만 황제의 명이 아니면 절대로 올라갈 수 없는 관성대는 볼 수가 없습니다, 계속되는 거절에도 불구하고 6개월간 거르지 않고 관성대를 찾아간 간절함을 인정받아 조선으로 돌아오는 날 장영실은 관성대에 오르게 되고 빠짐없이 눈으로 살피고, 머릿속으로 최대한 자세히 기억합니다. 드디어 1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많은 과학서를 가지고 돌아옵니다. 하루도 게을리 보내지 않고 독서를 하며 천문학에 열중한 장영실은 많은 관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면천과 종5품 상의원 별좌라는 파격적인 벼슬을 받게 되지요.

 

조선의 임금들은 백성의 삶에 기본이 되는 농사를 장려하고 이를 더욱 발전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농사와 관련된 하늘에 관한 지식은 왕의 권위와도 연결되어 세종 대왕도 하늘의 움직임을 읽고 백성에게 이를 알려 주는 왕의 중요한 임무를 위해 우리의 역법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가장 시급한 한성의 북극 고도를 측정하여 그 값을 기준으로 각종 천문 기구를 제작해야 하기 때문에 위도를 측정할 혼천의의  필요성을 깨닫고 장영실에게 천문 관측 기구를 만들도록 지시하지요. 결실이 없자 장영실을 시기하는 자들의 불만은 커져 가지만 결국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은 장영실은 한성의 북극 고도를 측정할 간의를 만들어냅니다. 본격적인 장영실의 발명이 시작된 것입니다.

 

조선의 역법을 완성하기 위해 혼천의를 완성하고, 사람이나 어둠에 좌우되지 않는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기 위해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를 만들어 정4품 호군 벼슬에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이천이 지휘하는 갑인자 제작에도 도움을 주고, 이천, 김조 등과 함께 해시계인 앙부일구도 제작해 백성들의 생활에 도움을 주게 되지요.

 

해가 져도 시간을 알 수 있고, 이동이 편리한 시간 관측을 위해 일성정시의를 완성하고, 시간뿐만 아니라 지남침을 쓰지 않고도 정확히 남쪽을 가리켜 방향을 알 수 있는 해시계인 정남일구, 간이 시계인 현주일구와 천평일구, 1년의 정확한 길이와 계절의 변화, 24절기의 정밀한 측정을 위해 규표도 만드는 등 임금과 백성을 위해 다양한 과학 기구를 제작한 장영실은 조선의 유례없는 천재적인 과학자이자 발명가였습니다.

조선통보 주조에 필요한 구리가 모자라자 경상도의 채방 별감으로 임명되어 부역의 잘못된 점을 파악하고 일정량 이상을 채굴할 경우 군역을 면제해 주고 포상금도 주게 하여 채굴량을 늘리고 새로운 광산을 발견하는 등 큰 공을 세워 조선의 금속 유통을 원할하게 하였으며, 세종만을 위한 시계인 자동 물시계 옥루도 제작하여 종3품 대호군에 임명되기까지 합니다.

효성이 깊은 문종이 비를 걱정하자 비의 양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강우량 측정 기기인 측우기를 만들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를 시기한 무리들의 음모로 세종 대왕이 타고 다닐 그가 만든 가마가 고장나 세종 대왕이 다치게 되는 사건으로 곤장 80대를 맞고 직위가 박탈되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지요.

사라져버린 그의 인생 후기에 대하여 세종의 가장 큰 업적인 훈민정음 반포에 앞서 명나라 몰래 진행한 천문 과학 기술의 성과를 숨겨 명나라로부터 그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설과 가마 사건을 계기로 그의 말년을 편하게 보내게 하기 위한 세종의 배려가 있었다는 등 여러 이야기가 있으나 기록으로 남겨져 있지 않아 알 수는 없지만 그를 지키고자 했던 세종의 마음만은 읽을 수가 있었어요.

그의 인생 후기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그의 저술 활동으로 그의 위대한 발명품들에 대한 자료가 더 꼼꼼히 남겨져 있을것이고 더 많은 발명품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관성대를 보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장영실의 선택에 대하여 입장 바꾸어 생각해보는 페이지입니다. 6개월간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관성대를 찾아간 그의 노력에 감탄할 뿐입니다.

 

장영실의 숨은 능력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신분때문에 그의 능력을 활용하지 못했다면 오늘날 장영실의 위대한 업적도 모두 사라졌을거에요. 이천과 세종 대왕이 더 존경스러워집니다.

 

 

천민 출생이라는 제한으로 그에 대한 출생의 기록과 그를 시기한 관료들 때문에 그의 인생 후기에 대한 기록이 남겨져 있지 않아 아쉬울 뿐입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위대한 발명품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힘', 그의 끊임없는 임금과 백성을 사랑한 마음,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열정을 느낄수 있을거에요. 15세기를 대표한 기술자 장영실이 마무리 하지 못하고 소리없이 사라진 그의 마지막을 우리가 미래에 마무리 할 수 있는 멋진 미래가 오길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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