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만이 무기다 - 읽기에서 시작하는 어른들의 공부법
시라토리 하루히코 지음, 김해용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명절연휴를 이용해 <<지성만이 무기다>>를 읽었다. 책 뒤편에 보면 '생각하는 힘을 잃어가는 어른들을 위한 사유와 읽기의 기술' 이라는 홍보문구가 눈에 띄었다. 평소 내가 생각하는 주제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이 책에 끌렸다. 이 책은 저자가 그동안 했던 다양한 '공부법'에 대한 소개이다. 어떤 자격증을 취득하는 수동적인 공부가 아니라 스스로 내면에서 용솟음 치는 능동적인 공부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많은 부분이 공감 갔고, 무릎을 탁 친 문장도 꽤 많았다. 
 

​다만 쉽고 말랑말랑한 책만 읽는다면 그런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 자신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해주는 사람만 사귀다 보면 자기 변혁을 이룰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책은 물질이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그 알맹이는 눈에 보이지 않으며 오직 책을 읽는 인간을 통해서만 그 가치가 드러난다. 

​캬. 책은 물질이라는 형태를 취하지만, 그 알맹이는 눈에 보이지 않고 더 나아가 그 알맹이는 사람의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무엇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알맹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직설적으로 별다른 자극 없이 쉽게만 읽히는 책에서는 사실 발견하기 어렵다. 좀 어려운 문장을 끙끙대며 뇌에 자극을 주면 줄 수록 그 알맹이는 선명해 진다. 과거 권수에 집착했던 독서를 했을때는 목표량을 달성했다는 성취감은 있었지만, 묵직한 내면의 울림은 느끼기 어려웠다. 무언가 독서의 진한 맛과 본질에서 많이 동떨어져 있는 느낌을 받았다. 뇌도 역시 근육이다. 똑같은 무게의 아령으로 운동을 반복한다면 근육의 성장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자신의 내부에 축적된 정보가 적기 때문에 이해하는 데 필요한 개념이나 경험, 지식도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학습이나 사회적 경험을 해야 하며, 그래도 부족할 때는 책을 읽어야 한다. 독서는 자기 투자의 개념이 아니다. 독서의 가장 큰 의미는 자신과 타인을 '알아 가기'위한 것이다.

독서는 자기 투자의 개념이 아니다. 뒤통수를 한대 맞은 느낌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독서의 가장큰 의미는 자신과 타인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좀 더 거창하게 이야기 하면 우주를 알아가는 것이 아닐까.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것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경험과 독서가 필요하다. 사람의 경험치란 한계가 있지만, 독서는 한계가 없다. 흔한 말로 아는만큼 보인다고 한다. 어떤 대상에 대해 배경지식이 없다면 보이는 것도 꼭 그만큼이다. 때문에 공부해야할 주제가 있다면, 늘 그것에 관심을 갖고, 관련 도서를 읽어야 하는 이유다.
 

​이것이 에둘러 가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이렇게 함으로써 스스로 조사하는 힘과 기술이 몸에 배기 때문이다. 이런 기술은 앞으로도 일이나 생활에서 다방면으로 응용할 수 있다.

조사하는 힘과 기술-능동적인 행위다. 이미 누군가가 보기 좋게 가공해 놓은 지식과 정보를 받아 먹기만 하면 눈빛은 점점 흐려진다.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정보를 통해 통찰력이나 고급 정보, 지식을 얻기란 사실 힘들다. 의문이 생기고, 질문이 생기면 도서관에 들어가 관련도서, 신문, 잡지를 읽으며 자료를 수집하고, 공부해야 한다. 이 과정이 저자의 말처럼 에둘러 가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공부를 하는데도, 세상을 살아가는데에도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평생 지식소비자 로만 머물지 말고, 지식생산자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주안점이기 때문에 공부는 시험에 나올 법한 사항을 이해하고 암기하기만 하면된다. 이런 유형의 공부는 목적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도구일 뿐이다. 그 자체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지만, 뭔가를 배우는 것이 늘 수단에 불과하다는 사고방식이라면 그것은 이미 허무주의(니힐리즘)일 수밖에 없다. 이런 사고방식이 몸에 깊이 베어 버리면 무슨 일을 해도 불만족과 깊은 허무를 느끼게 된다. 어쨋든 인생의 대부분의 것이 수단이나 도구로 변해 버린다.

꽤 진지한 문장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공부, 즉 수단으로써의 공부의 부작용을 지적한다. 공부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기 보다는 단순 암기를 통해 얻게될 사회적 위치와 보상만을 바란다면 허무주의에 빠질 수 있다고 꼬집는다. 
 

나는 동기부여라는 말을 들으면 비썩 마른 말의 콧등 앞에 당근을 갖다 대고 흔드는 광경이 연상된다. 이것저것 시키기 위해 이 정도의 보수를 넌지시 제시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에서 나온 말이 동기부여가 아닐까. 이런 동기부여는 타동적이며, 도구에만 사용하는 것이다. 진정한 동기부여는 외부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내부에서 부글부글 솟구치는 힘이다.

동기부여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다. 그렇다. 한때 동기부여에 대한 강의와 책이 불티나게 팔린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그것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이 들었고, 과연 이것이 옳은것인가 하는 거대한 담론이 일각에서 논의된 적이 있다. 어떤 작가는 동기부여가 상업화 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싸잡아 '거대한 사기극'이라고 까지 했다. 내가 느끼기에도 실체가 없는 것을 향하는 방향 없는 열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이제서야 조심스럽게 해본다. 저자의 말 처럼 진정한 동기부여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발견해야 한다. 그것도 부글부글 솟구치게 말이다.

지성만이 무기다

작가
시라토리 하루히코
출판
비즈니스북스
발매
2017.09.25.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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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글부글 솟구치는 힘 >

명절을 이용해 좋은 책을 읽었다. 저자는 독서와 공부에 대해 담담한 어조로 독자들을 설득해 나간다. 왜 능동적인 공부가 필요한 것인지. 그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친절하게 방법을 제시해준다. 그중에 인상깊었던 곳은 우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 수 있을까. 저자는 '고요한 침묵'이라고 이야기 한다. 우리는 늘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둘러쌓여 살아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가끔 무의미하게 스마트폰에 빠져있는 것을 보고 놀란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 현상은 점점 심화되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라 예상된다. 이 때문에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살피는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 것이 아닐까. 저자는 과감히 모든것을 끊고, 잠시 동안 이라도(3-4일) 내면을 살피라고 주장한다. 과연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무엇을 향해가는지 등의 질문을 하면서 말이다. 사실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 과정은 귀찮다. 그저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고 웹서핑을 하는 것이 훨씬 편하고 이롭게 느껴지기 까지한다. 

이런 삶을 사는 것도 스스로의 선택이리라. 단, 이 시간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점점 생각하는 능력과 뇌근육은 보잘것 없어질 것이다. 인생은 선택이다. 축 늘어진 태로 살아갈 것인가, 부글부글 솟구치는 힘을 느끼며 활기찬 인생을 살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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